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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추세츠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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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문화 댓글 0건 조회 3,030회 작성일 19-11-0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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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추세츠의 가을풍경을 맨 처음 본 것은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우가 주연한 공전의 히트작 ‘러브 스토리’란 영화에서 였다. 단풍잎이 떨어지는 하버드 캠퍼스와 동부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던 그 영화를 보며, 언젠가는 나도 저 풍경 속으로 들어 가보리란 꿈을 가졌던 기억이 새롭다.

처음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영국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북동부의 여섯 주를 뉴잉글랜드(코네티켓, 뉴햄프셔, 버몬트, 매사추세츠, 메인, 로드 아일랜드)라고 했는데, 사계절이 분명하고 도시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의 취향에도 맞아, 우리 동포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첫날 묵었던 플러싱의 호텔에서 내려다본 풍경도 서울 외곽의 한 동네 같았다. 크고 작은 아파트와 걸어다니는 사람들, 드문 드문 이어지는 한글간판들이, 예전에 살았던 휘경동이나 쌍문동을 연상시켰다.





동부문인협회 30주년 행사를 마치고 동부문인들과 함께 한 문학여행의 여정도 매사추세츠의 가을을 따라 걷는 길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음울해보이는 ‘주홍글씨’의 배경이 된 도시 살렘과 엠 허스트에 위치한 에밀리 디킨슨의 생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살았던 월든 호숫가 등 어딜 가던지 나무들은 물들어 있었고, 숲이 많아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가 금방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유럽과는 다른 개성적인 미국의 근대문학을 이끈 대가들이 유독 이 지역에서 많이 탄생 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후와 환경이었다.





우리가 주홍글씨로 알고 있는 나다니엘 호손의 작품 원제는 ‘THE HOUSE OF SEVEN GABLES’다. 예전에도 삼각형 모양의 게이블이 많은 집이 부잣집이었는데, 작품의 주인공인 주홍글씨 A를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았던 헤스터의 집이 그랬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 청교도 사회가 지니고 있던 경직된 분위기와 위선과 비리로 점철된 그들의 일상을 낱낱이 고발했다. 길고 추운 겨울, 생존을 위해선 마녀사냥이 필요했을 것만 같은 살렘이란 동네는 거친 바닷바람이 여전히 불었고, 여기저기 흩어진 집들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평소에 가장 가보고 싶었던 미국의 자연주의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살았던 월든 호수는 하마터면 못 볼 뻔 했다. 로드 아일랜드에서 오기로 한 시인부부가 교통체증 때문에 한 시간이나 늦어 일정이 계속 지연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주립공원이 된 월든은 오후 5시가 문 닫는 시간인데, 도착하니 그 시간이었다. 다행히 단체여행이어서 그런지 30분을 더 연장해주어 해 질 무렵의 월든 호수가와 오두막을 볼 수 있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월든 호수가에서 손수 의식주를 해결하며 자연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은 책 ‘월든’과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며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권력의 의미를 깊이 성찰한 ‘시민의 불복종’을 이 곳에서 썼다.

이 책들은 19세기에 쓰여진 가장 중요한 책들 중으로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가 예견했던 환경문제는 지금 우리에게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그가 가끔 끼니를 위해 낚시를 했던 호수 주변엔 저녁 노을이 한창이어서 그 곳에서 찍은 사진은 모두 어둡게 나왔는데, 호수에 비친 단풍나무 그림자만이 ‘월든’의 한 구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집에는 에밀리 디킨슨의 ‘고독은 잴 수 없는 것’이란 시집이 있다. 죽을 때까지 영원한 처녀로 결혼을 거부하며, 세상에 보일 목적으로 시를 쓰지 않은 시인은 자신의 시가 출판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또한 문법을 무시한 듯한 그녀의 시를 당시 편집자들 역시 별로 안 좋아했는데, 절대 고독 속에서 1,700여 편의 원고뭉치와 순수한 생애를 남긴 그녀의 집은 원형 그대로 거의 보존되어 있었다.

시를 쓰던 작은 책상과 침대, 그녀가 즐겨 입었던 흰 드레스, 즐겨 만든 새나 나무, 풀잎에 관한 식물도감, 하버드대에 보내고도 남은 수많은 장서와 편지들이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만약 내가 아픈 마음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이 아니리”라고 말한 시인의 독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마지막 날엔 ‘순수의 시대, THE AGE OF INNOCENCE’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이디스 워튼의 저택과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익살스런 그림으로 미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로만 락웰 뮤지엄엘 갔다.
19세기 뉴욕 상류사회의 생활상과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준 ‘순수의 시대’는 영화로도 큰 성공을 거뒀는데, 여행 가이드는 집에서 구운 이 영화 유에스비를 퀴즈 당첨자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난 문학작품으로 만든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내가 받은 상품은 아쉽게도 수세미 세트였다. 아무래도 넷플릭스로 들어가서봐야 할 것 같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 여행하기 딱 좋은 계절, 집에 돌아오니 동부의 가을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쌀쌀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곳 나무들은 아직 옷을 갈아입을 마음이 없어 보이니, 올해도 제대로 된 단풍을 텍사스에서 보긴 어려울 모양이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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