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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과/학/칼/럼] 우주복에 냉각 장치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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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5-12-2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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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

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

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

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



지구 밖 환경은 생명체에게 매우 가혹하다. 중력이 없어 걸어 다닐 수도 없고 공기가 없어 숨을 쉴 수도 없다. 지구가 가지고 있는 대기층이나 자기장도 없어서 온갖 해로운 방사능과 고에너지 입자가 지나다니는, 생명이 도저히 살기 힘든 환경임이 분명하다. 


극한의 온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영화에서 우주 환경이 매우 춥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달의 그늘 지역은 섭씨 영하 170도 아래로 떨어진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우주인이 입는 우주복에는 저온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매우 강력한 난방 장치가 필요할 듯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우주복에는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냉각 장치가 들어있고, 이 장치는 난방 장치보다 훨씬 중요하다.  


사실 우주복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주 정거장 ISS(International Space Station)에서도 온도를 낮추는 장치인 열 방출 장치 HRS(Heat Rejection System)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극저온이 큰 문제가 될 것 같은 우주에서 왜 냉각 장치가 필요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열이 전달되는 원리를 먼저 알아야 한다. 열에너지가 전달되는 세 가지 주된 방식은 전도, 대류, 복사다. 전도는 주로 고체 매질의 열에너지가 주변으로 퍼지는 현상을 설명한다. 예컨대, 냄비 바닥을 불로 가열하면 열에너지가 냄비 전체로 퍼져 나가 손잡이까지 따뜻해진다.  대류는 기체나 액체 등의 유체가 직접 이동하며 열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냄비 속에서 물 전체가 가열될 때 볼 수 있는 열전달 방식이다. 복사는 전자기파 형태로 열이 전달되는 현상으로, 태양에너지가 우주를 관통하여 지구까지 오는 현상을 잘 설명한다. 


전도와 대류에는 반드시 매질이 필요하다. 매질이 없다면 전도와 대류는 일어나지 않는다. 진공 보온병은 이러한 물리적 특성을 잘 이용한 생활용품이다. 외벽과 내벽 사이에 밀폐된 공간을 만들고 공기를 빼내어 진공에 가깝게 만든 병이다. 병에 넣은 액체는 처음 온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액체가 가진 열에너지를 빼앗거나 바깥으로부터 열에너지를 전달해 줄 매질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복사 열전달도 일어나지만, 물의 온도 범위에서는 복사 에너지 전달 속도가 전도나 대류에 비해 빠르지 않다. 


우주복을 입은 우주인이 공기가 거의 없는 달이나 우주로 나가면 마치 보온병 속의 물이 된 것처럼 열에너지를 밖으로 빼앗기는 속도가 매우 느려진다. 우주복 주변을 감싸는 매질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주복은 복사 열전달이 잘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져있다. 태양에너지 복사 현상으로 우주복 속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복사에 의해 우주복 속의 열에너지가 밖으로 나가기도 힘들다.   


우리의 몸은 꾸준히 에너지를 발생시켜 체온을 유지한다. 체온보다 약간 낮은 주변 공기로 체온을 조금씩 빼앗기지만 대사 작용을 통해 계속 에너지를 공급하여 체온을 유지한다. 몸이 만들어내는 열에너지는 우주복 내의 공기에 축적되어 공기 온도를 올린다. 더구나 우주복 속의 여러 전자 장치는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고, 결과적으로 주변 공기의 온도를 올린다. 따라서 우주복 속에는 열에너지가 계속 쌓이고 온도가 상승한다. 그래서 우주복 속에는 최첨단 냉각 장치가 장착되어 있다. 


혹시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에어컨을 작게 만들어서 우주복에 장착하면 되지 않을까?  우리가 사용하는 에어컨은 냉매의 압축과 팽창을 통해 실내의 열에너지를 실외로 빼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뜨거워진 압축 냉매가 실외 공기에 의해 식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즉 실외기에서 대류 열전달이 일어난다. 에너지 측면에서 본다면 실내의 열에너지를 실외로 퍼 나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주에서는 매질이 없기 때문에 구현할 수 없는 방식이다. 


우주인은 우리가 흔히 보는 흰색의 외부 우주복 속에 내복 형태의 물 순환 냉각복을 입는다. 냉각복의 물이 돌면서 더워진 몸의 열을 식혀준다. 우주인의 체온과 우주복 속의 열에너지로 가열된 물은 우주인이 등에 메고 있는 장치로 이동해 냉각된 뒤 다시 냉각복으로 이동하여  우주인의 체온과 우주복 내부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막아준다. 


그렇다면 더워진 물은 어떤 과정을 통해 냉각되는 걸까? 전도와 대류가 불가능하고, 복사도 제한적인데 말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물 일부가 우주로 흩어지며 나머지 물을 냉각시키는 오묘한 과정을 거친다. 우선 우주복 내부의 온기로 더워진 물 일부를 우주 진공에 노출시키면 물 분자 중 상대적으로 고에너지를 가진 일부가 급격히 증발한다. 남아 있는 물은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를 갖게 되어 얼음이 된다. 얼음은 다시 진공에서 승화 작용을 통해 수증기로 변한다. 이때 주변 물이나 얼음의 에너지를 빼앗아 간다. 비록 전도와 대류가 없고 복사 열 손실도 제한적이지만 물의 복잡한 변화 과정이 우주인을 고온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이다. 이런 장치가 무려 1960년에 이미 완성되어 우주 비행과 달 착륙에 이미 쓰였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인류가 달에 간지 무려 50년이 지났다. NASA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을 달에 다시 보내고 달에 장기 체류 가능한 인프라를 만들어 달을 화성 탐사의 전초기지로 활용하려는 장대한 꿈을 꾸고 있다. 다시 한번 우주 개발의 꽃이 활짝 필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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