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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만추(晩秋) 전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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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2,640회 작성일 21-09-2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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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매미가 현관 벽에 붙어 있네!”

나무에서는 매미들의 구애열기가 아직도 뜨거운데 바로 눈 앞에 매미가 있을 줄이야! 초등학교 과학실의 유리 덮인 표본실에서 본 후로는 처음이다. 뒤 따라 오는 남편에게 조용히 하라고 입에 손가락을 대고 멈추게 한 후 얼른 사진을 찍었다. 신기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도 전혀 움직임이 없어 이상했다. 이슬이라도 먹어야 될 듯해서 살며시 잡아서 난디나잎 무성한 그늘에 올려주었다. 

그 다음날도 꼼짝 안한다. 세상에! 박제된 것처럼 죽어있었다. 라임색 고운 머리, 호랑이처럼 고동색과 검은색이 멋진 등에는 지금이라도 펴면 날 듯 아름답고 튼실한 날개를 접은 채, 살아서 앉아있듯 발로 벽을 꼭 붙잡고 간 것이다.

 

그 며칠 후 흙에서 가까운 쪽 현관에 엄지만한 누런 벌래가 붙어있었다. 유심히 보니 날개 없는 등이 세로로 살짝 열려있었다. 이런 건 평생에 처음 본다. 살아있었을텐데 어떻게 이렇게 속이 빈 듯, 끝을 모르는 동굴을 드려다 보는 듯, 미스터리한 느낌이 들었다. 

이삼일을 단단히 붙어있기에 검색해봤더니 매미가 남기고 간 탈피각, ‘애벌레가 매미로 탄생한 기나긴 산통의 징표’라고 했다. 촌에서 자란 남편은 매미의 허물이라고 했다. 도시에서만 살다가 미국와서 농부의 아내로 얻는 새로운 지식들은 신선하고 새롭다.

파머스 브렌치가 목화밭이었을 때 농장주인이 살았다는 우리 집은 낡아져도, 아름드리 나무들은 아직도 청청하다. 새벽부터 요란한 매미들의 소리는 나무마다 진공청소기가 몇 대씩 달려서 돌아가듯 했다. 황혼이 되도록, 무성한 나뭇잎들을 모두 날려버릴 듯 기세가 등등했다. 

숫매미는 건강함을 죽도록 노래하다 결혼하면 바로 생이 다한다. 암매미는 2-3주 정도의 시간에 짝을 찾고 나뭇가지 틈을 몸으로 힘겹게 벌려 산란을 하고 삶을 접는다.  

잎새 속에 숨어 천적을 피하며 제 소리가 제일 우렁차다고, 제일 납자답다고, 알통을 자랑하던 20대 청년 같던 매미소리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들의 시간이 저물기 전에 결혼하고 떠났을까.   

 요 이년 새에 ‘작은 둥지’의 손님 대여섯 분이 배우자를 먼저 보냈다. 집은 껍질만 남은 빈집 같다고 했다. 자연히 시니어나 어시스턴트 리빙으로 옮기고 코로나 19 때문에도 자주 못 오게 되었다.

 

미국인들의 삶을 ‘간접 경험하던 작은 창’ 여러 개가 닫혀가는 중이다. 그들은 나에게 소소한 일상을 말하고 함께 찬송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나는 그들의 세계를 알아가고 배워가고 정보를 얻어서 주위의 한국인들에게 알리기도 했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다 같다.

몇 년 전부터 CA의 아들과 딸이 오라 해도 친구와 지인을 떠날 수 없다고 안 가던 Mrs. L. 이제는 워커 짚고 도우미 덕으로 겨우 걷는다.

팬데믹에도 아들딸이 교대로 서너 번씩 다녀갔다. 젊지 않은 아들딸과 손자들 생각하고 가시라고 했다. 혼자 죽을까봐 그것이 싫다고 하면서도 결정을 못했다. 

생각 깊은 아들이 노인전문 정신과 의사에게 예약했고 누나와 어머니와 넷이 화상상담 후 CA 딸집 근처 어시스턴트 리빙으로 옮기기를 결정했다.  

Mrs. L은 유대인이다. 랍비인 부친이 ‘템플 임마누엘’에 20년을 재직할 때에 지금의 멋진 템플을 지으셨다고 했다. 

유명한 건축 디자이너가 설계한 아주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자기가 달라스를 떠나기 전에 한 번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이 ‘달라스의 템플 임마누엘 쥬이시 묘지’에 계시니 실제 떠나기 어려웠던 가장 큰 원인이었다. 

Mrs. L을 25년 전에 만났다. 접수처에서 조용한 사람에게 네일을 하고 싶다고 했단다. 

두 번의 이혼과 양육권 소송에서 이긴 그녀 자신이 달라스에서 유명한 랍비의 딸인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으리라. 

진한 선글라스로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고 왔다. 사적인 것을 먼저 묻지 않는 내 성격과 능숙치 않은 영어가 편했으리라. 

목사 아내인 나 또한 신 자아닌, 자칭 교인들의 사기에 속아 곤욕을 치를 때라서 누구든 나에 대해 물으면 얼버무릴 때였다.  

오페라를 좋아한 그 분 덕에 몇 번이나 이민생활의 호사를 누렸다. 유명한 오페라는 가수들의 이름을 줄줄이 기억하고 있었고 곡을 거의 외워서 허밍으로 따라하기도 했다. 

특히 스무 번쯤 봤다는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를 좋아해서 사다 준 CD 셑을 함께 듣는다. “모차르트는 천국에서도 깔깔거리며 웃을거”란다. 

외할머니는 1904년 뉴욕 서브웨이 개통을 들려주셨고, 남편 어릴 때 나치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살아나온 이야기, 첫 증손자를 낳은 첫 손녀 열 살 때 혼자 비행기 타고 달라스에 와서 미장원에 데려가고 옷 사줄 때의 에피소드 등 격주마다 이야기와 음악을 안고 와서 들으며 쌓인 사연이 오페라와 함께 남으리라. 꼭 다시 만나 라구나비치의 아름다운 일몰을 보자고 하신다. 

퇴근길에 아직도 붙어있는 매미의 허물을 본다. 껍질을 벽에 남기고 떠난 늦둥이 젊은 매미가 이제 잠이 들었나보다. ‘어서 짝을 찾고 후손을 남기고 미련없이 행복하게 자려무나.’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시 90:16)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 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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