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

페이지 정보

작성자 admin
문화 댓글 0건 조회 3,325회 작성일 20-03-20 09:33

본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떠올리는 작금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하루하루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봄이 왔는데 봄이 아닙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나무들은 가지마다 환하게 불을 밝히고 연둣빛 풋내를 찍어 바르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건 황량한 길거리와 혹독한 음울만 있습니다. 봄을 만들어 보내느라 애를 쓴 우주도 지구에 온기를 보태는 태양도 밀물처럼 막을 수 없이 천천히 들이치는 공포에는 아무 기척도 되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처음 발병해 3개월여 만에 세계 110개국 이상으로 확산한 코로나 19, 지난 겨울 입구부터 서서히 조여오더니 봄이 시작되려는 순간 빨간불을 켜고 아예 막아섰습니다.

그냥 숨죽이고 파란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시작이 되었으니 끝은 있겠지요.

그러나 그 끝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니 두려운 것입니다. 초유의 사태입니다. 작은 미생물과 세균은 햇볕(자외선)에 취약하다고 합니다.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텍사스의 열기, 뜨거운 땡볕의 여름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조용한 가게에 앉아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정작 손님이 들어서면 겁이 납니다. 덜컥 무서운 생각마저 들고 맙니다.

여자친구가 간신히 구해다 준 마스크를 건네주면서 꼭 사용하라고 당부하고 당부를 거듭하던 큰 아이를 봐서라도 꼭 써야 하는데 손님들은 마스크도 없이 들어오니 마스크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합니다.

어제는 마스크를 썼다가 손님이 “너 아파?” 하며 기겁을 하는 바람에 아니라고 안 아프다고, 안 아프려고 쓴 것이라고 설명을 하느라 진땀을 흘렸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마음이 불편합니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개조라도 하려나 봅니다. 악수와 포옹으로 접촉이 오랜 미덕이던 관계가 2020년 봄에 와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과 거리를 두어야 하고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은 피해야 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많은 것을 바꿔놓고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고도 무한정 장례식을 미루어야 하니 슬픔이 갑절로 늘고 또 누군가는 한 해 전부터 준비한 결혼식을 미루어야 하니 패닉상태에 빠지게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도 잘 적응하는 동물이 맞습니다.





지난 1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 19에 팬데믹(Pandemic)을 발령하며 “인류의 비극이자 세계적 보건위기”라고 선포했습니다. 1948년 WHO가 설립된 이후 팬데믹을 선언한 사례는 이번까지 포함해 세 차례가 되었습니다.

1968년 홍콩에서 처음 발생한 홍콩독감과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입니다. 팬데믹은 WHO가 분류하는 ‘감염병 경보단계’ 6단계 중에 최고 위험등급에 속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바이러스가 인간세계에 무시무시한 선전포고를 하고 있지만, 단결된 인간의 대응에 곧 기세가 꺾이고 말 것입니다. 인간은 늘 그래왔습니다.

기아가 오면 생산을 늘렸습니다. 질병이 퍼지면 초기에는 고전하지만, 기어코 백신을 만들어 내고 말았습니다. 숨 한 번 제대로 쉴 수 없게 인류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무장을 하고 나섰습니다.

나와는 상관 없다고 느꼈던 지난 그 어떤 재난들과는 다르게 ‘나 하나쯤이야’ 하기엔 이번 사태는 너무 심각합니다.

가족을 위해 서로를 위해 나아가 인류를 위해 자제하는 방법 밖에 답이 없습니다. 그 어떤 지혜와 연륜을 총동원해도 답이 안 나오는 상황에 배려의 마음, 양보의 미덕이 꼭 필요합니다.





며칠째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 비에 바이러스가 다 떠내려가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내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했는지 얼마 전에 친구가 갖다 놓은 홍학꽃이 눈을 맞추며 안부를 물어옵니다.

한나라 황제 원제는 북방의 흉노족과의 화친을 위해 공주를 보내야 했습니다. 원제는 궁여지책으로 공주 대신 초상화를 보고 제일 안 예쁜 궁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게 바로 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왕소군이었습니다.

초상화와 다르게 절세가인인 그를 보내야 하는 원제를 두고, 또 눈물로 떠나는 왕소군을 두고 후에 당나라 시인 동방규는 그의 시 ‘소군원’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이 땅에는 꽃도 풀도 없어 봄이 왔지만 봄 같지가 않구나.”

창궐하는 바이러스와의 친화를 위해 한나라 황제처럼 저 예쁜 홍학꽃이라도 바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글귀를 대문에 붙이며 희망을 꿈꾸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인사차 왔다며 그가 들고 온 화분은
홍학, 홍학꽃이었다





꽃은 전혀 기색도 않는데
하트 모양의 이파리는 정확히
흔들리고 있었다





넉넉하지 못한 나의 공방 어디쯤엔가
눈 하나 걸고 싶은지
내내 틈을 노리며 풋내 찍어 바르더니
며칠 전부터는 아예
노란 심지까지 드러내 놓고
설익은 모습에 멋쩍은 웃음 발라가며
한 옥타브 올린 음으로
안부를 묻기 시작한다





살살 말의 고삐가 풀리는가 했는데
음표만 날리던 얼굴에 온통
더운 숨 몰아쉬며
온몸에 꽃물이 돋고 만 것은 무슨 조화일까





때때로 삶은
서툴고 엉성해서 길을 잃는 듯하지만
마음과 말의 친화에서
덩달아 느낌표와 물음표로 섞이다가
붉게 익어 행간을 잃은 문장도 되고 마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몸속에 함께 살아갈 달 하나 띄우고
마음속에 별 하나 그려 넣으면
그때부터는 축 늘어졌던 하루도 가부좌를 튼다





