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하나됨을 지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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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현 목사의 신앙칼럼 

 

‘폭스 박사 효과’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1972년 마이런 폭스 박사는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체육교육에 적용한 수학의 게임 이론’이라는 강연을 펼쳤습니다.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게임전문가 등 지식층들이 청중이었습니다.
사실 폭스 박사는 전문가가 아니라 연기자였습니다. 폭스 박사는 엉터리 과학논문을 가지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유머를 섞어 가면서 강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청중들은 폭스 박사에게 찬사을 아까지 않았고, 놀랍게도 아무도 폭스 박사가 연기자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진실이 바탕되지 않고, 거짓과 속임수로 뒤엉켜 있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도 이러한 거짓과 속임수가 존재합니다.
교회는 세상 밖으로 부름을 받은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하지만, 진리 안에서 존재해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고 말씀합니다.
이미 하나되게 하신 교회를 평안의 매는 줄로 지켜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신분을 받은 성도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옛 사람의 속성을 여전히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기에, 교회는 여전히 갈등과 문제가 발생합니다.
교회에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온통 거짓말 잘하고 도둑같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다 모여 있더라”고 조롱하기도 합니다. 비록 과장된 말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인정할 부분이 있습니다.
성도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구원의 보증이 되셔서 성도로 하여금 진리 안에서 살아가도록 궁극적으로 인도하십니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후에도 성도 삶에 그렇게 큰 변화를 직감하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옛 사람이 갖고 있는 죄의 잔재가 얼마나 큰지 이미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를 육체의 욕심을 따라 끌고가는 마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으로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새 사람을 입고 살아감(고후 5:17)에도 불구하고 육신적으로는 여전히 옛 사람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사망의 몸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옛 사람과 새 사람의 혼돈 가운데 여전히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성도는 이 땅에서 항상 죄를 짓게 마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을 입었지만, 여전히 썩어져 가는 구습에 익숙하기 때문에 교회의 하나됨을 깨뜨리는 일들이 교회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라고 말씀하실까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도 바울은 신령한 방법을 소개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매우 친근하고도 생활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삶의 패턴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옛 사람의 언어 습관입니다.
우리가 항상 사용하는 말이 교회의 하나됨을 결정하는 중요한 키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거짓말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엡 4:25)고 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고 권면합니다. 곧 바로 다음 절에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까지 말합니다.
한글성경에는 ‘그리고’가 빠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금 더 원문에 가깝게 직역한다면, “그리고 성령을,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교회의 하나됨에 영향을 주고,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는 이유가 바로 앞절에 더러운 말, 거짓 등과 관련이 있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진중하게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 한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내 뱉는 말이 성령 하나님을 근심케 하는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옛 사람이 갖는 언어습관 중에 ‘거짓말’이 교회의 하나됨을 깨는데 이용되고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러운 말’은 단순히 좋지 않은 말이 아니라, 악의가 있는 험담과 중상모략을 가리킵니다.
구습을 좇아 살아가는 성도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인 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말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습니다(고전 3:16, 6:19).
이렇게 성령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자신을 거짓과 더러운 말로 더럽히게 되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게 됩니다.
성경은 거짓을 버리고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렇게 새롭게 변화된 사람은 건실하며 옳게 분별하여 해야할 말을 소금치듯 은혜롭게 하게 되면 하나님의 집, 교회의 하나됨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라면, 거짓말과 더러운 말 뿐만 아니라 이간질하며 교회에 걸림돌이 되는 성도들을 향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성경은 옛 사람의 언어 습관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을 향한 성도의 책임과 적절한 태도라고 가르쳐 줍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우리는 항상 교회를 나누고 중상모략하는 사람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우리를 살리신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인 인자하심(친절)과 긍휼(불쌍히 여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만약 성도가 여전히 이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어느 누구도 용서할 수 없게 됩니다. 교회 안에 끊이지 않는 갈등과 문제를 향해 성경이 가르쳐 주는 방법은 바로 “서로 용서 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입니다.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용서하심과 같이 용서하려면, 먼저 ‘친절과 긍휼로 용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내 힘으로 사랑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조건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해 주심을 기억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우리 동료, 교회의 한 지체를 용서함으로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게 할 줄로 믿습니다(마 18:33).  

 

권두현 목사
현재, 달라스 동부 장로교회
부목사 (행정 및 교육 담당)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 대학원
목회학 박사 과정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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