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과/학/칼/럼]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손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6-02-27 15:55

본문

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
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
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
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Edge of Tomorrow)는 시간이 반복되는 상황을 재미있게 풀어낸 SF 영화다. 주인공이 지구를 침공한 외계 생명체에 대항하다가 우연히 시간을 반복시키는 능력을 가지게 되고, 외계 생명체 보스를 처치하기 위해 수십 번 같은 시간을 반복하며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매번 전략이 실패하여 사망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 또 다른 전략을 시도하는 방식이다. 사실 비슷한 형식의 타임 루프 (time loop) 영화는 꽤 많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큰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종류의 타임 루프 영화는 뉴턴 시대로부터 약 100년 후에 등장한 라그랑주 역학을 쉽게 설명해주는 듯하다. 이 라그랑주 역학은 물리학에서의 역할과 의미도 중요하지만 철학적 관점에서 흥미로운 시사점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조제프루이 라그랑주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프랑스에서 활동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다. 그가 만든 라그랑주 역학의 핵심에는 변분법(variational calculus)이라는 수학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미분의 확장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포물선 그래프


중학교 수학에서 우리는 포물선 함수를 배운다. 그림처럼 수평축의 다양한 x값에 상응하는 y값이 존재하고, y값이 최소가 되는 지점이 있다. y의 최솟값을 찾기 위해서는 미분이 필요하다. 이렇게 단순한 수식은 라그랑주 시대 이전에 발전된 미분으로 문제를 풀 수 있지만, 더 복잡한 문제를 위해서는 더 발전된 방법이 필요했다.


여기서 말하는 더 복잡한 문제란, 예컨대 경로 선택 문제 같은 것이다. 출발점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여러 가지 경로가 있을 수 있다. 시간이 가장 적게 걸리는 경로를 원한다고 가정해 보자.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의 수많은 경로를 이 기준으로 평가해 볼 수 있다. 이 평가에서 가장 좋은 점수, 즉 최소 시간이 걸리는 경로가 최적 경로가 된다. 이 방법은 사실 조금 주먹구구식이다. 앞에서 예로 든 포물선 그래프에 이 방법을 적용한다면 x값을 일일이 함수에 넣어서 y값을 구해보는 방식에 해당한다. 당연히 미분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경로 문제에도 미분을 사용할 수 있을까? 문제가 있다. 소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단순한 숫자 값이 아니라 ‘경로’라는 일종의 함수이다. ‘어느 경로가 최적인가’라는 질문이 ‘어떤 경로 함수를 선택해야 소요 시간이 최소가 되나’로 치환되고, 이때 미분에 해당하는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변분법이다.


주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자유 낙하하는 물체를 생각해보자. 낙하 과정을 들여다보는 대신, 처음과 끝만 보도록 하자. 시작할 때 물체는 특정 높이에 정지해 있다. 물체를 놓자마자 눈을 감고 있다가, 물체가 땅에 닿을 때 다시 눈을 떠서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본다. 우리의 질문은 이렇다. ‘물체는 어떤 경로를 따라 이동했을까?’ 답하기 매우 쉬운 질문처럼 보이지만, 만약 한 번도 자유 낙하를 관찰해보지 않았다면 그 경로가 직선이었다는 걸 알 수 있을까?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경로는 눈에 보이는 위치뿐만 아니라 속도의 추이도 포함한다. 즉 처음에 영이었던 속도가 땅에 닿을 때는 높아졌는데, 그 사이에 어떤 과정을 거쳐 속도가 증가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타임 루프 영화에서처럼 수많은 경로를 대입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라그랑주는 250여 년 전에 이 문제에 대한 확실한 풀이를 제시하였다. 라그랑주는 변분법과 역학 방정식을 통해, 우주의 역학적 원리 속에서는 우리가 찾는 그 경로가 항상 특정한 함숫값을 최소로 만든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특히 이렇게 찾아낸 경로를 미분 방정식으로 표현하면 뉴턴이 집대성한 고전 역학 방정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여기서 최소가 되는 함수를 ‘작용(action)’이라고 정의하고, 그 값이 최소가 되는 것을 최소 작용의 원리라고 이름 지었다.


뉴턴 역학의 세계관은 즉각적인 인과율을 대변한다. 유명한 뉴턴의 역학 방정식 f=ma에서 그 의미를 재확인할 수 있다. 즉. 힘이라는 원인이 있다면 즉시 그에 상응하는 가속도라는 결과가 생기며, 주어진 힘에 의도가 숨어있지 않다면 결과 또한 무질서한 가속도의 나열일 뿐이다. 하지만 라그랑주 역학에서는 뉴턴 역학의 무대 뒤에 또 다른 원리가 동시에 작용함을 밝혀내었다. 즉 어떤 경우에라도 작용(action)이라고 불리는 값이 최소가 되는 방향으로 경로가 정해진다는 뜻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손이 있는 것처럼.


