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고대진]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5-10-17 19:41

본문

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쉬는 일’이라고 말하겠다. “아니 쉬는 일이 가장 쉽지, 뭐가 어려워?”라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그렇지 않다. 이건 대학만의 특별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교수들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답이 나올 것 같다. 어려운 ‘쉬는 일’이라. 학교에서 수업을 끝내고 집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쉬면 될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지만 문제는 학교에서 생각하던 논문 생각이 떠나지 않고 이것을 마무리 짓는 일, 제출해야 할 논문 마감일, 학생 연구를 비평해주는 일, 마감일에 맞춰 연구비 신청하는 일, 다음날 수업 계획 등등에 생각이 항상 머물러있어 편히 쉴 수 없다는 데 있다. 퇴근하고도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자꾸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 초조해지고 저녁 후에 티브이 앞에 앉아서 뉴스를 보거나 할 때도 계속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심지어 일을 떠나려고 여행을 가도 책이며 공부할 논문들을 가방에 잔뜩 집어넣어야 안심이 된다. 그렇다고 그걸 다 읽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운동할 때 또 그림을 그릴 때 잠깐씩 일을 잊을 때가 있지만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내던 날들이 있었든가 생각해보니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일은 내 삶의 중심이었고 내 휴식이다. 그러니 가끔은 월요일에서부터 금요일에 걸쳐 8시부터 5시까지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면 그 일을 다 잊어버리고 쉴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을 해서다. 


최근에 작가 한강의 시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다가 이 시인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여서 이런 시를 짓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다. 전업 작가로 살면서 작품을 쓰다 보면 언제 쉬는 시간인지 언제 일하는 시간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워지고 24시간 작품 생각만 하게 되지 않을까? 특히 ‘작별하지 않는다’같은 대작을 쓰면서는 제주도에 따로 집을 빌려 몇 년간 글을 썼다는데 그러다 보면 일에서 벗어나 긴장을 풀어야 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듯이 말이다. 생각이라는 것을 안 하고 싶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하루가 끝나면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둔다

저녁이 식기 전에

나는 퇴근을 한다


저녁은 서랍 안에서

식어가고 있지만

나는 퇴근을 한다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고


서랍에 넣어 둔 저녁은

아직도 따뜻하다

나는 퇴근을 한다

저녁이 식기 전에


아마도 시인은 저녁 무렵 저녁 배달시켜서 서랍에 넣어 두었으리라. 책상에서 글을 쓰다가 배달 음식을 받아 글을 쓰던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다시 글로 돌아간 것이 자연스럽다. 조금 있다가 일을 멈추고 저녁을 꺼내 옆으로 간다. 옆방이라도 좋다. 책상에서 조금 떨어지는 것이, 지금 하던 일과 생각을 멈추는 것이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는 작가의 퇴근이 되리라. 너무 늦게 일하면 저녁을 거를 수도 있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저녁이 식기 전에) 책상에서 컴퓨터를 닫고 옆방으로 혹은 책상에서 떨어진 곳으로 가서 저녁을 먹어야 하루가 끝나는 것이다.


퇴근을 하면서

저녁을 꺼내어

따뜻한 한 끼를 먹는다

하루의 끝에서


퇴근을 하고

서랍에 넣어 둔 저녁을 꺼내면

하루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나는 퇴근을 한다


퇴근을 하면서

저녁을 꺼내어

따뜻한 한 끼를 먹는다

하루의 끝에서


이제 일에서 멀어져 저녁을 먹으면 하루가 가벼워지고 휴식을 할 수 있고 직장에서 퇴근하는 것이 된다. 같은 방에서라도 일에서 멀어지며 하루를 끝내고 퇴근하는 직장인 같이 쉴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방에서 내일 출근을 하듯이 일을 시작하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퇴근이란 것을 하면서 일의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


