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짧은 글 릴레이 ] 김수자 에세이 - ‘헛수고’도 재미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2,060회 작성일 22-02-25 13:50

본문

얼마 전 어느 목사님이 너싱홈(Nursing Home)으로 설교를 하러 간다며 동행하자고 해서 간 적이 있다. 와이키키 앞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조용하고 조경이 잘 되어있어 자녀들이 찾아오기 좋게 만들었다며 한달 비용이 5천달러라고 목사님이 넌지시 알려주었다. 

 

시간이 되자 레크레이션 룸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두들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휠체어를 타고 모여드는 것을 보고 속으로 놀랐다. 휠체어 나라에 온 듯했다.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 이상 할 정도였다. 

한국 목사님의 영어 설교가 썩 마음에 든다는 표정이었다. 어찌나 진지한 모습인지 볼펜 하나 떨어뜨리면 안될 성싶었다. 찬송가를 부를 때는 손뼉을 치는 사람, 다리를 까닥거리는 사람, 손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는 사람 등등 제 각기 표현을 했다.

 

예배를 마치고 우리는 99세 한국 할머니의 방으로 갔다. 해맑은 웃음을 띠고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목사님이 침대를 ㄴ자로 만들어 할머니를 일으키자 ‘반가워요, 반가워요’하며 눈가에 눈물까지 보이셨다. 이가 하나도 없어서 아기 같았다. 냅킨으로 눈물을 닦아드리는데 갑자기 와락 내 손을 잡았다. 

그 가늘고 앙상한 뼈다귀만 남은 손의 힘이 어찌나 센지 손을 빼기가 힘들었다. 이 분은 2명의 자식이 있는데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한 두 달 기분 좋은 곳에서 지내다가 돌아가시게 하려고 이곳에 모셨는데 5년이나 계시어 요새는 면회도 안 온단다. 

 

테라스에는 어느 할머니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앉아 계셨다. 그 분은 해만 뜨면 나와 계신다고 했는데 잠들었나 싶어서 휠체어를 옮기려고 하면 “Leave me alone” 하면서 손도 못 대게 한단다. 왼종일 햇볕을 쬐며 나른한 잠에 빠져드는 그 행복을  아무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듯 보였다.  

 

거실 한 귀퉁이에서 뜨개질을 하는 분이 계셨다. 무엇을 만드세요 했더니 그냥 웃으신다. 간호 보조인이 그 분은 아침에 뜨개질을 시작하여 저녁까지 아주 긴 목도리를 만드시는데 해가 지면 반드시 죄다 풀어서 똘똘 뭉쳐 놓는다고. 다음날 아침에 새로 뜨개질을 시작한단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아침에 뜨게질을 시작하고 저녁에 풀고 다음날 또 시작하고 저녁에 풀고… 혹 실이 없어서 그럴까요? 아니요, 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냥 그런 작업을 하시는 거에요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자주색 베레모를 쓴 어떤 할아버지도 있었다. 자못 화가가 된 양 폼을 잡고 풍차가 있는 풍경화에 퍼즐을 맟추고 있었다. 이 할아버지도 기껏 완성한 다음에는 순식간에 흩어 버린단다. 

 

원시불교 이야기에 치성인(痴聖人)이야기가 있다. 이 치성인은 매일 눈을 한 삼태기씩 퍼서 우물에 쏟아 넣는게 일이었다. 눈을 우물에 쳐넣어봤자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기만 하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했다.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여겼다. 그러나 나중에 끊임없는 그의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의 모든 행위, 먹고 자고 일하고 애 낳고 하는 모든 행위가 한낱 우물 속의 눈 같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헛된 짓을 하는 인간의 부조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그를 사람들은 치성인이라고 불렀다.

서양에도 이런 얼빠진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 이야기다. 시지프스는 잘난 체하고 오만하고 간교해서 최고 신으로부터 벌을 받게 되었는데, 큰 돌을 가파른 언덕 위 정상으로 굴려 올려야 하고, 그 돌이 밑으로 굴러 내려가면 처음부터 다시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벌이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트 카뮈는 그의 책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시지프스는  밀어 올린 돌이 떨어질 줄 알고도 굴렸을 것이며 다시 바위를 굴려 올리려는 모습은 인간승리를 뜻한다고 했다. 알베르트 카뮈는 시지프스의 수고에 대해  “산정(山頂)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스를 마음 속에 그리자”고 했다. 그러면서 카뮈는 시지프스의 이러한 행위를 부조리라고 평가했다. 

 

카뮈나 치성인이나 사람들은 헛수고만 한다는 자각이었는데, 그 헛수고가 사람의 일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판에 박은 듯한 일상이 짜증이 나고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쌓이지만, 사실은 그 일상에 행복과 재미를 느낀다는 사실이다. 

매일 눈을 삼태기에 나르는 치성인도 힘들게 돌을 굴려 올리는 시지프스도 반복되는 그 일 자체에 재미와 흥미를 느꼈으리라는 평가에서 우리는 긍정을 느낀다.

 

그날 시지프스의 후예 같기도 하고 치성인의 제자 같기도 한 너싱홈의 시니어들을 보면서 절망하지 않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았다. 

