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짧은 글 릴레이 ] 김수자 에세이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2,144회 작성일 22-04-01 12:27

본문

시 께나 쓴다는 친구로부터 이어령 교수의 사망 소식을 인터넷으로 전해 들은 것은 그의 사후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2022년 2월 26일 오후 12시 20분 우리나라 초대 문화부 장관이자 작가, 소설과, 평론가, 교수의 삶을 산 이어령 선생께서 별세했다’는 기사와 함께 ‘친구가 없는 삶은 실패한 인생이다’라는 그의 글을 보내왔다.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다. 그래서 외로웠다.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것이다. 남들이 보는 이 아무개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보는데, 나는 사실상 겸손 아니라 실패한 삶을 살았구나… 그것을 느낀다. 

 

세속적인 문필가로 교수로 장관으로 활동했으니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 겸손이 아니다. 나는 실패했다. 그것을 항상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내게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내 삶은 실패했다. 혼자서 나의 그림자만 보고 달려왔던 삶이다. 동행자 없이 숨 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더러는 동행자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경쟁자였다. 

 

정기적으로 만나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야 삶이 풍성해진다. 나이차이,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함께 만나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외롭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은 김지수라는 기자와 암으로 죽음을 앞둔 이어령과의 대화를 엮어 만든 것이다. 

 

많은 말 중에 내 친구는 하필 ‘친구가 없는 삶은 실패한 인생이다’라는 글을 보냈을까. 나를 몹시 나무라고 싶은 마음인 게다. 

 

시가 잘 씌어지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더니, 한달 내내 전화 한 통이 없다고 무심하다고 탓을 하더니, 너무 멀리 있는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더니, 함께 커피 마시며 수다 떠는 친구가 그립다더니, 이 글을 찾아낸 것이다. 내가 섬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이어령을 생각한다. 내가 이어령의 ‘흙 바람 속의 저 바람 속에’를 읽은 것은 대학신문 기자로 심부름하던 어느 해 여름이었다. 

 

첫 번 수고비를 주필이 ‘거마비’라고 쓴 봉투에 넣어 주었는데, 이 돈으로 내가 처음 구입한 책이라 나는 이 책을 기억한다. 이 책은 나를 번쩍 정신차리게 하는 무엇이 있었다. 

 

그의 언어, 그의 비유, 의표를 찌르는 듯한 냉혹, 기발한 대비, 눈치 안보는 비판들은 나의 어린 지적 목마름을 적셔주었다고나 할까. 

 

그는 단박에 나의 우상이 되었다. 그 후 신춘문예 한차례에 떨어지고 나서 나는 이어령 교수를 떠났고 한국을 떠났다.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김지수라는 기자와의 대담을 책으로 만든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읽어보니 이어령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가르침이었다. 

 

옛 선지자처럼 제자를 앞에 놓고 “제자여, 그리하여 나는 말 하노라”식의 대화였는데 왠지 어색하긴 하다. 그러나 행복, 사랑, 용서, 영성 같은 무거운 주제를 쉽게 풀어가는 이어령 식의 대화법은 유효한 책이었다.

 

- 책에 대하여… “의무감으로 읽지 않는다. 재미없는 데는 뛰어넘고, 눈에 띄고 재미있는 곳만 찾아 읽지. 나비가 꿀을 딸 때처럼. 나비는 이 꽃 저 꽃 가서 따지, 1번 2번 순서대로 돌지않아. 목장에서 소가 풀 뜯는 걸 봐도 여기저기 드문드문 뜯어. 풀 난 순서대로 가지런히 뜯어 먹지 않는다고. 재미없으면 던져버려. 반대로 재미있는 책은 닳도록 읽고 또 읽어.”

 

- 글쓰기에 대하여… “글을 쓸 때 나는 관심, 관찰, 관계를. 평생 이 세 가지 순서를 반복하며 스토리를 만들어왔다네.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면 나와의 관계가 생겨.”

 

- 생의 진실에 대하여… “모든 게 선물이었다.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삶은 죽음 사이에 있다.” 그걸 누가 모릅니까?

 

한편 이어령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언어의 마술사라 불리고, 단군 이래의 재사라는 호평을 받는 당대의 지성인이란 분이 지난 수십년 과연 이 사회에 무엇을 기여하고, 대한민국을 위해 무슨 헌신을 했는지, 한국문학에 무슨 비젼을 주었는지 묻고 싶다. 그는 무신론에서 전도사로 추락했다. 그에게 무엇을 물으리”라는 비판의 소리는 그가 했던 말의 부메랑이었다. 

 

이어령은 22세의 나이에 ‘우상파괴’라는 논문에서 김동리 서정주를 비판했고, 이상을 등장시켜 ‘이상문학상’으로 끌어낸 장본인이다. 이만하면 그는 한국문학의 길라잡이였다고 할 수 있다.

 

스승이 드디어 숨을 거두려고 하자 제자들이 귀를 기울였으나 그 스승은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죽었다. 어떤 제자들은 스승이 많은 말을 남겼다고 했고, 어떤 제자들은 스승은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는 인도의 설화가 생각났다. 

 

떠난 이어령 교수를 추모하며… 나는 그저 이어령의 한계, 인간의 한계를 느꼈을 뿐이다. 글쎄다. 이 세상 사람들은 백인백색. 모두 다르다. 모든 것이 그랬다. 

