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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짧은 글 릴레이 ] 김수자 에세이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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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조회 3,713회 작성일 22-04-01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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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께나 쓴다는 친구로부터 이어령 교수의 사망 소식을 인터넷으로 전해 들은 것은 그의 사후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2022년 2월 26일 오후 12시 20분 우리나라 초대 문화부 장관이자 작가, 소설과, 평론가, 교수의 삶을 산 이어령 선생께서 별세했다’는 기사와 함께 ‘친구가 없는 삶은 실패한 인생이다’라는 그의 글을 보내왔다.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다. 그래서 외로웠다.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것이다. 남들이 보는 이 아무개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보는데, 나는 사실상 겸손 아니라 실패한 삶을 살았구나… 그것을 느낀다. 

 

세속적인 문필가로 교수로 장관으로 활동했으니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 겸손이 아니다. 나는 실패했다. 그것을 항상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내게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내 삶은 실패했다. 혼자서 나의 그림자만 보고 달려왔던 삶이다. 동행자 없이 숨 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더러는 동행자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경쟁자였다. 

 

정기적으로 만나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야 삶이 풍성해진다. 나이차이,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함께 만나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외롭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은 김지수라는 기자와 암으로 죽음을 앞둔 이어령과의 대화를 엮어 만든 것이다. 

 

많은 말 중에 내 친구는 하필 ‘친구가 없는 삶은 실패한 인생이다’라는 글을 보냈을까. 나를 몹시 나무라고 싶은 마음인 게다. 

 

시가 잘 씌어지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더니, 한달 내내 전화 한 통이 없다고 무심하다고 탓을 하더니, 너무 멀리 있는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더니, 함께 커피 마시며 수다 떠는 친구가 그립다더니, 이 글을 찾아낸 것이다. 내가 섬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이어령을 생각한다. 내가 이어령의 ‘흙 바람 속의 저 바람 속에’를 읽은 것은 대학신문 기자로 심부름하던 어느 해 여름이었다. 

 

첫 번 수고비를 주필이 ‘거마비’라고 쓴 봉투에 넣어 주었는데, 이 돈으로 내가 처음 구입한 책이라 나는 이 책을 기억한다. 이 책은 나를 번쩍 정신차리게 하는 무엇이 있었다. 

 

그의 언어, 그의 비유, 의표를 찌르는 듯한 냉혹, 기발한 대비, 눈치 안보는 비판들은 나의 어린 지적 목마름을 적셔주었다고나 할까. 

 

그는 단박에 나의 우상이 되었다. 그 후 신춘문예 한차례에 떨어지고 나서 나는 이어령 교수를 떠났고 한국을 떠났다.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김지수라는 기자와의 대담을 책으로 만든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읽어보니 이어령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가르침이었다. 

 

옛 선지자처럼 제자를 앞에 놓고 “제자여, 그리하여 나는 말 하노라”식의 대화였는데 왠지 어색하긴 하다. 그러나 행복, 사랑, 용서, 영성 같은 무거운 주제를 쉽게 풀어가는 이어령 식의 대화법은 유효한 책이었다.

 

- 책에 대하여… “의무감으로 읽지 않는다. 재미없는 데는 뛰어넘고, 눈에 띄고 재미있는 곳만 찾아 읽지. 나비가 꿀을 딸 때처럼. 나비는 이 꽃 저 꽃 가서 따지, 1번 2번 순서대로 돌지않아. 목장에서 소가 풀 뜯는 걸 봐도 여기저기 드문드문 뜯어. 풀 난 순서대로 가지런히 뜯어 먹지 않는다고. 재미없으면 던져버려. 반대로 재미있는 책은 닳도록 읽고 또 읽어.”

 

- 글쓰기에 대하여… “글을 쓸 때 나는 관심, 관찰, 관계를. 평생 이 세 가지 순서를 반복하며 스토리를 만들어왔다네.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면 나와의 관계가 생겨.”

 

- 생의 진실에 대하여… “모든 게 선물이었다.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삶은 죽음 사이에 있다.” 그걸 누가 모릅니까?

 

한편 이어령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언어의 마술사라 불리고, 단군 이래의 재사라는 호평을 받는 당대의 지성인이란 분이 지난 수십년 과연 이 사회에 무엇을 기여하고, 대한민국을 위해 무슨 헌신을 했는지, 한국문학에 무슨 비젼을 주었는지 묻고 싶다. 그는 무신론에서 전도사로 추락했다. 그에게 무엇을 물으리”라는 비판의 소리는 그가 했던 말의 부메랑이었다. 

 

이어령은 22세의 나이에 ‘우상파괴’라는 논문에서 김동리 서정주를 비판했고, 이상을 등장시켜 ‘이상문학상’으로 끌어낸 장본인이다. 이만하면 그는 한국문학의 길라잡이였다고 할 수 있다.

 

스승이 드디어 숨을 거두려고 하자 제자들이 귀를 기울였으나 그 스승은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죽었다. 어떤 제자들은 스승이 많은 말을 남겼다고 했고, 어떤 제자들은 스승은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는 인도의 설화가 생각났다. 

 

떠난 이어령 교수를 추모하며… 나는 그저 이어령의 한계, 인간의 한계를 느꼈을 뿐이다. 글쎄다. 이 세상 사람들은 백인백색. 모두 다르다. 모든 것이 그랬다. 

 

세상을 풍미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있다. 누구나 떠나는 그 길에 같은 모습으로 또는 다른 모습으로. 죽음의 수수께기를 풀지 못하고 수수께기 같은 말만 남기고 떠나는 길, 그것이 죽음의 길은 아닐지. *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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