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우리 앞집 아줌마, 캔디

페이지 정보

작성자 admin
문화 댓글 0건 조회 3,362회 작성일 19-06-14 10:36

본문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올해 오월엔 유난히 비 오는 날이 많았다. 동남아시아 몬순처럼 시도 때도 없이 오는 비에 흐드러지게 피는 것은 장미만이 아니다. 채소밭 잡초들도 덩달아 쑥쑥 자라고, 포도나 오이 넝쿨은 이미 자신들의 구역을 넓힌 지 오래다. 그 와중에 작년에 심은 접시꽃이 오랜만에 꽃을 피웠다. 난 지인들에게 이 귀한 팥죽색 접시꽃 사진을 보내면서 ‘도도한 그녀’라 명명했다. 뭐든지 흔하지 않은 것은 다른 법인가 보다.

이번 주말 남편은 피정을 떠나고 집에는 강아지와 나만 있다. 하늘은 드높고 들판에 야생화는 여름을 향하여 그린 그린 하고 있다. 모처럼 훌쩍 자란 케일을 수확하려고 뒷마당으로 나서는데, 못 보던 염소가 뒷집 마당과의 경계선에서 풀을 뜯고 있다. 자세히 보니 3마리인데 두 마리는 하얀색이고 1마리는 검은색이다. 이윽고 한 놈이 우리마당으로 건너와 풀을 뜯다가 나를 보더니 뒤따라온다. 사람을 따르는 것이 애완용염소 임이 틀림없다. 곧이어 두 마리도 우리 집 마당으로 건너왔다. 난 비록 크지는 않지만 염소 뿔을 보곤 줄행랑을 치는데, 이녀석들은 나무옆에 자란 쑥들을 점령하더니 곧바로 옆마당 장미꽃밭을 지나 앞마당 까지 와서 정원을 쑥대밭을 만들려고 한다. 대책이 안서기는 염소나 나나 마찬가지여서 난 무조건 앞집으로 달려갔다.

캔디는 저녁을 만들다 말고 나와서 상황을 눈치 채곤 우리 집 뒷마당으로 따라 나선다. 염소가 달아난 걸 알게 된 뒷집 린다도 자기네 뒷마당에 나와 있다. 손에는 아기 염소용 커다란 우유병이 들려있다. 캔디는 한 마리 씩 차례대로 안아서 린다에게 건네준다. 린다는 이 염소들이 아직 베이비 여서 아무 곳이나 가려고 한다며 엄살을 부린다. 린다와 캔디는 마치 애완용 강아지처럼 염소들이 몹시 귀여운 모양이어서 한참 동안이나 염소에 관한 수다를 떨고 있다.

캔디는 바로 우리 앞집 여자이다. 미국여자 치곤 작은 키에 화장기라곤 없는 수수한 얼굴인데 아주 부지런하고 동물들을 좋아한다. 송아지만한 개를 세 마리나 키우고 그것도 모자라 닭, 당나귀, 말 두 마리, 소 몇 마리등, 동물가족이 많다. 작년엔 염소 두 마리를 사서 마치 아기들처럼 플레이 팬 안에 넣어두고 키웠다. 고풍스런 집안에 새끼염소 두 마리가 풍길 내음과 소음을 생각하면 우리 같은 사람은 엄두도 못낼 일이다. 진정한 컨트리 우먼이다. 어려서부터 컨트리에서 자랐다는 그녀는 정원이나 채소밭 가꾸는 것부터 동물농장 관리 까지 못하는 것이없다. 처음에 재미로 시작한 무공해 달걀 판매도 이제는 없어서 못 판다. 가까운 이웃들이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농장구경도 하고 달걀을 사가는 것이다.

