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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고대진] 어머니의 메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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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조회 340회 작성일 25-06-07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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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올해 일월 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흔일곱 살이셨다. 백 살이 가까워지면서 항상 돌아가실 수 있음을 예상하였지만, 막상 한국에서 온 동생의 전화를 받고 나니 “이번 4월에 가서 뵈려고 비행기표를 다 사 놨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뵐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동생 말로는 집에서 당신 방에서 주무시다가 돌아가셨으니 참 평안한 임종을 맞으신 것 같았다. 며칠 전 병자성사도 받으시고 미사도 집에서 하신 뒤라서 보내는 형제들이 모두 평안한 마음으로 보내 드릴 수 있었다.


급히 비행기표를 구해서 서울로 향했다. 장례식 전에는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의 추위는 기록적이었지만 동생들이 다 잘 준비해주어 무사히 장례를 마쳤다. 장례 후 어머니의 방을 정리하던 동생이 어머니가 남기신 메모장을 발견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일 메모를 하시며 공부하시던 어머니라 어떤 것을 쓰셨을까 굼금했는데 노트 하나 분량의 메모장 첫 페이지는 “공부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라고 쓰여 있고 그 아래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서 잘 모르는 단어를 찾으셔서 의미와 해설을 일본어, 영어, 한글로 쓰신 것이 있었다. 칼럼니스트, 테크노크라트(technocrat), 컨소시엄(consortium), 패러다임(paradigm), 마스터플랜(master plan) 등등의 용어를 해설한 것들이었다. 평소에도 잡지나 신문을 읽으시며 모르는 단어를 찾아 쓰시고 공부하시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아마도 최근에 일본 잡지 ‘문예춘추’를 읽으시면서 나오는 단어 중 모르는 단어를 써 놓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역사와 사회 그리고 자신을 공부하려 했다. 우선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으셔서 왜 그러는지 또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셨다. 책을 많이 읽으시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려고 하셨던 것 같다. 그러니 지적으로 개을러지려는 자신과 싸우며 공부를 하신 것 같다. 누구에게 보이려는 공부가 아니라 자신과 세계를 알고 싶어 하는 열망이 죽는 날까지 계속 공부하게 만드신 것 아닐까? 


공부(工夫)란 무엇인가? 이명복 교수의 책 <담론>을 보면 한자로 공(工)과 부(夫)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뜻으로 농기구로 땅을 파헤쳐 농사를 짓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는 살아가는 그 자체이고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인 세계와 세계 속에 존재하는 나 자신에 대해, 자연과 사회 그리고 역사와 나 자신을 공부해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이 공부라고 한다. 


공부는 도를 구한다는 구도(求道)라고도 하는데 道(길)를 구하는 데는 반드시 고행이 전제되고 그 고행의 총화가 공부라고 한다. 즉 공부는 고생 그 자체이고 고생하면 세상을 잘 알게 되고 철도 든다. 어머니의 메모장에 쓰인 ‘공부는 자신과의 싸움이다’도 아마 구도에 대한 고행을 뜻하신 것이 아닌가 한다. 


이명복 교수의 <담론>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공부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완고한 인식틀을 망치로 깨뜨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고행이 공부가 되기도 하고 방황과 고뇌가 성찰과 각성이 되기도 한다. 공부하지 않는 생명은 없다. 달팽이도 공부한다. 지난여름 폭풍 속에서 세찬 비바람 견디며 열심히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을 깨달았을 것이다. 공부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의 존재 형식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안도현의 시 <스며드는 것>이 떠오른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알을 품고 있는 암게가 알들에게 마지막으로 읊조리는 위안의 말 같이 어머니는 돌아가시며 말씀하시는 것 같다. 공부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 뒤에는 깨달음이 있단다. 


연암 박지원의 시 <연암에서 돌아가신 형님을 생각하며>를 생각한다. 

“나의 형님 얼굴과 수염은 누구와 닮았었나?/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날 땐 내 형을 보았지./ 오늘도 형님이 생각나 어디 계신지 보고 싶어/ 의관 갖추고 시냇물 위에 내 모습 비춰보네.“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들에게 구도의 길을 보여주신 어머니. 어머니가 생각이 나면 나는 어떡하나? 옆에 있는 누나의 모습을 보나? 내 생각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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