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커피, 쪽지, 그리고 기지개

붕붕붕아기자동차 3 5,470

벌써 20년이 된 이야기인데요. 

 

제 조카가 지금 대학생, 9월 말부터 10월 초에 있는 중간고사 때문에 ㅠㅠ

명절 연휴가 길어서, 중간고사가 쫌 더 일찍 진행되고 있데요. 

그래서 엉덩이도 가벼운 애가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누군가 자기 자리에 커피 한 잔과 열심히 하라는 쪽지를 받고, 

엄청 기뻐서 저에게 연락이 왔네요!

 

"고모!!!!! 저도 드디어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커피 한 잔 받았어요!!!! 기분이 짱짱짱 좋아요!!!"

 

우리 조카의 기분, 저도 알지요~

20년 전, 1997년, 대학교 3학년 때, IMF 때문에 학비 걱정하면서 휴학을 해야 하나...고민과 근심이 가득한데, 

교수님은 끝까지 가보자고, 장학금의 유혹을 던지셔서 

맘 편하게 휴학한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 저는 땀을 흘려가면서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했거든요. 

기숙사에 살아서 아침 6시에 도서관에 걸어가 공부하다가 학교 식당에 가서 900원짜리 아침 먹고, 

수업 있으면 수업 듣고, 다시 도서관으로 가서 공부하고, 학교 식당에 가서 1000원짜리 점심 먹고, 

도서관 가서 다시 공부하고.......

그 흔한 100짜리 자판기 커피나 500원짜리 캔음료도 저에겐 사치였어요. 

돈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부모님 생각에, 그리고 혹시 모를 비상시를 위해서 군것질은 절대 안했죠. 

학교 식당에서 식판에 밥을 담아 주실 때, 이모님들께 많이 달라고 했어요. 

그 때는 그런 부끄러움도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제 자리에 자판기 커피와 캔음료가 있었습니다. 

제 자리는 3년 정도, 늘 앉는 자리가 있어서 거의 고정적으로 ㅎㅎㅎ

물론 그 자리에 제 흔적을 남기거나 그 누구도 못 앉게 하는 그런 얄미운 짓은 안했어요. 

보통 먼저 오니깐, 제가 좋아하는 자리, 익숙한 그 자리에 앉다 보니, 그러다보니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않드라구요. 

 

제 이름을 쓰고, 짧은 메모와 함께 열심히 하라는, 커피 마시는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커피 좀 한 잔 하라고, 캔음료도 마시는 것을 한번도 못 봤다고, 음료도 좀 마시라는 쪽지~ 그리고 마지막은 도서관에만 있지 말고, 가끔은 밖으로 나와 하늘도 보고, 꼭 기지개를 펴라는 따뜻한 내용까지 함께 있었습니다. 

 

완전 감동이죠~~~

참 고맙드라구요! 그가 혹은 그녀가 누굴까? 궁금했죠.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커피를 들고, 쪽지에 나와 있는대로 도서관 밖으로 나와 하늘도 보고, 기지개도 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 

근데 기지개 펴다가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는데, 세 학번 높은 선배님이었습니다. 

대학원생 선배인데, 제가 1학년 때, 선배님과 같은 기숙사를 써서 잘 알고 있었거든요. 

 

제 삶과 제 꿈을 잘 아시는 선배님, 그리고 그 선배님이 커피와 캔커피, 쪽지의 제공자였습니다. 

내심 남자이길 바랬던 마음도 있었지만;;; ㅎㅎㅎ

그래도 참 감사한 그 선배님 덕에 남편도 만났고, 지금 미국에서도 계속 제 전공을 살려서 일하고 있습니다. 

선배가 소개해준 남편은 날마다는 아니였지만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저에게 커피도 사다 주고, 짧지만 힘이 나는 쪽지도 남겨 주고, 학교 식당 밥이 아닌 외부에 있는 식당 밥도 사줘서, 

아....휴학 안하길 잘했다. 공부하길 잘했다...합니다^^

 

그런 추억을 언젠가 대학에 입학한 조카에게 이야기 해줬는데, 어제 비슷한 추억을 우리 조카가 했네요!

신나하는 우리 조카~

 

역시 대학생의 낭만은 축제와 MT, 그리고 도서관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커피와 쪽지가 아닌가해요~

 

채은씨도 이런 추억이 있나 모르겠어요. 

 

그리고 노래 신청 하나 하고 가요. 

토이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입니다. 

잘 부탁 할게요!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

하이채은
와우~~~추억어린 부러운 사연이네요.....
저는 이런 추억 없거든요 ㅜㅜ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 나오려나?ㅎㅎ
선배 통해서 남편 만나고 또 그때 열심히 공부하셔서 전공살려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도 참 잘된 일인 것 같네요^^
내일 금요일 3부에 사연 소개해드리고 신청곡도 들려드릴께요~~~
사연 감사드려요!
붕붕붕아기자동차
네네~~ 방송 청취할게요~~ 감사해요!
사랑해달라스
아오!!!!!!!!!!!
완전 짜릿 짜릿!!!!!!
너무 좋겠다~~
저는 도서관이랑 담을 쌓아서 ㅋㅋㅋㅋ
그런 추억이;;;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