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가을로 가는 기차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539회 작성일 23-11-03 11:42

본문

퀘백에서 두 칸짜리 기차를 타고 한 시간쯤 걸리는 베셍폴( Baie Saint Paul) 이라는 마을로 갔다. 예전에 증기기관차가 내는 뿌우웅 소리를 내며 달리는데, 기차 안 풍경은 한국과 좀 다르지만, 어린시절에 탔던 완행열차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방학만 되면 오빠와 함께 순천에서 광주까지 기차를 타고 다녔는데, 국민학교 2학년때 처음 타본 기차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걷지 않고도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마주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 몇 시간이 걸리는 거리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짐 보따리를 머리에 인 채, 보채는 아이를 업고 기차를 타는 시골아낙들,  교복을 입고 좋아하는 여학생이 타는 칸으로 분주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장난끼 가득한 남학생들과  초여름의 청보리밭, 밀레의 만종 같은 가을 들판이 그곳에는 늘 있었다.

경부선 기차도 하동역을 지날 때면 ‘재첩국 사이소’란 외침이 새벽부터 들렸고, 진주역은 역사만 보아도 왜장의 목을 끌어안고 죽은 논개가 생각났다.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작은 역들을 수도 없이 지나면 부산이 나왔는데, 요즘이야 다들 자가용이 있어,  입맛 대로 여행을 할 수 있었지만, 80년대 까지는 기차가 아주 중요한 여행 수단이었던 것 같다. 

물론 고속버스도 있지만, 기차가 주는 낭만은 결코 따라갈 수가 없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엔 유독 열차와 관련된 대중가요나 ( 대전부르스, 남행열차, 춘천 가는 기차 등등)  영화, 시, 소설 등이 많은 편이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로 시작되는 곽재구의 <사평역에서>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 중 하나이고,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리나>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장소도 역시 기차역이다. 

안나의 사랑은 기차역에서 시작되었고, 비극적인 결말도 또한 그곳에서 일어났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첫 문장은 또 어떠한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로  주인공이 기차안에서 본 휴양지 니가타현에 관한 첫인상인데, 소설의 줄거리가 당장 궁금해지게 만드는 희대의 명문장임에 틀림이 없다.

기차를 타며 나는 왼쪽 창가에 앉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오른쪽은 캐나다와 미국 국경사이를 흐르는 세인트 로렌스 강이 주로 보였지만, 반대편은 크고 작은 언덕위나 산 위에 , 작은 집 울타리에, 기차와 맞닿을 것 같은 암벽과 폭포 사이에 있는 붉은 단풍을 계속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여행사에서 주관하는 퀘백 단풍 여행은 도깨비 촬영지를 간다는 흥미가 더 해져 한인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난 퀘백주가 주는 쁘띠 프랑스적인 요소가 더 매력 있었다.  

프랑스계 이민자들이  개척한 도시들은 확실히 그들 만의 분위기가 있었다. 

퀘백과 몬트리올에 있는 고딕양식의 아름다운 성당들과 유럽의 성 같은 고풍스러운 건물들, 풍미가 느껴지는 음식, 불어만 고집만 하는 문화가 그것이다. 그러나 관광객 대부분이 미국이나 타국에서 왔는데, 뮤지엄이나 관광지 소개나 팻말이 불어로만 표시 되어있는 것은 좀 아쉬웠다. 

추상화를 감상하는데 제목을 알 수가 없고 화장실 역시 불어를 모르면 헷갈리기 십상이어서 어떤 여자분은 남성용화장실로 잘못 들어가기도 했다.

베셍폴은 퀘백주에서 예술인마을로 조성해 놓은 작은 동네이다. 커피를 파는 카페와 갤러리가 메인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줄지어 있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언니와 함께 커피를 마카롱과 곁들어 마셨는데, 마치 가을의 대학로 카페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올여름은 유난히도 무덥고 길어서 텍사스에서는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없었는데 이곳은 어딜 가나 가을이 물들어 있었다. 

메이플나무가 곳곳에 서 있던 와이너리와  날씨가 흐려서 단풍 비경을  놓치긴 했지만, 오랜만에 타본 몽트랑 블랑의 케이블카, 쁘띠 상플랑 거리에서 먹었던 치즈와 그래비소스가 잔뜩 뿌려진 푸틴이라는 캐나다식 프렌치 프라이, 성요셉 성당에서 바라본 몬트리올 시내 전경은 두고 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날엔 랍스터 디너가 나왔는데 무엇보다 식당 분위기가 좋았다. 전직 가수였다는 뉴저지에서 온 가이드가 섹소폰 주자의 연주에 맞추어 마이웨이를 불렀고, 흥이 난 나이 지긋한 연주자는 우리들이 신청한 곡을 모두 연주해 주었는데, 그 중에는 드라마 <도깨비> 주제곡도 있었다. 

