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데스크칼럼

[권두칼럼] ‘설날’을 보내며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오피니언 댓글 0건 조회 2,106회 작성일 22-02-04 09:29

본문

어제 그제가 ‘설날’이었다. 누가 뭐라해도 우리 민족의 대 명절이었다. 연휴기간동안 본국에서는 코로나 와중에서도 나라가 들떠 고향 가는 길이 많이 막혔다고 전한다. 

사람들은 요즘의 정치판이 아무리 짜증난다 하더라도 그 날만큼은 얼굴을 찌푸리기 보다는, 단지 정겨운 ‘명절’이라는 연유로 모두가 웃고 덕담으로 설날을 맞이하고 또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고국을 떠나 만리 이국에서 맞는 설날은 마음이 그리 넉넉한 그런 명절은 아닌 듯하다. 우리 주변 몇 군데 – 한인단체나 교회 관련 분들이 전해주는 ‘명절 잔치’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설날과는 아무 관계없는 이 메마른 만 리 이국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외롭고 쓸쓸한 사연들을 대하노라면 참으로 가슴속이 아리곤 한다. 

차 한 잔을 놓고 베란다 의자에 앉아 가만히 생각을 모아본다. 

지금의 그분들은 어찌 보면 마치 내 어린 시절의 고모나 삼촌 같기도 하고 또는 모두가 그때의 섣달 그믐날 밤 큰집에 모여 앉았던 앞집, 새집, 앞 새집의 새댁들이나 아지매 아재비 같은 분들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렇듯 명절을 맞으면 그 분들 가슴 속에도 역시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 손끝이 저려지고 그래서 더욱 연민을 갖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는 그 분들 뿐만 아니라 또 우리들에게도 다시는 그 시절의 정겨운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창 밖에 보이는 하늘의 색깔이 결코 밝아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찻잔을 놓고 울적한 마음으로 그 시절을 기억하는 연시조 한 편을 끄적여 지난 날 새해맞이를 새로이 추억하고자 한다. 

 

설날 전야

 

까치 설 그믐날엔 밤 도와 분주하다 

졸린 눈 비비다가 장지문 열어보니 

눈 속에 붉은 홍시가 그림 속 선경이다

 

아랫목 술독에선 동동주 익어가고 

툇마루 소쿠리엔 전(煎)지지미 그득했다 

살강 위 양상군자(梁上君子)들 눈치 없이 살강 대

 

마루 밑 괭이 녀석 숨죽여 기다리고

뒤 뜨락 대숲 속을 숨어 부는 바람 소리 

드넓은 대청마루가 폭풍 전 정적이다. 

 

* 메모 : 그제가 설이었다. 추석 때도 그렇지만 어릴 적 기억으로는 까치 설인 명절 전야엔 밤이 이슥하도록 안방이나 대청마루가 유난히 부산했다. 할머니 치마폭에 안겨 깜박 잠이 들었다 깨면 미닫이 장지문 바깥은 설사 달빛이 없어도 뿌옇게 밝았다. 

안방 구들목 술독에서는 술 익는 냄새가 달 지근했고, 툇마루 공간을 가득 채운 설음식은 그 냄새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천정 속을 기는 서생원들의 살강 댐이 유난히 귀를 모았다. 아, 그러나 그런 추억은 그야말로 이제는 모두가 전설처럼 우리들 머릿속에서 그림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더구나 만 리 이국에서랴. 

 