‘서랍에 넣어두는 저녁’ 대신에 작가의 ‘시’로 대치하면 퇴근하는 일은 소설을 쓰는 일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저녁을 먹는 일은 소설과 다른 시를 생각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한강 작가의 첫 시집의 제목이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일까? 시집 제목의 시가 시집에 없는 이유가 이 시집이 작가의 서랍이기 때문이 아닐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김재일 (Jay Kim) 대표현 텍사스 교육청 (TEA) 컨설팅전직 미국 교육부 (U.S Department of Education) 컨설팅전직 텍사스 공립학교 교장[들어가기 전] 지난 칼럼 이후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께서 문의를 주셨습니다. 이번 주 칼럼을 읽으신 뒤 …
    교육상담 2025-10-17 
    자동차 사고를 유발하는 위험요소들이광익 (Kevin Lee Company 대표)자동차 사고는 보험료 인상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주는 사건이므로 사고를 야기하는 요소들을 파악하고 제거해야 한다.자동차 사고에 영향을 주는 위험한 요소들이 …
    보험 2025-10-17 
    엑셀 카이로프로틱김창훈 원장 Dr. Chang H. KimChiropractor | Excel Chiropracticphone: 469-248-0012email: [email protected] MacArthur Blvd suite 103, Le…
    건강의학 2025-10-17 
    고대진 작가◈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순대와 …
    문화 2025-10-17 
    오종찬(달라스 한국문화원 원장, 작곡가)살포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지난 세월 내내 묵은 때들이 훌훌 말끔히 벗겨지고 대지엔 생동감 넘치는 계절의 푸르름이 더하고 있습니다. 달콤한 와플에 커피 한 잔 마시며 밤새 들리는 한 줄기의 빗소리 속에 찾아오는 삶의 징검다리를…
    문화 2025-10-17 
    서윤교 CPA미국공인회계사 / 텍사스주 공인 / 한인 비즈니스 및 해외소득 전문 세무컨설팅이메일: [email protected]– 마감일의 의미와, 기한을 놓친 납세자를 위한 실질적 대처법 –미국의 개인소득세 보고 기한은 원칙적으로 매년 4월 15일이다. 그러나 많은 …
    세무회계 2025-10-17 
    오종찬(달라스 한국문화원 원장, 작곡가)음악을 즐긴다는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배움의 기쁨이 있고, 생활의 여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스승이 이야기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중의 하나는 내가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
    문화 2025-10-10 
    에밀리 홍 원장결과가 말해주는 명문대 입시 전문 버클리 아카데미 원장 www.Berkeley2Academy.com 문의 : [email protected]가을 학기가 시작되면서 미국 대학 입시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조기 지원에만 집중하지만, …
    교육상담 2025-10-10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얼떨결에 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미주 한국 소설협회 회장을 맡고 나서 한동안 고민이 많았다. 리더쉽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미주 소설가 대부분이 캘리포니아주 등 다른 주에 거주하는데, 이 먼 텍사스에서 소설협회에서 필요한 일들을 잘 해낼…
    문화 2025-10-10 
    박운서 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  Email : [email protected]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연방정부는 지난 10월 1일 0시 1분부터 셧다운에…
    세무회계 2025-10-10 
    크리스틴 손, 의료인 양성 직업학교, DMS Care Training Center 원장(www.dmscaretraining.com / 469-605-6035) 의료인의 영어: 자격증 그 이후의 진짜 경쟁력미국에서 의료 분야에 종사하기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저희 DMS…
    문화 2025-10-10 
    오종찬(달라스 한국문화원 원장, 작곡가)좋은 숲이 있고 깊은 골에 맑은 물이 흐르고 거기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면 계절을 찾아 떠나는 산이 제격입니다. 거기에다 산이 낮아 힘들지 않고 쉽게 오르고 내릴 수 있으며 거기에서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찾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
    문화 2025-10-03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기조는 ‘미국 우선주의’였다. 오랜 세월 미국이 감당해온 무역적자의 해법으로 고율 관세 정책을 내놓았고, 2025년 1월 20일 취임식과 동시에 트럼프는 관세 부과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 순간부터 내게도 태평양을 건너오던 따뜻한 손…
    문화 2025-10-03 
    SANG KIM REALTOR® |  Licensed in Texas -Century 21 Judge Fite #0713470Home Loan Mortgage Specialist - Still Waters Lending #2426734                   …
    부동산 2025-10-03 
    공인 회계사 서윤교미 연방의회가 새 회계연도(10월 1일부터 시작) 예산안을 9월 30일까지 통과시키지 못하면서 지난 수요일, 10월1일부터  연방정부의 연방회계 지출이 정지되는 ‘셧다운(lapse in appropriations)’이 시작됐다. 언제 풀릴지 모르겠지만…
    세무회계 2025-10-03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