코리언 손님들의 취향을 배려한 곡이어서 팁이 많이 나왔음은 물론이다. 사실 이번 여행은 단체 여행이어서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일정도 알차고 숙식도 좋았다. 무엇보다 랜덤으로 함께 가게 된 일행분들이 다 재밌고 좋으셔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이제 조금 있으면 가을 기차역에서 내려야 할 때가 온다. 부디 아프지 마시고 겨울로 건너가시기를 빈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Ryan Kim (텍사스 인저리)이번 칼럼에서는 변호사와 손님과의 소통과 협업의 중요성에 대하여 나누어 보려고 한다. 물론 변호사를 선임하시는 가장 큰 이유가 개인의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서 그리고 개인이 진행할 때 보다 더 나은 보상을 원하시기 위함을 익히 알고 있으나…
    법률 2024-12-20 
    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답이 뻔한 질문을 칼럼 제목으로 적어놓았다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과 편리해진 일…
    문화 2024-12-20 
    박운서 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  Email : swoonpak@yahoo.com2625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우리 모두 바쁘게 달려온 2024년이 이제 막바…
    세무회계 2024-12-20 
    박인애 (시인, 수필가) 모델들이 런웨이에서 워킹을 하다 구두가 벗겨지거나 굽이 부러져 넘어지는 사고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일반인이었다면 놀라서 주저앉겠지만, 프로는 대처법이 다르다. 평소 까치발을 들고 워킹 연습을 해 온 노하우 덕분일 수도 있겠으나, 언제 그런 …
    문화 2024-12-20 
    그린웨이 배준원2025년 새로운 컨포밍 융자한도(Conforming Loan Limit)가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현재의 $766,550에서 $806,500로 다시 상향 조정된 것이다. 팬데믹을 겪던 2021년 말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매년 컨포밍 융자한도는 상향조정되어왔…
    세무회계 2024-12-20 
    현 시대 가장 핫한 인물 1위는 누가 뭐래도 일론 머스크이지 않을까 싶다. 일론 머스크는 현대 기술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그의 독특한 사고방식은 단순한 기업가 정신을 넘어선다. 오늘은 일론 머스크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철학과 사고를 가졌으며, 그의 사고방식은 무…
    부동산 2024-12-20 
    오종찬(작곡가, 달라스 한국문화원장)하늘이 물에 내려오면서 끝없이 펼쳐진 호수와 바람, 그리고 그 속에서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달려가는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요즘처럼 비가 내리면 하늘과 세상이 물에 잠길 것 같지만 여전히 그 속에 비쳐진 모습은 잔잔한 물결…
    문화 2024-12-20 
    엑셀  카이로프로틱 김창훈 원장 Dr. Chang H. KimChiropractor | Excel Chiropracticphone: 469-248-0012email: excelchirodallas@gmail.com2681 MacArthur Blvd suite 103, …
    건강의학 2024-12-20 
    칼럼니스트 고대진 ◈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
    문화 2024-12-13 
    공인 회계사 서윤교LLC 또는 Corporation 등 법인체로 회사운영을 하는 분들 중에 이미 많은 분들이 실질적 소유주 보고를 마쳤을 것이다.  보고기한이 2주도 채 남지 않은 12월 31일까지 이기 때문이다.  미연방의회는 2021년 ‘Corporate Trans…
    세무회계 2024-12-13 
    버클리 아카데미 에밀리 홍 원장먼저 성탄절을 맞아 2024 년 한해동안 제 칼럼을 사랑해 주신 모든 학부모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2025년 새해에도 각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 하시길 기도합니다. 미국 겨울 방학은 워낙 짧다보니 가족 여행, 연말모임, 각종 …
    교육상담 2024-12-13 
    오종찬(작곡가, 달라스 한국문화원장)미국에서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축복 가운데 하나는 광대한 대륙을 쉼 없이 운전하여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끝이 안 보이는 초원을 운전하다가 사막을 만나면 인생의 중간을 점검하게 되고 다시 핸들을 잡으면 흩어…
    문화 2024-12-13 
    여행자 보험 이광익 (Kevin Lee Company 보험사 대표)지난 3년여 펜데믹 사태로 인해서 국내외 여행이 극도로 자제되어 오다가 이제 점차 정상화되고 있어서 참 다행스럽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말하는 여행에는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소극적 의미로는…
    보험 2024-12-13 
    Hmart 이주용 차장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여러분은 혹시 케이준이라는 뜻을 알고 계신가요? 식당을 가면 종종 볼수 있지만 어렴풋이 느낌으로만 알고 있는 이 단어와 그와 관련된 음식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원래 케이준은 음식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루이지애나 근방…
    문화 2024-12-13 
    박운서 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  Email : swoonpak@yahoo.com2625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바다건너 고국에서는 대통령이 종북세력을 척결하고 자…
    세무회계 2024-12-06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