절망은커녕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우리의 삶이, 그 일상들이, 사실은 행복과 재미를 담고 있다는 것, 이것이 삶을 이어가는 주체가 된다는 심오한 학습을 한 느낌이었다.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 난 불행해 - 수잔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21살에 뉴욕포스트의 신문기자로 입사를 하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신입기자로써 수습기간을 끝내고, 이제 정식 기자로서 자신감 있게 자신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며칠 후, 그녀는 자신의 남자 친구인 스티븐을 부모님께 소개를…
    문화 2022-06-03 
    부동산 투자에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정보를 선점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남보다 빨리 고급정보를 입수해서 결단력을 가지고 결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장이 과열되고 나서야 뒤늦게 투자에 나서 상투를 잡거나 실패…
    부동산 2022-05-27 
    안녕하세요! 요새 디저트 종류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카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손가락 두 마디도 안되는 크기의 작고 예쁜 디저트가 있습니다. 고소한 과자 사이에 달콤한 크림이 들어가 쌉살한 커피와 궁합이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디저트가 $3~4…
    문화 2022-05-27 
    밖이 조용해진 걸 보니 비가 멎은 모양이다. 모처럼 시원하게 비가 왔다. 종일 뼈마디가 쑤시고 다리가 저렸지만,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가 좋았다. 빗줄기는 굵기와 세기 그리고 어디로 떨어지는가에 따라 소리가 다르고 누구와 듣느냐에 따라 느낌도 다르다. 나는 양철로 된 빗…
    문화 2022-05-27 
    바다건너 고국에서는 지난 20일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문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삼성전자 평택 공장이었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찾아 첫 일정으로 기업을 찾은 것은 이례적이고, 재계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행보에 나름의 메시지가 있다고 해석을 하고 있다. 하…
    세무회계 2022-05-27 
    세탁소에 맡긴 자신의 바지 한벌이 분실 되었다고 한인이 경영하는 세탁소를 상대로 54,000,000 달러에 달하는 손해 배상을 청구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결국 이 어처구니 없는 소송에서 세탁소 주인이 승소를 했지만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당사자의 마음 …
    보험 2022-05-20 
    장보기가 겁나는 요즘이다. 장보기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신발 다음으로 중요한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것도 겁나는 현실이다.  그나마 텍사스는 가솔린 가격이 다른주와 비교해서 아직까지는 낮다.  LA는 평균 개스값이 갤론당 7-8 달러씩 한다고하니 LA물가와 비교하면 텍사…
    세무회계 2022-05-20 
    아침 산책은 오전 7시를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그 시간이 지나면 이미 태양의 열기가 비치기 시작한다. 평소때 같으면 동네 어귀를 돌 때 마다 늦잠을 자지 않는 개들의 짖는 소리가 요란한데, 주말엔 밤늦게 까지 수영을 하는 주인을 따라 늦잠 중인지 오늘은 조용한 편이…
    문화 2022-05-20 
    오늘은 더워진 날씨에 시원함과 달콤함을 선사해 주는 아이스크림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우선 인류 최초의 빙과류 라고 할 수 있는 샤베트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기원은 고대 중동지방에서 천연의 눈에 과즙이나 감미료를 섞어 먹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어원…
    건강의학 2022-05-20 
    집을 가지고 있는 홈 오너들은2022년 Property Tax(재산세) 금액을 해당 카운티로 부터 고지 받고 있는 시기이다. 올 해 주택 감정평가 금액이 달라스 카운티, 테런트 카운티, 그리고 콜린 카운티에서 평균 25~30% 오른 것으로 통계되었다. 텍사스 감정지구 …
    부동산 2022-05-20 
    바다건너 고국은 지난 5월10일 0시로부터 새롭게 대통령으로 선출된 윤석열 대통령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사상 첫 검찰총장 출신의 비정치인 출신으로 임기 초기 국정수행 지지율이 전직 대통령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는 윤 대통령의 향후 행보에 모두의 관심이 …
    세무회계 2022-05-13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생활하던 것들 중에서 이유를 물어보면 대답하기 곤란한 것들이 꽤 있습니다.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는 왜 나는 걸까? 하늘은 왜 파란색일까? 등등 정말 많은 것들이 떠오르는데요. 음식으로 시선을 돌려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우유는 왜 흰색일까요…
    건강의학 2022-05-13 
    달라스 더블트리 바이 힐튼 호텔에는 한인 여성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다. ‘2022 세계 여성위원 컨퍼런스’라는 꽃장식을 한 핑크색 배너가 여기저기 세워져 있고 가슴에 커다란 명찰을 단 여성들은 밝은 모습으로 서로서로 안부를 챙기며 얼굴…
    문화 2022-05-13 
    요즘에는 기존의 상식에서 벗어난 엉뚱하고, 기발한 것이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역발상’은 ‘거꾸로 생각하기’ 또는 ‘일반적인 생각과 반대로 생각하기’를 의미하는데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생각의 전환’ 또는 ‘관점의 변화’를 뜻한다. 기존에 답습하던 인식이나 …
    부동산 2022-05-13 
    지난 3년여 펜데믹 사태로 인해서 국내외 여행이 극도로 자제되어 오다가 이제 점차 정상화되고 있어서 참 다행스럽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말하는 여행에는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소극적 의미로는 일상 생활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기분을 전환 시…
    보험 2022-05-06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