손용상 논설위원 

*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데스크칼럼 목록
    한국 대선이 불과 5일 남았다. 야권의 대선 후보인 윤석열과 안철수 간의 후보 단일화로 ‘정권교체’를 갈망하던 국민들의 열망도 하마터면 허망한 물거품이 될 뻔했다. 그러다가 3일 새벽 극적으로 윤.안 두 후보가 손을 잡았다. 그동안 대다수 네티즌들은 안철수를 상습적 ‘…
    2022-03-04 
    한국 대선이 불과 5일 남았다. 야권의 대선 후보인 윤석열과 안철수 간의 후보 단일화로 ‘정권교체’를 갈망하던 국민들의 열망도 하마터면 허망한 물거품이 될 뻔했다. 그러다가 3일 새벽 극적으로 윤.안 두 후보가 손을 잡았다. 그동안 대다수 네티즌들은 안철수를 상습적 ‘…
    2022-03-04 
    3월 9일 실시되는 20대 한국 대통령 선거가 불과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 15일부터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어 각 당 대선 후보들의 유세와 광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선 승리를 위해 아직 표심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의 지지를 최대한으로 얻기 위해 후보들은 각…
    2022-02-25 
    사람이 지닌 ‘성품과 본능’에 대한 일화 하나가 있습니다. 특히 권력을 쥐는 사람들의 그것은 그 사람의 타고난 인성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는 사는 동안 가시밭 역경을 이겨내면 “그 사람 잘 참고 이겨내는 것을 보니 성품이 참 좋네…
    2022-02-18 
    사회학 용어에 ‘화이트 라이(white lie)’라는 말이 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좋은 뜻의 악의 없는 거짓말을 말한다. 말하자면 남이 산 물건에 대해 “이거 어제 샀는데 어때?”하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기왕 산 물건인데 “좋은데”라고 답해주는 것. 또는 결혼…
    2022-02-11 
    어제 그제가 ‘설날’이었다. 누가 뭐라해도 우리 민족의 대 명절이었다. 연휴기간동안 본국에서는 코로나 와중에서도 나라가 들떠 고향 가는 길이 많이 막혔다고 전한다. 사람들은 요즘의 정치판이 아무리 짜증난다 하더라도 그 날만큼은 얼굴을 찌푸리기 보다는, 단지 정겨운 ‘명…
    2022-02-04 
    미국의 경제 기류가 심상찮다. COVID-19의 장기화와 공급망 위기, 그리고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안정적인 경제 성장에 이미 적신호가 들어와 있는 상태이다. 실제로 작년 12월에 발표된 인플레이션은 6.8%로 지난 40년간 최고치를 나타냈다. 다행히도 같은 시기…
    2022-01-28 
    임기 종료를 불과 5개월여 남긴 문재인 정부가 종전 선언을 통해 남북관계 진전의 상징으로 역사에 남기려 마지막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양이다. 관련국 중 아무도 진정한 관심이 없고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집요하다. 반세기에 걸친 북한의 ‘한반도 평화…
    2022-01-21 
    강한 ‘자신감’만이 ‘희망’을 만든다. 보통 우리 인생은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삶이라는 것… 선현(先賢)들의 말이다. 지난 한 해 나는 그 중에서도 무엇을 얻었나 보다는 무엇을 잃어버렸는가를 먼저 생각…
    2022-01-14 
    신축년(辛丑年)이 가고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왔다.  2022년 임인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 라고 한다. 명리학에 따르면 10개의 천간 중 임(壬)이란 글자는 음양오행 중 검은색을 띠는 수(水)의 기운이며, 12개의 지지 중 인(寅)이란 글자는 동물 중 호랑이를 뜻…
    2022-01-07 
    한국 대통령 선거가 70여일 남은 시점에서 각종 언론매체에서 대선관련 보도가 뉴스의 주요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대선 후보자와 그 배우자, 선거캠프와 정책공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기사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이 정권 재창출이냐 정권 교체냐를 두…
    2021-12-30 
    다자대결 구도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오차 범위 내 접전을 벌인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지난 22일 나왔다.두 후보의 ‘가족 리스크’가 나란히 불거진 이후 실시된 조사다.리얼미터가 지난 20∼21일 전국 1천27명을 대상으로 대선 후보 지지도를…
    2021-12-23 
    고국의 대통령 선거가 3개월도 안 남았다. 이제 서서히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언론에 의하면 여야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여전하고 표심을 못 정한 사람들이 약 20% 수준이라 한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이 보도에 따른 후보 지지율 등의 %가 여론 조사기관마…
    2021-12-17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우리에게 이 말은 너무도 익숙하다. 아주 오래도록 아니, 귀에 거의 못이 박혀있다. 이 말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선포 일에 이승만 대통령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로 국민들에게 각인되었다. 해방 직후 우리 사회가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
    2021-12-10 
    잘 끝내고 좋은 새 시작을 알리는 한 해의 막 달에서…  지난 주부터 이번 주간은 24절기 중 ‘소설(小雪)’과 대설(大雪)의 절기다. 음력으로는 10월20일 경을 전후하여 시작하는데, 바야흐로 한 겨울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때 부는 바람은 몹시 매섭고 추워 ‘강화 뱃…
    2021-12-03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