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 베이커 헬퍼 장씨

페이지 정보

작성자 admin
문화 댓글 0건 조회 3,465회 작성일 19-05-10 17:38

본문

오늘도 ‘도넛궁전’ 주방 안은 절절 끓는 기름과 후앙소리로 매캐한 냄새와 소음이 그득했다. 토요일 오전 5시이면 가게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두 번 째 반죽을 밀 시간이었다. 미세스 김은 아기엉덩이처럼 보드라운 반죽을 밀대로 밀며 아까부터 주차장쪽으로 촉각을 계속 곤두세우고 있었다. 헬퍼 장씨가 아직 안온 것이다. 보통 때 같으면 늦는다고 전화라도 한 통 주었을텐데 전화도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십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서 도넛가게를 운영하는 미세스 김은 주말 매상을 혼자 감당할 수가 없어 주말엔 헬퍼가 필요했다. 그런데 최근에 오년이 넘게 헬퍼를 해주었던 멕시칸 호세가 그만 두는 바람에, 갑자기 오게 된 헬퍼가 장씨였다. 생각해보면 이 것 또한 트럼프 때문이었다. 아직 영주권이 나오지 않은 호세는 작년부터 부쩍 불체자 단속을 염려하더니 급기야 지난달부터 일을 그만 두어 버렸다.

이십대 인 호세에 비해 베이커 장씨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뭐든지 굼뜨고 실수가 잦았다. 얼핏 보기에도 그 나이에 베이커도 아닌 헬퍼 일을 전전 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어쨌든 아쉬운 쪽은 미세스 김이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장씨는 여러 가지가 특이했다. 화장실엘 한 번 들어가면 함흥차사이고 뜨거운 물을 만지지 못했다. 열불이 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처음 잡 인터뷰 하러 올 때부터 어딜 가든지 와이프를 데리고 다녔는데, 그것도 알고 보니 본인이 운전을 못해서 그런 것이었다. 장씨는 일단 구르는 바퀴만 보면 멀미가 난다는 것이다. 내막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미국에서 다 큰 성인이 운전을 못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희귀한 일이었다. 게다가 눈치 빠른 헬퍼들 같으면 늦어도 2주면 파악할 부엌일들을 장씨는 아직도 헤매고 있었다. 한창 쵸코렛을 묻혀할 시간에 설거지를 하거나, 도넛을 튀기다 말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기 예사이고, 소세지반죽 레시피를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늘 정확하게 믹스를 하지 못했다. 멕시코에서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호세도 일주 일만에 다 파악한 일을 한국의 명문대를 졸업했다는 장씨는 노상 헤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허구 헌 날 자다가 샤워도 안하고 나오는지 부스스한 머리에 옷도 꼬질꼬질 한 것이 영락없는 백수 포스 였다.

그런 장씨가 잘 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뉴스에 나오는 각국의 정치에 관한 시사 분석 같은 것이었다. 장씨는 유학온 캐시어 미란이가 부엌으로 들어와 필링 도넛에 레몬이나 크림 등을 넣으면서 한국 뉴스를 한 마디만 꺼내기만 하면 그때부터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글레이즈 기계에서 글레이즈가 국수기계에서 국수 나오듯이 쏟아지고 있는데, 손을 빨릴 놀릴 궁리는 안 하고 자신이 마치 국회의원이나 되는 듯이 열을 내는 것이다.
한번은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미란이가
“어휴, 장씨 아저씨는 국회로 가실 분이 도넛가게로 오셨네요.” 하자, 장씨는 그렇지 않아도 친척 중에 국회의원이 한 명 있어 보좌관직 요청이 왔지만, 그쪽 세계를 잘 알기에 딱 잘라거절 했다고 한다. 또한 무슨 이야기 끝에 돈도 벌어볼 만큼 벌어봐서 자신의 마지막 남은 꿈은 오직 하나 있는 딸을 아이비리그에 입학시키는 것뿐이라고 했다. 장씨는 딸이 아이비리그에 입학 하는 날 자신도 딸을 따라 동부로 이주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 장씨는 일곱시가 다 되어 나타났다. 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경찰이 데려다 주었다는 것이다. 장씨는 갑작스런 사고로 놀랐는지 얼굴이 벌개져서 계속 와이프 운전솜씨를 탓했다.
“마누라가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가게에 늦겠다며 옐로우 라이트인데 좌회전을 하는 거에요. 죽을라고 환장을 했지....그 순간 신호가 바뀌면서 건너편에 있던 차량이 그냥 직진을 해서 우리 차 옆구리를 쳤어요! 틴에이져 둘이 타고 있었는데, 글쎄 이녀석들이 지네 부모한테 전화한다더니 그냥 사라져 버렸어요. 차량 번호도 기억 못하는데..... 아이구, 미국 와서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지......”
미세스 김은 장씨에게 내일은 일을 하지 말고 좀 쉬라고 일렀다.

