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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 "한국영화 위기…푯값 등 시스템 전반 돌아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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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에) 거장이 안 나온다는 건 한 개인의 역량 문제인 것만은 아니에요. 시스템 전반을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랫동안 한국 영화계를 지켜온 김지운 감독이 극장가 불황에서부터 주목받는 신진 창작자의 부재까지 폭넓게 제기되고 있는 한국 영화의 위기론에 관한 소견을 밝혔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아카데미(BAFA) 교장을 맡은 김 감독은 19일 부산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금의 상황은 실험과 새로운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모두 보수적으로 변했다"며 "신선한 싹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이 제거됐다"고 진단했다.
김 감독은 1998년 '조용한 가족'으로 데뷔해 20년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영화를 만들어온 국내 대표 창작자다.
그런 그도 영화계가 위축된 현상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한국 영화계가 활성화됐을 때는 작품 의뢰가 한국 영화 쪽이 많았는데, 현재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많이 들어온다"고 털어놨다.
그는 "영화계 활력이 넘쳐야 하고 관객들이 많이 유입되려면 극장 티켓값을 배려해야 할 것"이라며 "투자 심리가 활성화돼 실험적이고 개성 있는 작품에 투자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천재가 나오고 거장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 영화가 부흥을 이뤘을 때 정부의 도움도 컸었다. 김대중 정부일 때 한국 영화계에 자금이 지원돼 좋아진 측면도 있었다"면서 "그런 것들이 다 함께 이뤄져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이번에 BAFA 교장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BAFA는 아시아 영화의 미래를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아시아 각국에서 온 참가자들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으며 단편 영화를 제작한다.
김 감독은 처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교장직을 수락했지만, 현장에서 참가자들과 마주한 뒤 진지하게 임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그는 "인생의 꿈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공간이었다. 동시에 영화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내 청년 백수 시절도 떠올랐다"며 "제가 이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고 돌아봤다.
김 감독은 "제가 느낀 걸 얘기하면 참가자들이 바로 받아들여서 생산적인 결과를 내는 것을 보고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며 "과장해 말하자면, 혐오와 차별이 난무하는 시대에 서로 다른 걸 가진 사람들이 함께 무언가를 모색하고 실험하고 탐색하는 풍경 자체도 감동스러웠다"고 소감을 들려줬다.
김 감독은 BAFA를 통해 아시아 영화인 간의 연대와 네트워크 등 영화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능성과 모델도 모색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방문한 베트남에서 본 많은 젊은이를 거론하며 "아시아가 가진 풍부한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이 아시아의 잠재성을 들여다볼 필요성을 환기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BAFA 참가자들의) 결과물을 보면 또 하나의 기대와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두 번째 미국 장편 영화 '홀'(The Hole)을 제작 중인 김 감독은 "미국도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해외와 합작하는 게 유리하다는 속사정이 있다"며 "이것도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김 감독은 젊은 영화인을 향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영화는 협력 예술이다. 창작의 주체자인 감독은 소통과 협력의 미덕을 깨우쳐야 한다"며 "영화는 오랜 기간 엄청난 노동 강도를 보이는 현장이다. 12시간 동안 하나에 집중하고 뛰어다닐 수 있도록 체력과 정신력, 인내심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감독은 또 "영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예술이 아니다. 오랜 시간 괴로움을 견뎌내야 한다"며 "쓸쓸하고 고독하지만 이걸 통과해야 빛나는 순간이 온다. 악몽 같은 현실을 견뎌내야 꿈을 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자신만의 창작 영업 비밀도 공개했다. 그는 자신이 영화 학교 출신이나 유학파, 현장에서 도제식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라, 극장에서 무수히 많은 영화를 보고 영화를 직접 만들며 배운 사람이라고 했다.
"세상 살다 보면 화나는 일이 많고 대놓고 말할 수 없어 억울한 일도 생기잖아요. 내향인이면 그걸 꾹 갖고 있다가 어떻게 복수할지 상상하게 되죠. 그러다가 스토리가 만들어집니다. 가장 생생하고 통쾌한 복수극이 되는 거죠. 슈퍼 내향인이 가지는 찌질하고 비루한 복수심, 밖에 나가서 받은 상처를 생산적인 일로 바꾸려는 의지 그런 게 필요하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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