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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봄날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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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25회 작성일 26-03-0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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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환절기에는 몸이 늘 찌부둥하다. 밤과 한낮의 기온 차가 심하고, 날씨가 종잡을 수 없으니, 컨디션도 덩달아 들쑥날쑥 한다. 이런 날은 피트니스 센타로 향한다. 가서 드라이 사우나 안에서 땀을 쭉 빼고 수영을 좀 하고 나면 몸이 한결 개운해진다. 수영장은 물이 제법 찬대도 항상 붐빈다. 미국은 비교적 피트니스 센타의 문턱이 낮아서 그런지 새벽부터 시니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운동으로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평소에 짧은 시간이라도 꾸준히 운동을 한 사람과 그렇지않은 사람은 성인병 발병률뿐만 아니라, 응급 상황에서도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한다. 갑자기 넘어지더라도 근육과 운동신경의 유무에 따라 부상 정도가 확연히 다른 까닭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오랜만에 좋아하는 앤틱 샵에 들렀다. 아주 오래된 샵인데 파킹낫에 차가 가득하다. 확실히 텍사스는 유입인구가 계속 늘고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 커다란 카우보이 목각 조각이 있는 이 샵은 각종 부스에 옛날 물건들이 그득하다. 약간 빈티지 느낌이 나는 새 옷을 파는 곳도 있지만, 주로 옛날 가구나, 그림, 사용 용도가 무엇인지도 모를 앤틱 생활용품들이 많다. 구경을 하다 보면 오래전 미국 사람들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의외로 1세기 전 미국 사람들은 체구가 작았는지, 그들이 입었던 드레스나 신발은 사이즈가 무척 작다, 지금 사이즈로 치면 옷이나 신발이 스몰에 가까워 보인다. 하긴 개척시대에는 종일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고, 절제된 식사를 했으니 그랬을 것 같다. 사실 미국에 비만 인구가 본격적으로 급증하기 시작한 시기는 1970년대 후반부터라고 한다. 자동차와 편리해진 생활, 가공식품의 발달과 슈퍼 사이즈 문화를 관련 학자들은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우리가 사는 텍사스는 날씨도 한 몫을 한다. 여름이 길고 매우 무덥다 보니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고, 몸은 덜 움직이면서 고칼로리 음식을 즐기기 때문에 비만율은 전미에서 늘 상위에 속한다.


앤틱 샵 코너에는 작은 카페도 하나 있다. 날마다 메뉴가 바뀌는데, 옛 추억이 떠오를만한 콩스프나 가든 샐러드, 샌드위치, 미트로프 같은 걸 판다. 이 식당은 이 부근 할머니들의 미팅 명소이다. 오늘도 그 옛날 학교 동창들처럼 보이는 할머니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아, 자기 이름이 베티였지 하면서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다. 예전엔 복도 한쪽에 프리 커피를 놔두었는데, 팬데믹이후 그 스탠드는 사라졌다. 못해도 부스가 백 개는 넘을 것 같은 이 샵은 한 바퀴를 돌다 보면 한 두어 시간이 금방 흘러간다.


오늘 나는 시로코(syroco) 거울을 하나 샀다. 시로코 란 뜻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20세기 중반 미국 시라큐스 컴퍼니에서 제작한 것인데, 약간 로코코식 화려한 무늬에 테두리가 금장인 것이 특색이다. 예전 6,70년대에 많이 유행한 스타일이라고 한다. 집 현관 앞 오래된 콘솔과 일단 테두리 색깔이 맞아서 샀는데 걸어놓고 보니, 같은 복고풍이라 잘 어울린다. 나는 가구를 세트로 사는 것보다, 하나씩 구입 하는 걸 좋아하는데, 콘솔도 봄베이 컴퍼니에서 오래전에 산 것이다. 지금은 도산하고 사라진 작은 가구회사인데, 가만 생각해보니 사라진 회사들이 참 많다. 약혼반지를 샀던 mervyn’s 도, 청소기를 비롯한 각종 가전제품을 장만하게 해준 시어스도 아이들 기저귀를 사러 다녔던 K 마트도 모두 문을 닫았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삭스 5th 에비뉴도 파산신청을 했다고 한다. 하긴 지금은 모든 물품을 아마존을 비롯한 온라인 매장에서 구입을 하니, 오프라인 스토아는 점점 경쟁력에서 밀릴수 밖에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방문할 수 있는 매장이 해마다 줄고 있다. 온라인 매장이 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직접 가서 입어보고 만져보고, 수다도 떨면서 오천보는 그냥 걷게 되는 오프라인 매장이 나는 더 좋다. 이제 우리는 어쩜 오프라인 매장을 경험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봄날의 하루는 참 빨리 지나간다. 자고 나면 노란 산수유가 고개를 내밀고, 나무는 수액이 차오르며 새순을 틔운다. 이런 봄날들이 쌓여 먼 훗날 추억의 앤틱이 될 것이다. 아, 봄날의 윤회는, 아이가 어른이 되고, 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며 끝없이 순환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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