다음날, 캐시어 미란은 소세지롤을 오븐에 넣다 말고, 놀라운 얘기를 했다.
“아줌마, 그거 알아요, 장씨 아저씨 독일의 유명한 대학에서 철학 박사 공부 하신 분이래요.  우리 학교 선배 하나가 알더라고요... 글쎄 지도교수를 잘못 만나 계속 학위를 못 받고 그냥 귀국해버렸나 봐요, 그러다 미국으로 왔대요. 본인도 그러잖아요, 당신아버지가 식사를 하다가도 장씨 아저씨 얼굴을 보면 숟가락을 밥상에 쾅하고 내려놓는다고요. 며칠 후, 장씨는 교통사고의 후유증인지 다리를 약간 절면서 나타나 당분간 쉬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게 구석에 있는 한국방송 티브이에선 장씨의 유학동기라는 유명한 시사 저널리스트가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중장년 실업문제에 대해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악기를 배우는, 혹은 시작하려는 학생들의 부모님과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음악은 재능이 아주 중요한 부분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는 합니다. 물론 재능은 음악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곤 합니다만 음악 교육자로서 저는 재능이 전부이거나 적어도 가장 중요한…
    문화 2019-08-02 
    라디오에서 클래식 음악 채널을 들을 때 곡 소개에서, 연주회에 가서 클래식 연주를 감상할 때 프로그램지에서 곡명 옆에 붙어 있는Op, K, Woo 등의 숫자를 보셨을 것입니다. 바로 곡 분류에 의한 작품번호인데요. 왜 곡마다 다른 알파벳으로 나누어 구분되는지, 그리고 …
    문화 2019-07-19 
    [ 음악 ] 음악계의 커플들 갈리나 비시넵스카야 ( Galina Vishnevskaya) 와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 Mstislav Rostropovich) 지난주에 로버트와 클라라 슈만 커플에 대해 소개해 드렸는데요. 클래식 커플 시리즈로 이번에는 소프아노 갈…
    문화 2019-07-05 
    [ 음악 ] 음악계의 커플들 로버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Robert Schumann and Clara Schumann 지난주에는 랑랑의 결혼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이 커플처럼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함께 연주를 하면서 사랑에 빠져 연인으로 발전하고 결혼에까지 이어지는 …
    문화 2019-06-21 
      [ 음악 ] 음악 영재들의 향연   [지난주에 이어서] 5. “Bare Necessities (네가 필요한 것들)” from Jungle Book 영화 정글북의 주제곡이자 Terry Gilkyson 이 작곡한 Bare Necessities는 아마도 그 어떤 디…
    문화 2019-05-31 
      [ 음악 ] 음악 영재들의 향연 [지난주에 이어서] 3.“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오늘밤 사랑을 느낄 수 있나요)?” from Lion King Tim Rice 작사, Elton John 작곡의 라이온 킹 주제가 입니다. 이 두 작…
    문화 2019-05-24 
    [ 음악 ] 음악 영재들의 향연 어느새 아이들의 방학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음악원에서는 일년에 두 번, 여름방학 직전과 겨울방학 직전에 학생들을 위해 Summer Recital 과 Christmas Recital 을 합니다. 지…
    문화 2019-05-17 
    Opus 31, No 2 and No 3 ( Tempest and La Chasse) 베토벤의 중기 작품들은 초기에 작품들에 비해 더 복잡해지고 혁신적입니다. 베토벤의 중기 작품들 중에 가장 유명하고 가장 인기 많은 작품들입니다. 2번 소나타는 ‘폭풍 ( Tempest…
    문화 2019-05-10 
    멘토 (mentor) 라는 말의 사전적인 뜻은 ‘경험 많고 믿을 만한 조언자’ 입니다. 비단 음악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좋은 멘토를 만나는 것은 성공적이고 행복한 결과와 삶을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합니다. 멘토가 꼭 선생님 일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세계…
    문화 2019-05-06 
    피아노를 상급자 수준으로 배워본 분들이라면 누구나 꼭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음악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 중 음악의 아버지 바하(J.S. Bach) 의 Well-Tempered Clavier는 피아노계의 구약성경 이라고 불리는데요. 24개의 장조와 단조 (장조 12개,…
    문화 2019-05-06 
      [ 음악 ] 음악 영재들의 향연   음악가에게 멘토의 중요성   믿을만한 친구나 동료도 때로는 멘토의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음악적인 부분을 넘어선 다양한 문제에 대해 조언이나  지원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나 피아노 선생님…
    문화 2019-04-27 
    지난 칼럼에서는 만나면 서로의 흡수율을 높여주고, 도움이 되는 식재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서로 만나면 오히려 흡수율이 저하되는 부적절한 관계상에 놓인 식재료들에 대해 알아보고 꼭 기억하셔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무와 오이, 당근, 호박 오이, …
    문화 2019-08-02 
    제대로 된 좋은 음식을 먹는 것만이 건강을 위한 최선일까요? 효과를 극대화 하려면 올바른 음식들을 함께 먹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식품을 동시에 먹느냐에 따라 지방을 줄이는 것 뿐만 아니라 신진대사 증진에 영향을 미치는데요, 하나의 기능이 다중으로 이용될 때 생성되는 …
    문화 2019-07-19 
    [ 생활 칼럼 ] ‘달맘 송민경’의 육아를 위한 지상강좌 만나면 좋은 친구 (1) 만나면 만날 수록 편하고 좋은 친구가 있습니다. 서로를 위해 배려하고, 위해주는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큰 복 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식품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두가지…
    문화 2019-07-05 
    [ 요리 ] ‘달맘 송민경’의 육아를 위한 지상강좌 방학을 맞아 주변의 많은 가정들이 캠핑을 떠나기도 하고, 여러집이 모여 바비큐 파티를 자주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식재료 중 하나가 고기인데요, 소고기나 돼지고기 등 육류를 조리 시 유해물질이…
    문화 2019-06-21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