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소담 한꼬집’] “그냥 해”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1,225회 작성일 23-01-06 13:40

본문

찬밥을 없애는 덴 볶음밥만 한 게 없어서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주섬주섬 꺼냈다. 

요리라고 할 것도 없지만 빠르고 맛있고 별다른 반찬이 필요 없어서 찬밥을 핑계 삼아 가끔 만들곤 한다. 

볶음밥이 간단해 보이지만 색깔 맞춰 채소를 다듬고, 자르고, 볶고, 계란 옷까지 입히려면 나름 손이 많이 간다. 고기나 햄, 새우 등은 국물 생겨서 따로 볶아 기름을 빼고 섞는다. 볶음밥은 밥알이 탱글탱글하게 살아있어야 맛있지 밥이 질면 별로이다. 

 

볶음밥의 매력은 조화(調和)다. 남편은 재료가 야무지게 어우러진 볶음밥을 좋아한다. 

어느 나라 식당을 가든 볶음밥이 있으면 시켜 먹는다. 한국 방송에서 웍을 돌리며 빠른 속도로 밥을 볶아내는 장면이 나오면 “맛있겠다”를 외치며 한국 살 때 갔던 중국집을 그리워한다. 집에서 하면 더 좋은 재료를 쓰는데도 그 맛이 안 나는 건 불 때문인 것 같다. 

모름지기 볶음밥은 높은 불에서 꼬시르릇 볶아야 맛있다. 

 

재료를 다 썰었을 때 남편이 왔다. 종일 일하고 왔으니 그냥 해주는 거 먹으면 되는데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프라이팬을 돌리며 밥을 볶는 솜씨가 경지에 달했다. 무늬는 쉐프다. 

오늘은 계란 옷까지 입혀 오므라이스를 만들어주었다. 아프고 난 후 부실해 보이는지 힘든 일은 도맡아 한다. 식당에서 의자 빼 주고 차 문을 열어주는 남자와 사는 여자는 대체 무슨 복을 타고난 걸까 하며 부러워했는데 요즘 내가 그 복을 누리고 산다. 한 지붕 아래서 지지고 볶으며 살다 보니 조화로워진 모양이다. 

 

밥을 먹으며 2022 SBS 연기대상을 보았다. 틀에 박힌 듯한 수상소감들이 참 식상하다 느낄 무렵 신인상을 받은 이은샘의 수상 소감에 귀가 번쩍 열렸다. 어린 친구가 어쩌면 그렇게 진심을 담아 어른스럽게 말을 잘하던지 눈물이 다 핑 돌았다. 

아역으로 출발해 16년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게 해준 힘은 “그냥 해”라는 말이었다. 언젠가 자기가 이 자리에 올라온다면 자기처럼 꿈을 쫓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 같은 말을 해주고 싶어서 16년 동안 생각만 했던 말이 있다며 전언과 같은 말을 했다. 

“지금 계속 꿈을 쫓아가시는 분들이 있다면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를 무서워하지 말고 지금 현재 하고 싶으면 그냥 하셨으면 좋겠다”라고.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아마도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정초부터 분주했다. 해가 바뀌면 마음을 다잡으며 세우곤 했던 목표조차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작년에 끝냈어야 할 일이 새해까지 넘어오는 바람에 나는 없고 일만 있는 새해를 보내고 있다. 나 때문이 아니라 해도 결국 내 손이 가야 마무리되는 일이어서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틀리는지 따지고 계산할 여유도 없이 그냥 가는 중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작년 10월에 오픈한 수필 클래스도 이제 끝이 보인다. 삼 개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뒤늦게 글쓰기를 배우러 오신 수강생들이 기대 이상으로 열심히 하셔서 나까지 열심히 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길이어서 함께 한 길이었다. 

최고령자가 76세시다. 문학을 전공한 분, 수학을 전공한 분, 간호학을 전공한 분, 유아보육을 전공한 분 등 각자 배운 학문이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다. 하지만 글쓰기를 배워 보겠다는 목표로 모인 분들이다 보니 금방 친해졌다. 그분들을 보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쪼록 각자 목표한 바를 다 이루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우는 데는 나이가 필요 없다. 필요하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조이스 드파우 할머니는 뒤늦게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멋진 인생을 산 선배로서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셨다. 

그분은 결혼하면서 중단했던 학업을 노인이 되어서 다시 시작했고 90세에 노던일리노이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마침내 소원을 이룬 것이다. 그분도 명언을 남기셨다.

