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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마음으로 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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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필자의 졸시 ‘엑스레이’는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나오는 말로 시작한다.
정말 가치 있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없어
오직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거야
이 시를 쓰면서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많이 했다.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과학적인 언어가 아니다. 마음으로 보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하다. 시 ‘엑스레이’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내가 너를 볼 때/ 네가 나를 볼 때/ 밖으로 나타난 모습 말고/ 무심한 체하는 말 말고/ 안에 숨어있는 널, 날/ 뚫어지게 보는 거야/ 살 속 깊숙이 뼛속까지/ 그 속 깊이 감추인/ 굳지 않은 사랑까지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엑스레이 같은 것일까? 내가 공부한 본다는 것의 뇌과학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눈으로 들어온 물체에서 반사된 빛이 눈의 각막과 수정체를 거쳐 망막에 상을 맺는다.
2. 망막에 맺힌 상은 시신경을 통해 전기신호로 변환되어 뇌로 전달된다.
3. 뇌는 전달받은 전기신호를 분석하고 해석하여 우리가 인식하는 시각 정보를 구성한다.
뇌과학에서 본다는 것은 빛을 감지하는 것 이상의 복잡하고 주관적인 과정을 포함하며, 뇌가 정보를 해석하고 구성하여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가 보는 것은 눈으로 들어오는 빛이 눈의 망막을 거쳐 뇌의 분석을 마치고야 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마음을 ‘뇌의 작용’으로 보면 우리가 본다는 것은 정말 문자 그대로 심안으로 보는 것이 된다.
우리는 유아기 때부터 보는 법을 배운다. 소리, 색깔, 모습… 등 엄청난 양의 정보를 머리에 쌓는다. 심안으로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뇌는(마음은) 과거의 경험, 지식, 기대 등을 바탕으로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해석하기 때문에, 같은 대상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
심안으로 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의 예를 들어보자. 마이클 매이(Michael May)라는 환자는 3살 반에 시력을 잃었다. 화학 폭발로 각막(Cornea)을 다쳐 빛을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이 되었지만, 비즈니스에 성공했고 장애인 올림픽(Paralympics)에 나가 소리로 슬로프를 인지하여 스키 챔피언이 된다. 그는 시력을 잃은 지 40년이 지난 다음 혁신적인 줄기세포 (stem cell) 치료를 통해 시력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각막이식수술을 받는다.
하지만 수술 후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수술 후 머리에 감은 붕대를 푸는 장면을 찍기 위해 티브이 카메라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의사가 수술한 부위에서 붕대를 풀 때의 경험을 마이클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휙 하는 빛과 함께 이미지들이 제 눈에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갑자기 시각 정보의 홍수가 밀려왔습니다. 정말 압도적이었습니다.”
마이클의 새 각막은 원래대로 빛을 받아들이고 초점을 맞추었지만, 그의 뇌는 들어오는 정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새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 마이클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에 겁에 질려 있었다. "얼굴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어요."라고 그는 회상한다. 수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식수술은 완벽한 성공이었지만 마이클의 관점에서는 그가 경험한 것은 ‘보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수술 후 마이클은 시각장애인이었을 때보다 스키를 타는 것이 훨씬 더 어렵게 되었다. 깊이를 볼 수 없는 지각장애 때문에 사람, 나무, 그림자, 구멍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모든 것이 하얀 눈에 비친 어두운 물체처럼 보였다고 한다.
마이클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얻는 교훈은 시각 체계가 카메라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시력은 단순히 렌즈 뚜껑을 벗기는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시력을 위해서는 단순히 기능하는 눈 이상의 것이 필요한데 이것이 뇌의 작용(마음)이다. 뇌는 전달받은 전기신호를 분석하고 해석하여 우리가 인식하는 시각 정보를 구성한다.
현대판 심청이 아버지가 눈 수술을 받아 처음 눈을 떴을 때 무엇을 보았을까? 앞서 말한 마이클같이 빛이 자극과 어질어질한 무엇인지 모를 영상뿐일 것이다. 빛의 자극이 뇌로 가도 무엇이 무엇인지 몰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청아!” 하는 대신 “이게 뭐냐. 어지러워 죽겠네” 하고 눈을 다시 감았을 지 모르겠다.
예이츠 (W. B. Yeats) 시인은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고 했는데 눈으로 들어온 ‘사랑’은 마음의 눈으로 들어온 것일 거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은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한다. 이 구절을 조금 변형해보면 “내가 어렸을 때는 보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지만 어른이 되었을 때는 보는 것이 어린아이 때와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이다. 마음이 자라서 심안으로 보는 것도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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