 

세상을 풍미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있다. 누구나 떠나는 그 길에 같은 모습으로 또는 다른 모습으로. 죽음의 수수께기를 풀지 못하고 수수께기 같은 말만 남기고 떠나는 길, 그것이 죽음의 길은 아닐지. *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큰 과일 잭 푸르트(Jack Fruit)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막상 ‘잭 푸르트’라고 하면 그 이름이 생소하신 분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잭푸르트는 한국인이 그다지 즐겨먹는 과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여러분들이 마트에…
    건강의학 2022-04-15 
       10년쯤 뒤 사람들은 세계 자동차산업을 대표하는 생산방식에 대해 무엇을 얘기하게 될까? 아마도 ‘테슬라 생산방식(Tesla Production System)’을 얘기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테슬라 생산방식’이 더 부각되고, 또 훗날 자동차산업 역사·분석가…
    부동산 2022-04-15 
    어느 날, 어떤 아버지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루 종일 고된 업무를 하느라 그의 몸은 무척 지쳐 있었습니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서 신문을  뒤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의 꼬마 아들이 달려와 아빠의 목을 감싸 안으며 말했습니다. “아빠, 나 하고 놀자.…
    교육상담 2022-04-08 
    아파트나 개인주택을 렌트해서 거주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보험이 세입자보험(Renter’s Insurance)이다. 그런데 렌트하우스나 아파트에 거주하는 분들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에 손실이 생길 경우 랜로드가 보상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피해가…
    보험 2022-04-08 
    지금쯤이면 많은 분들이 2021년도 세금보고를 끝냈을 것이다. 올해 1차 세금보고 마감일은 4월18일이다. 4월15일이 Washington DC의 공휴일(노예해방 기념일)이기 때문에 연방 공휴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Washington D.C 거주자 및 그 밖의 많은 사…
    세무회계 2022-04-08 
    “아무래도 안 되겠어. 잘못 가고 있는 것 같아.” 한 번도 들어보지도 가보지도 않은 곳을 무작정 내비게이션을 따라 달리다 보니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엉뚱한 곳을 향하는 것 같았다. 골라 입은 옷은 날씨에 비해 무거웠고 마음은 거기에 비해 팔랑대기 시작했다. 예전과…
    문화 2022-04-08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벌써 2022년의 1/4이 지난 4월입니다. 며칠 전 퇴근후 집앞 우편물을 가지러 가던 중 나무를 보니 조그맣지만 파릇파릇한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잠시나마 싱그러운 봄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오늘은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어울리는 대표적인…
    건강의학 2022-04-08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서 주택 담보대출(모기지) 금리가 급등함에 따라 주택 담보 대출 수요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  3월 말 모기지 은행 협회(MBA)에 따르면 모기지 신청 건수는 전달보다 8.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감…
    부동산 2022-04-08 
    바다건너 고국에서는 문재인 현재 대통령과 윤석열 차기 대통령이 첫 회동을 마쳤다고 한다.  대선 이후 19일 만으로 역대 가장 늦은 대통령과 당선인 간 만남이었지만, 동시에 최장시간 대화를 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총 171분간 대화가 이뤄졌다고 하며 이는 역대 대통령과…
    세무회계 2022-04-01 
    카이로프랙틱 치료라고 하면 아직 뭔가 생소하고 명확하게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과연 카이로프랙틱 치료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기에 건강에 이런저런 도움을 주는 것일까요? 또 어떤 분은 카이로프랙틱 치료는 별로 효과도 없었고 왜 치료를 받…
    건강의학 2022-04-01 
    시 께나 쓴다는 친구로부터 이어령 교수의 사망 소식을 인터넷으로 전해 들은 것은 그의 사후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2022년 2월 26일 오후 12시 20분 우리나라 초대 문화부 장관이자 작가, 소설과, 평론가, 교수의 삶을 산 이어령 선생께서 별세했다’는 기사와 함께…
    문화 2022-04-01 
    안녕하세요! 전체적인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일상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한 ‘닭고기’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닭고기는 담백한 맛과 부드러운 육질이 특징입니다. 다른 육류와 달리 근육 속…
    건강의학 2022-04-01 
    ‘돈’이 행복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돈’을 걱정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시대다. ‘돈’과 ‘부자’는 많은 사람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다.  여러 매체에서는 온갖 역경을 딛고 원하는 ‘부’를 쟁취한 사람들이 날마다 나온다. 사람들은 모이면 부동산, 주…
    부동산 2022-04-01 
    얼마 전 달라스 인근 지역에 갑자기 우박이 쏟아지는 바람에 수많은 자동차들과 건물지붕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다행인 것은 여기저기에서 산발적인 피해를 입었지만 그렇게 넓은 지역에 피해가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지리적으로 넓은 미국은 각 지역마다 자연재해의 위험…
    보험 2022-03-25 
    말이 좋아 자가격리지 강제감금이나 다름없는 격리소 생활 6일째.입소할 때만 해도 언제 이곳을 나갈까 싶어 한숨 지었는데, 내일이면 출소다. 멈춘 듯했던 이 공간의 시간도 그럭저럭 공평하게 흘렀던 모양이다.  2020년 4월부터 한국 입국자는 검역법 등 관련 법령에 근거…
    문화 2022-03-25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