학생 자원 선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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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영 목사의 ‘부흥을 사모하며’ 

 

앞서 학생 자원 선교운동(SVM)의 배경으로 ‘건초더미 기도운동 미국 학생 선교운동의 시작’을 소개한 바 있다(KTN 가스펠 2021년 3월 19일).
지난 주에 이어 SVM 운동의 전성기와 몰락,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무엘 밀즈 그룹의 선교 열정은 프린스턴 대학의 YMCA 지도 책임자인 루터 위샤드(Luther D. Wishard)를 통해서 헐몬산 대학생 연합수련회로 이어진다.
위샤드는 지구상의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몇 천 명의 선교사들을 파송해야 하는데, 선교의 영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광대한 규모의 선교대회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그의 헌신으로 1886년 7월에 무디 선생을 강사로 모시고 한 달간 사경회를 열었고, 이 사경회에서 100명이 선교헌신을 함으로 ‘우리 세대에 세계복음화’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학생 자원 선교운동이 태동한다.
이 학생 자원 선교운동을 통해 이후 50년간 20,500명의 선교사가 해외(주로 아시아의 나라들)로 파송되어 선교의 황금기가 열렸고, 이 운동의 결과로 한국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복음을 들고 찾아오게 된다.

SVM 운동의 전성기와 몰락

1888년 결성된 SVM은 헐몬산 사경회 5년 후인 1891년에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제1차 국제 학생 선교대회를 개최한다. 이 대회에32명의 선교회 대표, 31명의 해외선교사, 151개의 대학과 신학교를 대표하는 558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이후 매 4년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한 번을 제외하고는 대회가 빠짐없이 열렸다.
SVM은 1898년까지 839개의 대학에 확산되어 1,173명이 53개 국가로 나갔고, 헐몬산 사경회 20주년이 되는 해인 1906년까지는 2,953명의 자원자들이 100개의 선교단체를 통해 해외 선교지로 나갔다.
이 대회는 1920년 아이오와 주의 데스 모이네스 대회에서 그 절정에 달했으며(6,890명 참석), 1940년 토론토 대회를 끝으로 50년간 20,500명이나 되는 선교사가 이 운동과 관련되어 파송되었다.
이 숫자는 예수님 이후에 파송됐던 모든 선교사들의 수보다 훨씬 많은 수였다.

SVM 운동의 특징과 몰락의 원인

1. SVM은 학생 주도 선교운동이었다. 사무엘 밀즈 그룹은 미국에서 최초로 세계선교를 외쳤고, 미국 최초의 해외선교회를 탄생시켰으며, 그들의 비젼과 열정을 이어받아 ‘우리 세대 세계 복음화를!’ 이라는 슬로건 하에 SVM이 생겨났고, 그 줄기에서 IVF, KSCF, SCF 등의 학생운동이 생겨났다.

2. SVM은 평신도 중심 선교운동이었다. 주강사였던 무디, 이 운동을 이끌어왔던  John Mott 가 평신도였고, 프린스턴 서약에 싸인하고 나갔던 선교사들도 대부분 평신도 선교사들이었다.

3. 여성 참여가 두드러졌다. 1905년 까지 남성들이 SVM의 지도력을 점유했지만 여성들은 해외 선교지에 나간 선교사의 다수를 점유했다.
본국에서는 교회의 사역이 남성들에 의해 독점 되었으나  교사, 의사, 간호사, 사회사업가, 서기직 등이 여성들에게 개방되어 1920년 이후에는 여성선교사 수가 남성들을  훨씬 능가했다.

4. SVM은 교회 연합운동이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SVM의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컨퍼런스 의장이 존 모트(John Mott)였다.
19세기 개인구원을 목표로 했던 선교운동에 관한 반작용으로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은 전체구원, 사회구원으로 방향이 전환됐다.

5. 전도와 해외선교에 대한 헌신 등과 같은 본래적인 활동이 약화되고 대신 인종문제와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들을 강조하면서 기도도 약화되고, 역동성도 생명력도 약화되기 시작했다.

6. 참가하는 학생들의 관심도 전도로부터 이탈되어갔고, 해외선교에 관한 강조도 약화 되었지만 국내전도는 더더욱 관심 밖이었다.
이런 신학적 변질과 내부적 혼란으로 인해 선교대회는 생명력과 역동성을 상실했고 하나님의 기름부으심도 사라져 점점 참가자들이 줄어들면서 1940년 토론토 대회를 마지막으로 아쉽게도 SVM 선교대회가 중단된다.

해외선교의 황금기를 구가 했던 SVM의 쇠퇴원인들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들을 주고 있다.
오늘날은 IVF가 SVM 이어서 1947년부터 매 3년 마다 미국의 어바나 샴페인 캠퍼스에서 ‘Urbana 대회’라는 이름으로 2만여명씩 모이고 있다.
1988년부터 한국에서 열리는 청년학생 선교동원을 위한 연합대회인 ‘선교한국’ 도 SVM 대회와 Urbana 대회의 영향을 받아 생긴 줄로 안다.
세계 곳곳에서 SVM 대회, IVF 대회, 선교 한국 대회 같은 젊은이들의 선교대회가 다시 타오르도록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한다.

 

JAMA 대표 강순영 목사
청교도 이주 400주년 준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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