 이러한 발견은 과학철학의 영역으로도 확장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에서 출발한 고전적 목적론의 핵심 질문은 ‘우주 또는 자연은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가?’이다. 이는 신의 존재성과 절묘하게 연결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르네상스 이후, 과학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목적론은 힘을 잃었다. 하지만 최소 작용의 원리는 그 목적론이 잠시나마 다시 힘을 얻게 해주었다. 현재 주류 물리철학에서는 최소 작용의 원리에서 어떤 도덕적 목적론을 찾기보다는, 우주의 잘 짜여진 구조를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언어가 바로 최소 작용의 원리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시 말해 라그랑주 역학은 고전 역학적 우주를 설명하는 가장 질서 정연하고 자연스러운 언어 중 하나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김미희 시인 / 수필가 엄마가 하늘나라로 주소를 옮긴 지 어느덧 아홉 해가 되었다. 시간은 참 무심하다. 처음 몇 해는 날짜가 다가오기만 해도 가슴이 먼저 알아차렸는데, 이제는 달력을 보며 “아, 벌써 그날이구나” 하고 중얼거리게 된다. 그럼에도 기일은 여전히 우리 가…
    문화 2026-02-27 
    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Edge of Tomorrow)는 시간이 반복되는 상황을 재미…
    문화 2026-02-27 
    오종찬(작곡가. 달라스 한국문화원 원장) 오래전에 뉴 올리언즈를 강타한 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영향이 아직도 도시의 곳곳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직도 곳곳에 비어있는 가옥들이 즐비하며 어느 곳은 아예 폐쇄되어 있어 들어가 볼 수 없는 곳도 있습니다. 2005년…
    문화 2026-02-27 
     오종찬(달라스 한국문화원 원장, 작곡가)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잠시 눈을 감았을 때 문뜩 떠오르는 사람, 그 사람은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던 말이 기억나는 계절, 차마 말을 할 수 없는 마음을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실어 당신의 가장 소중한 사…
    문화 2026-02-21 
    요즘, 블라인드 형식의 판매가 유행이다. 미국 책방에나 가야 볼 수 있던 블라인드 북은 이제 낯설지 않지만, 블라인드 장난감 인형까지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일본 서적과 문구를 파는 ‘Kinokuniya’나 ‘TESO’ 등에서 팔긴 했는데, 종류가 많진 않…
    문화 2026-02-20 
    고대진 작가◈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순대와 …
    문화 2026-02-12 
    오종찬(작곡가. 달라스 한국문화원 원장)뉴 올리언즈(New Orleans)를 여행하면서 반드시 찾아가야 할 최고의 장소는 어디일까? 바로 낮부터 밤 늦게까지 울려퍼지는 거리 음악가들의 비공식 모토인 ‘행복한 시간이 계속되게 하라’라는 말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많은 행…
    문화 2026-02-12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우리가 눈발이라면허공에서 쭈볏 쭈볏 흩날리는진눈깨비는 되지 말자세상이 바람불고 춥고 어둡다해도사람이 사는 마을가장 낮은 곳으로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우리가 눈발이라면잠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편지가 되고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새…
    문화 2026-02-06 
    오종찬(달라스 한국문화원장, 작곡가)뉴 올리언즈는 참으로 대단한 곳인 것 같습니다. 매년 많은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대형 허리케인이 강타할 때면 다시는 안 돌아올 듯 많은 사람들이 떠나지만, 다시 이곳의 매력에 못 이겨 돌아오곤 한다. 오래전 전에도 대형 허리케인 카트리…
    문화 2026-02-06 
    김미희 시인 / 수필가  금요일부터 달라스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함박눈은 아니었다. 싸라기눈이었다. 하늘에서 쏟아진다기보다 가만히 흘러내리는 눈. 알갱이가 작고 가벼워 보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외투 깃을 세운 채 차 문을 닫으며 손바닥에 떨어진 눈을 털어냈는데,…
    문화 2026-01-30 
    오종찬(작곡가, 달라스 한국문화원장)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 주의 조그만 타운인 래피드 시티(Rapid City)의 아침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특히 이번 여행이 더욱더 아름다운것은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
    문화 2026-01-30 
    오종찬(작곡가, 달라스 한국문화원장)‘러시모어(Rushmore)’와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의 숨길 수 없는 역사와 이어지는 수많은 갈등, 오랜 세월의 시간과 고통 속에서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해야할 수많은 고민을 안고 있는 곳, 이러한 고민이 있기에 미…
    문화 2026-01-23 
    박인애 (시인, 수필가)호수로 가는 길가의 도토리 나무엔 빈 둥지, 빈 도토리 깎지, 빈 가지… 온통 빈 것뿐이다.   나무 아래 쌓인 도토리 열매마다 도토리거위벌레가 뚫어 놓은 구멍들이 확연히 보인다. 어미는 그 속에 알을 낳은 후 가지를 입으로 잘라 바닥으로 떨어뜨…
    문화 2026-01-23 
    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물리학은 우주의 물질세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하는지 설명해준다. 물리학 이전의 인류는 주술과 미신에 기댈 …
    문화 2026-01-23 
    고대진 작가◈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순대와 …
    문화 2026-01-16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