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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데스크칼럼

겨울 한파, 대규모 정전, 그리고 아쉬운 정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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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오피니언 댓글 0건 조회 2,798회 작성일 21-02-2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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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지난 주에 텍사스에서 대규모 정전이라는 비극적 사태가 발생했다. 정전 사태가 텍사스 지역 방송국 뿐만 아니라 미국내 유력 방송국의 메인 뉴스로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며칠 동안 정전과 단수로 인해 고통받았으며, 심지어는 추위로 인해 집안에서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 마저 야기되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경우에도 한파와 대규모 정전으로 일주일이 넘게 임시 휴교 조치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대규모 정전 사태로 인하여 텍사스 내의 모든 일상이 사실상 중지된 셈이다. 아울러 사태 해결을 기다리면서 주정부의 부실한 위기 대처 능력에 많은 이들이 깊은 우려과 좌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대규모 정전 사태는 한국 언론에서도 자주 보도돼 한국에 있는 친지들과 친구들이 전화로 안부를 물어왔다. 몇몇 지인들과 통화하면서 정전과 관련해서 한국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어떻게 미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필자로서도 대답하기가 굉장히 곤란했다. “그냥 완전히 엉망이야”라는 자조 섞인 간략한 대답 외에는 비극적 사태의 원인을 짧은 통화에서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사실 전력 부족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겨울 한파로 인해 멈춰버린 풍력 발전기과 얼어붙은 가스 파이프만을 탓할 수는 없다. 

 

비슷한 기상이변이 발생해 텍사스주의 전력이 부족할 때마다 발전기만 탓하는 일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현명한 방법과 자세는 분명히 아니다. 오히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 지도자들과 공공재를 관리하는 책임자들의 공적 업무에 대한 방기와 무능력, 그리고 전반적인 리더십의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며칠 전 대규모 정전 이후에 텍사스 주의 전력망 운용을 담당하는 텍사스 전기신뢰성 이사회 (ERCOT)는 텍사스의 전력 시스템이 붕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이러한 발표가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이 아니라 재난이 발생한 이후에야 보고되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텍사스 전기신뢰성 이사회가 작년 11월에는 겨울 혹한을 대비한 전력 생산과 관리가 준비되어 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었다. 이러한 점에서 갑작스런 기상이변으로 인한 전력망 재해가 아니라 주정부 차원에서 재난에 대비한 방비의 전반적 부실이 가져온 인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재난을 대비하기 위한 계획의 부재와 관리감독을 담당해야 할 주정부 기관의 무사안일과 무책임이 가져온 참사인 것이다. 

 

실제로 대규모 정전은 텍사스에서 거의 5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고질적인 문제이다. 2011년 2월 겨울 혹한이 닥쳤을 때도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으며, 2015년 7월 무더위로 냉방을 위한 전력량이 급증했을 때에도 전력 부족으로 유사한 사태가 발생했다. 

 

객관적으로 지구온난화와 맞물려 한파와 태풍, 이상 고온 등의 기상이변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전력 생산과 전력망 관리를 위한 주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집행하지 않는다면 대규모 정전 사태는 조만간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럴 때마다 관련 책임자 몇몇이 사임하고 주지사나 주의회 차원에서의 조사로만 마무리된다면 대규모 정전은 반복해서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텍사스 상원의원인 테드 크르주는 지난주 한파와 정전을 피해 멕시코 칸쿤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텍사스 유권자에 의해 선출된 연방 상원의원이 한파와 정전, 단수로 인해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을 남겨둔 채 따뜻한 멕시코 휴양지로 여행을 떠났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 굉장히 믿기 어려운 정치적 사건이었다. 

 

테드 크르주 의원뿐만 아니라 주 법무장관인 켄 팩싱턴 역시 지난 주에 유타로 여행을 간 사실이 최근에 보도됐다.

 

중요한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하는 선출직 공무원의 무책임한 행동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리더십을 발휘해 재난을 극복해야 상황에서 많은 이들의 고통을 뒤로 한채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들에 대한 많은 이들의 분노 어린 주민들의 비난과 질타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텍사스의 유력 정치인들이 기상이변 탓만 하며 자신들의 역할을 방기하고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이 재현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정치 리더십의 중요성과 역할이 다시금 현명하게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최장섭 논설위원

Texas A&M University-Commerce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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