이렇게 겉으론 보기엔 영락없는 시골아낙인데 집안엘 들어서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집처럼 얼마나 근사하고 깔끔한지 부촌의 모델 하우스를 보는 것 같다. 실내장식도 훌룡할 뿐더러 아웃도어 키친에, 올림픽 사이즈처럼 큰 수영장에, 게스트 하우스까지 있는데,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혼자서 다 청소를 하고 관리를 한다. 그래서 인지 캔디의 옷차림은 늘 밀짚모자에 셔츠와 작업복 바지, 목이긴 장화 차림이다. 닭이나 소 모이를 주거나 잔디를 깍거나 하는 집안일 역시 모두 그녀의 일이다. 소방서 대장으로 근무하다 은퇴한 캔디 남편은 늘 맥주캔을 들고 다니며 유유자적하고 가끔 헤이(hey)를 사다주는 정도인데, 남편은 잔디 깎는 캔디를 보면, 캔디 남편인 탐을 엄청 부러워한다.

요즈음 한국티브이를 보면 대부분의 선전이 건강식품이나 화장품에 관한 것이다. 성형왕국 답게 성형하지 않는 것이 마치 자신을 관리 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며, 전 세계 왕실에서 사용한다는 각종 화장품들을 사라고 아우성이다. 과연 서울에 가면 얼굴에 잡티 하나 없는 우아한 주부들이 넘친다. 친구는 요즘 부의 상징은 옷 보다는 명품 피부라고 말한다.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에 사는 여자들의 가장 큰 차이는 피부결 이라는 것이다. 백옥처럼 하얗고 광택나는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중동여자들처럼 눈만 내놓고 다니며, 햇빛 비치는 날 모자나 선블럭크림 없이 외출을 하면 야만인 취급을 받는다. 뙤약볕으로 유명한 텍사스에서 캔디나 나처럼 맨얼굴로 마당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과연 건강하게,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하고 되묻게 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과 스스로가 사랑한 삶은 확실히 표정부터가 다르다. 얼굴이 좀 타면 어떤가. 주근깨나 기미가 좀 있으면 어떤가, 이런 것들이 여자로서 실패한 인생의 흔적은 아닐 것이다.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걱정과 불안으로 쫓기듯 사는 도시의 삶보다는 맨발로 땅을 밟으며 풀내음 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석학 임어당선생은 “거죽의 비순수함과 위선을 벗어 던지고 본래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그리고 더없이 단순한 생각과 소박한 삶으로 되돌아가기 전에는 그 문명은 아직 완성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고 역설했다. 캔디네 들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걸보니 이제 바야흐로 본격적인 텍사스여름이 시작 되었나 보다. 오늘따라 말썽꾸러기 캔디네 당나귀, 블루의 콧소리가 더 요란스럽게 온 동네를 깨우고 있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B07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이번 칼럼에서는 한국에서 상속이 일어나는 경우 적용되는 한국의 상속세 과세제도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과세대상 사망 또는 실종선고(사람이 실종된 경우 일정한 법률요건이 충족되면 법원의 실종선고를 통하여 법률상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로 상속이 개시된 경우…
    법률 2019-05-06 
    레이가 느닷없이 상필의 뺌을 때렸다. 이니, 이게 어찌된 일이지. 레이는 상필이 기절한 줄알았는데 멀쩡해서 우선 반가웠고 그 다음은 스모 선수들에게 걸려들면 죽지 않으면 반 병신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때문에 미리 손을 쓴 것이다. “당신이 감히 하와이의 스모 영웅 …
    문화 2019-08-02 
    [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이육사의 <청포도>의 계절 7월이 가고 있다. 19세기 미국의 자연주의 수필가인 존 버로우즈는 “나는 위안 받고 치유되고 감각이 새롭게 되기 위해 자연으로 간다.”고 했다. ‘바닷병’ 걸렸던 때가 생각이 났다. 이민초기 좌충…
    문화 2019-07-26 
    [ 문학에세이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아빠! 제발 좀 조심해!” “아빠! 내가 할게, 제발 내려와!” “아빠는 대한민국 육군 출신이야.”라며 힘주어 말하지만, 나무 위에 서서 톱질하는 아빠가 불안하고 안쓰러운지 아이들은 안절부절못합니다. 일찌감치 저녁…
