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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 한인작가 ‘짧은 글’] 릴레이백조의 노래(Swan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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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864회 작성일 23-06-0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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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녀 별하 달하의 아빠 김지형 하와이대학 교수가 올 해 연구년(Sabbatical Leave)이라 강의를 쉬는 해라고 한다. 그 대신 한국에 몇 개월 머물며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다고 한다.

“별하 달하도 여름방학을 한국에서 지낼 겁니다. 한국말 많이 배울 거예요. 몇 개월 살 아파트를 빌렸어요. 아버지 어머니도 함께 가시는 거예요. 모처럼 고국산천을 돌아보세요.”

“아, 잘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는 한국 한번 다녀 오려고 했다.” 

남편이 오래 살던 곳을 떠나 하와이에 이주를 단행했던 것은 아들의 초대가 기뻤고 또 한국과 가까이 살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동안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터져 한국 방문이 무한 연기되어 답답한 시절을 보내다가 이제서야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이번 여행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스완 송 트립((Swan Song Trip)이 될 것이야.”

내가 이렇게 말하자 별하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즈이 아빠에게 얼굴을 묻었다.

“아니, 별하야, 웬일이냐? 어디 아프니?”

 “어머니가 스완 송(Swan Song )이라고 하니까 슬픈거예요.” 

“별하가 그 뜻을 아는구나!” 

내가 ‘스완 송 트립’이라고 한 것은 ‘마지막 여행’이라고 하는 것보다 간접화법으로 좀 여유로울 것 같아서 한 소리였다.  

‘스완 송(Swan Song), 백조의 노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백조는 평소에 울지 않는무음(Mute Swan)으로 지내다가 죽기 전에 한 번 아름다운 소리로  운다고 한다. 

백조가 죽을 때 한번 운다고 해서 ‘마지막’이나 ‘최후’를 뜻하는 관용어가 되었다.  

예술가들의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말할 때 은유(Metaphor)로 쓰기도 한다. 백조는 한번 파트너로 인연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는 금슬 좋은 새다.  백조가 진짜 소리를 내지 않는 묵음(mute)이거나 침묵(Silence)을 지키는 새 일까. 

조류학자들은 백조가 다른 새들처럼 잘 울지는 않지만 먹이 다툼을 하고 서로 싸우며 괴음을 낸다고 한다.  호수에 우아하게 떠 있어 새의 여왕처럼 보이지만 실은 물에 뜨기 위해 헤엄을 쳐야 하고 알을 보호하기 위해 적들과 치열하게 싸우며 울부짖는다고. 모든 생명이 갖는 생존법칙에 백조라고 다르지 않지만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백조의 메타포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부부의 이번 한국 여행이 생의 마지막 여행이 될 거라는 것은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다. 

우리의 기력이 다 해가기 때문이다. 한국은 나에게 삶을 준 땅이다. 노모가 계실 때는 이 삼 년에 한 번씩은 다녀왔는데 지금은 누구를 찾아봬야 하는 그런 의무 같은 것은 없다. 

깊은 산사에 홀로 계시던 고승도 사라지고, 산사는 사뿐히 내리는 눈조차 이지지 못하고 꺾어지는 솔가지 소리의 기억만 남아있다. 어느 틈에 노모의 나이가 된 나, 남은 여생을 가늠하며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 가면 친지들과 마지막 인사를 할 것이다. 

주치의는 ‘건강 괜찮습니다. 걷기 운동 계속하세요’라고 하지만 실지로 느끼는 건강은 심각하다. 

허리도 아프고  어지럽고 무기력해져 나들이를 삼가하게 된다. ‘삭신이 아파요’라는 말을 미국 의사들은 이해 못 한다. 이번 한국 여행에서는 기력을 회복하는 데 최고의 조언자라는 어느 한의사를 찾아 침을 좀 맞고, 막히고 무디어진 혈을 뚫는 기 치료를 받아 볼 생각이다.

한국의 AI에는 관심이 없다. 올드가 따라 살 수 없는 첨단에 박수나 보내야 할까. 

도시의 아파트 속에 서면 육체는 물론 영혼까지 갇힐 것 같아 오래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산천 아무 데나 가서  한국의 공기를 깊이 들이마실 것이다. 어머니 탯줄에서 떨어져 나와 처음으로 들이마신 그 공기, 생명을 불어 넣어준 한국의 공기를 깊이 마실 것이다.  

한국의 바람을 만져볼 것이다. 성령처럼 내 몸을 감싸는 그 바람에 나를 맡길 것이다. 

졸졸 흐르는 냇물에 발을 담가 볼 것이다.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 순한 누렁이를 만나 쓰다듬어 줄 생각이다. 

우리가 떠나도 남아있을 한국의 산, 믿음직한 산에서 그 영원성을 확인할 것이다.  

나의 이번 여행은 스완 송(Swan Song)트립이 될 것이 분명하다. 

별하야, 마지막은 슬픈 게 아니란다. 마지막은 다른 세계와 악수하는 거란다.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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