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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메이플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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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26회 작성일 25-03-0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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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시인 / 수필가


 큰아이가 가족을 데리고 한국 처가에 다녀오는 동안, 기르던 애완견을 우리 집에 맡기고 갔다. 처음 제안이 나왔을 때 나는 선뜻 허락하지 못했다. 개를 키워본 적도 없고, 개와 가까이할 자신도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큰애는 메이플을 맡아달라고 간절하게 설득했다.


"엄마, 털도 안 빠지고 물건도 안 물어뜯어. 실수도 안 해. 하루 서너 번 산책만 시켜주면 돼."


  나는 여전히 망설였지만, 큰애는 단호했다. 그렇게 메이플이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떠나기 전날 밤, 큰애는 강아지 먹이와 장난감, 잠자리용 이불까지 한가득 풀어놓았다. 장난감 하나하나를 설명해주고, 간식은 몇 시간 간격으로 줘야 하는지, 어느 시간이면 산책을 시켜야 하는지 꼼꼼히 일러두었다. 마치 어린아이를 처음 맡기는 부모처럼 몇 번이고 메이플을 안아주고 쓰다듬다 떠났다.


  메이플은 푸들이 반쯤 섞인, 적당한 크기의 개였다. 몽글몽글한 털은 흰색과 복숭아색이 어우러져 있었고, 무엇보다 눈빛이 너무나 맑고 선했다. 하지만 나는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개를 무서워했던 지난날의 기억이 너무도 선명했기 때문이다. 처음 메이플과 마주한 날, 녀석은 반가움에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다가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쳤다.


  "어머, 어떡해?" 


  놀란 내 모습을 본 작은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엄마, 그냥 가만히 앉아서 손을 내밀어 봐. 그러면 메이플이 엄마랑 친해지고 싶어 할 거야."


  나는 주저하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메이플은 나를 올려다보며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한바탕 컹컹 짖고는 내 손끝을 살짝 핥았다. 순간 움찔했지만, 녀석은 이내 내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망설이다가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털이 손끝에 닿았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그날 이후, 메이플과 나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가장 먼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메이플이었다. 두 발을 들고 반갑게 뛰어오르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런 메이플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를 이렇게 반겨주는 존재가 또 있을까?"


  나는 원래 개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무서워했다. 오래전, 친구의 레이크 하우스에 초대받았던 날이 떠오른다. 친구가 개를 키운다는 것은 알았지만, 송아지만 한 개를 그것도 두 마리나 키운다는 것은 몰랐다. 거대한 개 두 마리는 혀를 늘어뜨린 채 헐떡이며 내게 달려들었다. 침이 줄줄 흐르는 입, 커다란 발톱, 거친 숨소리. 나는 공포에 질려 도망쳤다. 친구는 개들을 묶어주었지만, 나는 끝내 개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더 오래된 기억 속에는 시골집에서 기르던 진돗개가 있다. 그 시절에는 개를 마당에 묶어놓고 키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개는 순한 편이었지만, 뒷집 남 씨네 개는 달랐다. 쇠사슬을 당기며 날카롭게 짖던 모습.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 마주치는 순간 나는 얼어붙었고, 개는 달려들 듯 사납게 짖어댔다. 울면서 길 한가운데 멈춰 서 있던 그때의 공포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개가 있는 곳에서는 긴장했다. 개의 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 친구 집에 방문할 때면 개가 달려들까 봐 의자 위로 다리를 몽땅 올려놓고 앉아 있곤 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의 애정을 이해하지 못했고, 내 인생에서 개와 친해질 일은 없을 거라 믿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메이플을 품에 안고 있다.


  메이플이 우리 집에 온 지 어느덧 두 주가 되었다. 그동안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잘 먹고 잘 자며 가족들과 정을 나누었다. 처음에는 작은애의 침대 한편에서 잠들던 녀석이 이제 남편의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남편은 잠자리에 들면 조심스럽게 메이플을 올려주었고, 메이플은 그 자리에 기대어 밤새 곤히 잠들었다. 아침이면 눈을 반쯤 감은 채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남편은 메이플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지금이야 우리가 일을 하니까 못 키우지만, 나중에 은퇴하면 메이플 같은 아이 하나 키우자."


  그 말을 듣고 나는 놀랐다. 남편이 먼저 그런 말을 할 줄이야. 그러나 사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별다른 말이 없던 우리 부부가, 요즘은 메이플을 사이에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식탁에서, 거실에서, 침대에서. 메이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언제부턴가 추억과 웃음으로 번졌다.


  "메이플, 어디 갔어?"

  "이리 와, 메이플. 잘 잤어?"


  그동안 우리 집에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개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고, 그 작은 생명에게 온 마음을 내어 주게 될 줄이야.


  이제 며칠 후면 메이플은 제 집으로 돌아간다. 남편은 벌써부터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다. 메이플을 품에 안아주며 몇 번이고 쓰다듬는다. 나 역시 이별이 아쉽다. 이 작은 생명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다. 메이플 덕분에 나는 두려움을 극복했다. 메이플 덕분에 가족은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무엇보다,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밤이 깊어간다. 내 품에서 곤히 잠든 메이플의 작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으며 나는 조용히 속삭인다.


"고마워, 메이플."


  녀석이 떠난 후에도, 그 온기는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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