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고대진] 말 잘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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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어렸을 적에 학교에 갈 때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은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말 잘 듣는 사람은 착한 사람 아닌 사람은 말썽꾸러기로 여겨졌다. 나는 말 잘 안 듣는 축에 들어 어머니를 걱정시켰다. 사실 나는 말을 잘 듣기는 했다. 그 말을 따르는 것은 다른 문제여서 나는 말썽꾸러기로 낙인 찍혔다. 선생님 말씀을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어린 내게도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뇌과학을 공부하면서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감각적 수용을 넘어선다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들려오는 선생님의 소리는 귀를 통해 잘 들었지만, 나의 뇌가 그 소리를 분별하여 그 메시지를 따르지는 않았을 뿐이었다.
뇌과학에서는 듣는다는 것은 1) 소리 신호가 공기의 진동을 통해 내이 內耳(inner ear)의 유모세포(hair cell)에 전달된 후 전기 신호로 변환되어 2) 이 신호가 청신경(auditory nerve)을 통해 대뇌 피질의 청각 피질(auditory cortex)에 도달하여 의미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뇌는 들려오는 소리의 패턴을 모델링하고, 감정적 반응이나 학습을 연결하며, 궁극적으로는 소리의 의미를 이해하고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즉 듣기는 단순히 소리를 수용하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뇌가 소리의 패턴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귀가 듣는 것이 아니라 뇌가 듣는 것이 된다.
버지니아 의과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듣는다는 것의 영어를 잘못 알아 실수를 한 한국에서 온 교환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이분이 미국에 와보니 한국에서 영어 공부한 것이 말짱 헛것이었다. 말은 그럭저럭하겠는데 상대방의 영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보통은 웃으면서 고개나 끄떡이며 알아듣는 체했는데 도저히 안 되어서 과 교수들이 모인 교수회의에서 심각하게 고백했다. "I have hearing problem." 그랬더니 모두 이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는데 그 다음부터는 그 교수에게 말할 땐 사람마다 크게 고함을 지르며 이야기하더란다. 내 방에 찾아와 “교수님 말을 천천히 해달라고 히어링이 잘 안 된다고 했는데, 와 소리만 버럭버럭 지릅니까?” 하고 묻기에 “음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했으니까 당연하지요.”라고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참 한국에선 영어를 듣는 것을 `히어링`이라고 하지요? 여기서 영어를 알아듣는다는 것은 ‘listening’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그냥 천천히 말해달라고 하세요.”라고 하면서 히어링은 단순히 영어 소리가 귀에 닿는 것이고 그 영어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다
뇌가 청각 피질에 도달한 소리 신호를 패턴으로 인식하고 궁극적으로 소리의 의미를 이해하고 행동을 결정하게 되려면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유아기 때부터 듣는 법 보는 법을 배운다. 소리, 색깔, 모습… 등 엄청난 양의 정보를 머리에 쌓아 마음으로 듣는 법,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뇌는(마음은) 과거의 경험, 지식, 기대 등을 바탕으로 귀에 들어온 소리 정보나 빛으로 눈에 들어온 정보를 해석하기 때문에, 같은 말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 신경과학자 ‘니나 클라우스’는 '소리 마음(Sound Mind)'이라고 말하는데 보는 마음을 心眼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듣는 마음을 소리 마음이라 한 것이다. 한자로는 심청心聽이나 심이心耳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듣는 것은 마음으로 듣는 것이지 마음이 없이 듣는 것은 의미 없는 소음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눈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귀는 항상 열려있기 때문에 우리의 뇌가 어떤 소리가 중요한지 판단하고 불필요한 소리는 치워두지 않으면 우리는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 심청心聽 즉 잘 듣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소리를 분별하여 풍성하게 듣는 것이 삶의 질과 건강에 중요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심청心聽을 하려면 들으면서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클라우스는 음악 연주와 외국어 학습을 추천하는데 음악을 연주하는 행위는 특정 소리와 특정 의미를 연결하는 일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소음에서 더 잘 듣고, 기억, 실행 기능, 인지적 유연함이 더 뛰어나다고 한다. 특히 음악을 하는 행위는 학업 성취와 듣기 능력의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외국어 학습도 마찬가지이다, 다행인 건 나이가 들어도 충분히 심청心聽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97세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매일 영어단어를 쓰시며 듣는 공부를 하셨는데 심청心聽이 정말 풍성하셨다. TV에서 들리는 영어 뉴스가 잘 안 들린다면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라는 말일 것이다. 듣는 말의 의미를 자막 없이 알아내면서 넷플릭스를 보며 깔깔 웃을 수 있을 때까지 마음으로 듣는 훈련을 계속해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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