    문화 2019-07-19 
    텍사스 주청사를 구경하고 나서자 친절한 구글맵 아가씨는<윌리엄 시드니 포터 하우스>가 여기서 6분 거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난 길가에 세워둔 차로 가서 파킹머신에 동전을 몇 개 더 집어넣고 윌리엄 시드니 포터가 누구인지를 생각해보았다. 라스트네임을 보니 그…
    문화 2019-07-12 
    한인작가 꽁트 릴레이 38 하와이에서 생긴 일(14) 술에 취해도 몸집이 우람한 케빈 모모아가 느닷없이 자기는 ‘Don, Don’을 좋아한다고 했다. 뭐? 돈을 좋아한다고? 웬 돈? 레이가 나서며 말했다. “Don, Don’ is a Korean restaurant .…
    문화 2019-07-05 
    지난 9일 오후 2시경 달라스를 훑고 지나간 아주 강하고 재빠른 스톰 폭탄이 ‘다운버스트’란다. 토네이도는 상승하는 큰 소용돌이인데 비해 급격히 하강하는 것이 다운버스트로서 달라스 포트워스를 시속 70마일정도로 두 시간 가량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고 했다. 다운버스트 스…
    문화 2019-06-28 
    사진사 아빠를 둔 우리 아이들은 카메라에 대한 울렁증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생긴 증상이 아니지요. 아이들이 철이 들 때부터였으니 족히 20여년은 되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통에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방어벽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계가 풀…
    문화 2019-06-21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올해 오월엔 유난히 비 오는 날이 많았다. 동남아시아 몬순처럼 시도 때도 없이 오는 비에 흐드러지게 피는 것은 장미만이 아니다. 채소밭 잡초들도 덩달아 쑥쑥 자라고, 포도나 오이 넝쿨은 이미 자신들의…
    문화 2019-06-14 
      [꽁트릴레이 ]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37 하와이에서 생긴 일 (13)   하와이의 바람은 신선하다. 거침없이 적도로 향하는 무역풍은 바다와 바다를 타고 불어와 하와이에 머문다. 이윽고 멀리가는 바람은 정처없고 가까이 부는 바람은 꽃향기를 날린다. “레이한테서는…
    문화 2019-06-07 
    [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 도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시편 145:18-19) 지난달 ‘작은 둥지’에 손…
    문화 2019-05-24 
    [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두 해가 지났으니 이제 편해질 때가 되었으련만, 울렁증은 여전합니다. 살아생전 “난 꽃밭이 좋더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 소주를 챙기고는 월마트에 들러 평소에 엄마가 좋아하시던 가루분 한 통과 카네이션을 한 다발…
    문화 2019-05-17 
    오늘도 ‘도넛궁전’ 주방 안은 절절 끓는 기름과 후앙소리로 매캐한 냄새와 소음이 그득했다. 토요일 오전 5시이면 가게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두 번 째 반죽을 밀 시간이었다. 미세스 김은 아기엉덩이처럼 보드라운 반죽을 밀대로 밀며 아까부터 주차장쪽으로 촉각을 계속 곤두…
    문화 2019-05-10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   “인간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의학 박사인 스캇 펙에 의해 1983년 쓰여졌습니다. 스캇 펙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에서 의학 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심리상담자요 정신과 의사인 그는 마흔 살…
    문화 2019-05-08 
    ·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전공과목은 ‘석유공학’이다. · 가장 낮은 연봉을 받는 전공과목은 ‘유아교육학’이다. ‘더 가치 있는 학문은 무엇일까?’ 모든 학문은 서로 다른 기준의 가치를 담고 있으므로, 가치는 비교가 불가하며, 모두 동일하게 중요한 학문이라는 점에선…
    교육상담 2019-08-02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