“중간에 멈춰야 했던 일들도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돌아가 견디고 해내라.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2023년 출발선에서 하고 싶었던 일이 있다면 이은샘을 버티게 했던 주문처럼 “그냥 해”보면 좋지 않을까? 내가 가진 잠재력이 뭔지, 내가 이루고 싶었던 꿈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개발하고 살리면 인생도 행복하고 맛있을 것 같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에 안성맞춤인 음식. 핫도그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핫도그의 유래는 여러가지 있지만 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유럽에서 건너온 ‘닥스훈트(몸통이 길고 사지가 짧은 독일 개)’ 모양에서 시작되었…
    문화 2023-01-13 
    자동차나 집보험외에도 보험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며  또한 보험회사가  없으면 국가의 경제가  마비될만큼 영향력이 크다.  그리고 보험회사는 은행및 증권회사등과 함께 미국의 경제를 움직여 가는 거대한  산업이다.   보험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험 2023-01-13 
    뭔가를 시작하는 것보다 내려놓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26년간의 나의 작은 손안에서 떠나지 않았던 지휘봉을 내려놓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을 몰랐습니다. 막상 마음을 정하고 이제 본연의 길로 들어가 그 동안 밀렸던 작품을 하나 둘 오선지에 써 …
    문화 2023-01-13 
    2022년 개인세금보고는 2023년 1월 23일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미 국세청(IRS)의 공식 발표는 아직 안나왔지만 세법이 크게 바뀐 것이 없기 때문에  작년과 거의 같은 시기에 세금 보고를 할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년과 같이 올해도 전자파일세금보고(E-Fi…
    세무회계 2023-01-13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철에는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날씨가 추울수록 몸은 움츠러들고 게을러지기 쉽습니다. 자연스럽게 외부 활동을 하는 시간도 줄고, 하루 중에 해가 떠 있는 시간도 줄면서 밖에서 햇볕을 쬘 수 있는 시간도 다른 계절에 비해서 줄어듭니다. 햇볕…
    건강의학 2023-01-13 
    하와이 주의 남단에 위치한 하와이 섬(Big Island)의 마우나 로아 화산이 2022년 11월27일 불을 뿜기시작했다. 해발 고도 4170m(백두산 2744m)인 하와이 섬의 마우나 로아 화산은  1984년 이후 38년 만에 다시 용암을 분출 한 것이다. 마우나 로…
    문화 2023-01-13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혹시 우동 좋아하시나요? 저는 ‘우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갈색의 따끈한 국물과 뽀얀 국수를 안경에 서리가 낀지도 모른 채 휴게소나 기차역에 서서 차가운 바람을 받으며 먹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저에게 우동은 면요리라는 종류…
    문화 2023-01-06 
    요즘 날씨가 많이 쌀쌀합니다. 연신 눈이 내릴 듯하면서 잠시 머뭇거리며 기다림을 더욱 아주 깊게 만들어 버립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했지만 너무나 평범한 크리스마스였기에 눈이 내리는 꿈을 갖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꿈을 가지면 기대와 희망이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문화 2023-01-06 
    계묘년 검은 토끼의 해2023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육십간지의 40번째로 계는 흑색 묘는 토끼를 의미한다. 매년 반복되는 세무보고 시즌이지만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지난 2년간의 공백을 딛고 북 텍사스 한인 공인회계사 협회가 주최하는 “교민을 위한 무료 세미나” 소개와…
    세무회계 2023-01-06 
    찬밥을 없애는 덴 볶음밥만 한 게 없어서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주섬주섬 꺼냈다. 요리라고 할 것도 없지만 빠르고 맛있고 별다른 반찬이 필요 없어서 찬밥을 핑계 삼아 가끔 만들곤 한다. 볶음밥이 간단해 보이지만 색깔 맞춰 채소를 다듬고, 자르고, 볶고, 계란 옷까지 입히…
    문화 2023-01-06 
    우리는 현재 급변하는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 속에서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성이 넘치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미래는 강자에게는 또 다른 기회를, 약자에게는 계속되는 위협을, 준비된 자에게는 도전하면 희망을 줄 것이다. 약자는 강자가 되기 위해 항상 준비하고 도…
    부동산 2023-01-06 
    세상의 조명이 모두 꺼지는 날 차가워진 몸과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빛이 우리 곁에 다가옵니다. 조그만 빛 하나가 세상을 비출 때 우리는 서로의 미소를 창가에 살며시 걸어놓고 내 마음의 기쁨과 평화를 이웃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점점 얼어버리는 삶의 현장을 내 발 아래…
    문화 2022-12-30 
    미국에서 자동차는  필수품이지만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다. 비용중에는 자동차 관리,수리비용과 보험비용이 가장 큰 비용이다. 그래서 보험료에 관련해서 자동차보험 가입자가 자주 질문하는 사항들을 몇가지 간추려 보았다. ◈ 가입자의 주거지역당신이 어디에 사는가? 더 자세히 이…
    보험 2022-12-30 
    2023년 계묘년, 토끼해인데 그중에서도 흑토끼 해라고 한다.  토끼는 빠르기도 하지만 영리한 동물이고 출산시 새끼들도 많이 낳기 때문에 넉넉함과 번영, 풍요로움의 상징이라고 알려져 있다.  2022년은 급작스러운 금리인상과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미국 전체의 경기가 별…
    세무회계 2022-12-30 
    올해도 아기예수님은 아주 추운 날 우리 곁으로 왔다. 겨울답지 않게 따뜻하던 날씨가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니, 마치 성서말씀을 실행이라도 하듯이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성탄전야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발목까지 온 긴 패딩을 입고, 목에는 스카프를 두르고, 모자, 장갑…
    문화 2022-12-30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