김미희, (낯 익히기) 전문





김미희
시인 / 수필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자동차보험 가입은 법적인 의무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사고를 당해 상대에게 클레임하려고 보면 상대편이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고 있지 않은 경우를 보게 된다. 이럴 때 내 과실은 아니지만, 자신의 보험회사에 청구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을 무보험자 피해 보상 …
    보험 2020-03-27 
    연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로 인한 감염확진자와 사망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진정의 기미가 보이지 아니하는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문제로 많은 사람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오늘까지(3월 9일) 전 세계의 112개국에서 111,862명의 감염…
    보험 2020-03-13 
    올 봄은 유난히도 더디게 갔다. 거의 날마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블랙홀에 파묻혀 모든 일상이 그곳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러다보니 꽃샘추위가 지나갔는지, 목련은 피었다 졌는지, 부활절이 언제였는지 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그저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먹고 자고 해가 …
    문화 2020-06-12 
    하와이에서 생긴 일 (26) “큰 바다사자라고?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되게 크네. 센프란시스코 어부들의 시장 피어 39에서 봤을 때는 이렇게 큰 줄 몰랐는데, 그때 이놈들이 떼로 있어서 그랬나. 이놈은 키가 3미터쯤 되는 것 같지? 몸무게는 500킬로는 되는 …
    문화 2020-06-05 
    근간 코로나 ‘그 년’ 때문에 ‘방콕이 길어지니 온갖 옛 생각이 떠오른다. 가끔은 마치 빠삐용처럼 중얼거리며 한 때의 씁쓸했던 기억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보았다. 그가 산사(山寺)행을 결심한 것은 그 해 가을, 졸업을 한 학기 남겨 두고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하…
    문화 2020-05-29 
    타월은 17세기 터키에서 발명되었다고 하며 18세기에 현대의 타월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으나 19세기 까지도 아주 구하기 힘든 품목이었다고 한다.5월 25일은 타월 데이(Towel Day)다. 영국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
    문화 2020-05-22 
    딱 멈춘 것 같았던 시간은 계속 달리고 있었다. 눈부신 5월 아침이다. 아니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아침이다.어머니 날이라고 아이들이 점심을 준비하나 보다. 사내녀석 둘이서 무슨 할 말이 저리 많을까. 큰아이 여자친구까지 합세하니 집안은 온통 달콤한 냄새와 웃음소리로 …
    문화 2020-05-15 
    남편은 이주 전 점심을 잘 먹은 후 넘치는 에너지로 지붕 위 처마를 손본다며 올라가더니 잔디밭위로 떨어졌다.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 이층 발코니 기둥을 잡고 내려가다 당한 변이었다.평소 같으면 패밀리 닥터에게 전화해서 정형외과 닥터를 볼 터인데 때가 때인지라 응급실로…
    문화 2020-05-08 
    하와이에서 생긴 일 (25) 헬기 조정사 제임스가 니하우의 카우마카니(Kaumakani) 헬리콥터 관리실에 들러 헬기의 정비 관계를 알아보는 동안 레이와 상필은 ‘금지의 섬’ 탐색에 나섰다.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태평양 한 가운데,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는 수줍은…
    문화 2020-05-01 
    집콕 기간에 날씨까지 요변덕을 떨어서 96도와 39도를 기록했다. 말갛고 환하다가도 갑자기 천둥번개에 비를 뿌린다.유일한 외출인 운동장 걷기에 딴지를 걸기도하고 바람도 질세라 20마일 가까이 불어재끼니 봄, 여름, 겨울옷을 교대로 입어야하는 달라스의 봄날!오늘은 바람…
    문화 2020-04-24 
    [ 문학에세이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전대미문의 괴질은 온 인류를 공포 속에 몰아넣고 마치 전대미문의 휴가라도 주는 듯 시간의 노예들을 풀어주는 듯 사람들의 동선을 집으로 돌려놓았다.빛도 얼려버릴 냉정함으로 가차 없이 밖에서 …
    문화 2020-04-17 
    3월 13일 오전에 나는 컨디션이 좀 꾸무럭해서 사우나나 할까 하고 헬스크럽엘 갔다. 근데 보통 때와는 달리 금요일인데도 불구하고 GYM도 그렇거니와 수영장 부근이 지나치게 한산했다.수영장엔 나이 든 할머니 혼자 마치 휴가를 온 것처럼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나 역시…
    문화 2020-04-10 
    올드 하와이안 클럽 회원들에게 태권도 시범을 보인 뒤 상필이 안내 된 곳은 1,000명이 함께 식사 할 수 있다는 엄청난 식당이었다. 이태리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을 연상케 하는 식당벽화는 카메하메하 1세와 그의…
    문화 2020-04-03 
    집 앞 두 교회의 주차장이 주일인데도 휑하다. 하얀 돌배꽃잎이 떨어져도 봐줄 사람이 없다. 150여 국가들이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을 하는 동안에 찾아온 달라스의 봄. 작년 4월의 다운버스트 스톰과 140마일로 9번을 강타한 10월의 끔찍한 토네이도로 전쟁폐허처럼…
    문화 2020-03-27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떠올리는 작금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하루하루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봄이 왔는데 봄이 아닙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나무들은 가지마다 환하게 불을 밝히고 연둣빛 풋내를 찍어 바르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습…
    문화 2020-03-20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