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크리스마스 접시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3,767회 작성일 20-12-11 10:29

본문

다용도실에 쌓여있는 오래된 크리스탈 접시들을 꺼내놓고 보니 시즌 접시가 꽤 되었다. 오래 전 포트워스 다운타운엔 유명한 디너웨어 아웃렛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온 동네 아줌마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레인디어나 크리스마스트리가 그려져 있거나, 천사가 나팔을 불고 있는 크리스탈 접시들을 사곤 했다. 누군가 ‘아, 이 접시 이쁘네’ 하면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접시를 사서 집집마다 장식을 해놓고, 볼 때마다 거저주운 것처럼 세일 가격을 자랑하곤 했다.

그 중 성모 마리아가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대형 크리스탈 접시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잘 구입했다 싶은데,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니 유독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중세에 그림 좀 그린다는 화가치고 성모자상을 그리지 않은 화가는 드물다. 성모자상은 화가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데, 우리동네 킴벨 뮤지엄에도 유명한 성모자상이 몇 점 있다.

도나첼로부터, 조반니 벨리니 등 헌신적이고 자애로운 표정의 어머니부터 이기적이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보이는 차가운 어머니상까지 다양한 성모자상이 있다. 

당시에도 화가들은 완벽하지 못한 세속의 모자상을 더 일찍 정확한 눈으로 간파해서 실존과 이상의 차이를 일찌감치 깨우치게 했던 것 같다. 때로는 그 간격이 너무 커서 위태롭기도 하지만, 어쨌든 인류는 저 2,000년 전부터 이상적인 모성성을 갈구해왔다.

일예로 화가 조반니 벨리니의 성모자상을 보면, 엄마의 표정이 좀 냉정하고 샐쭉해 보인다. 아기의 표정 역시 엄마에게 사랑을 느끼는 얼굴이라기보다는, 좀 어색하고 어정쩡하다. 평소 우리가 아는 모자관계의 이상적인 패러다임이 아니다.

그는 베네치아파 화가로 성모자상을 잘 그리기로 당대에도 유명했는데, 그의 그림이 그렇게 된 데에는 연유가 있다. 일찍 어머니의 부재를 맛 본데다가 그의 어머니는 조반니를 싫어해서 유언에도 그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거세당한 모정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부정적인 여성상을 그리게 만들었다.

 

엄마라는 존재는 천사가 너무 바빠서 준 역할이라는데, 요즘 세상의 모성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자식을 몰래 낳아 유기하거나, 굶어죽게 만드는 젊은 엄마도 있고, 키우지도 않고 권리부터 주장하는 뻔뻔한 엄마들에, 너무 과해서 자식을 평생 유아기 마마보이로 살게 하는 엄마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한국 엄마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웬만한 희생은 즐거움으로 아는 엄마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해마다 대림절이 되면 꼭 읽게 되는 루가복음의 한 구절(루가 1:39-45)을 난 좋아한다. 마리아가 유다산골에 있는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복음은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문장도 시적이어서 한 장면 장면이 머릿속으로 다 그려진다.

산악지방이니 임신한 몸으로 나귀를 타고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은데, 마리아는 힘든 내색 하지 않고, 사촌언니를 만나러가는 기쁨에 들떠있다. 주님의 어머니를 맞이하는 사촌 엘리사벳의 환대 또한 예사롭지 않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이에 마리아는 그 유명한 성모찬가,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나의 구원자 하느님안에서 내마음 기뻐 뛰노네’로 시작되는 마니피깟으로 응답한다.

이 인류의 역사를 바꿀 두 여인의 만남이 몇 천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계속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기의 만남’이라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은 인간의 적나라한 탐욕과 술수를 보여줬지만, 두 여인의 만남은 새 생명이 가지고 올 새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과 확신, 비전을 보여줬다. 크리스마스의 시작은 아마도 여기서부터 일 것이다.

 

차이나 캐비넷 안 작은 전등을 새것으로 갈아 끼우니, 오늘따라 성모자상 크리스탈이 더 환하게 반짝거린다. 어른이 되고 나서 누군가에게 포근하게 안겨본 것이 언제쯤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이럴 때 성모자상을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안해진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지치고 또 지칠 때 무작정 안길 수 있는 품안이 필요하다. 아무조건 없이 누군가를 사랑해주는 이, 사랑을 나누어 줄 이가 그립다. 그럴 이가 아기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올 한 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왔다. 그 끝에 환한 불빛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이가 있다.

올해도 구유 안은 따뜻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은총의 시기가 이미 시작되었다. 임마누엘! 임마누엘!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상필씨, 사람을 때리면 폴리스에 잡혀가서 무슨 벌을 받는지 알아?”“어제 내가 누구를 때렸어?” / “나와 탱고를 추던 춤 선생님을 쳤잖아?”“에쿠, 많이 다치셨나?” / “상필씨의 주먹을 피하려다가 넘어졌어. 다치지는 않았어. 다행이었지.”“어떻게 사죄하면 되지? …
    문화 2020-12-31 
    「메리 크리스마스」  메사추세츠주 콩코드, 현재 아빠는 남북전쟁으로 인해 집을 떠나 있고, 엄마와 딸 4명이 함께 살고 있다. 딸들의 이름은 첫째 매그, 둘째 조, 셋째 베스, 넷째 에이미이다. 어느 날, 매그와 조는 베스와 에이미를 집에 두고 파티에 참여한다. 매그는…
    문화 2020-12-31 
    Grace & Mercy Foundation의 지원으로 작년 10월 23일부터 시작된 오디오 북클럽은 <탕부 하나님-팀 켈러>를 시작으로,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자끄 엘륄>,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필립 얀시>, <성경과 5…
    문화 2020-12-24 
    레이 달리오는 Bridgewater Associates 창립자로 ‘헤지펀드의 대부’라 불리며, 세계 0.001% 안에 드는 부의 거인이다. 그는 1975년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해 40년 만에 세계 최대 규모의 헤지펀드로 성장시켰다. 2…
    부동산 2020-12-24 
    신문을 읽다보면 가정집의 관리유지를 위해 고용한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 제공자들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집 주인이 법적 보상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당신의 잔디를 정규적으로 깎아주는 회사나, 당신이 없는 동안 아기를 돌봐주는 이웃집…
    보험 2020-12-18 
    그날은 아침부터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큰아이가 인연을 만났다. 평생을 함께 할 그의 사람을 찾은 것이다. 5월에 있었어야 했을 상견례가 코비드19로 인해 11월로 미뤄졌고, 그 미뤄진 시간은 결국 비대면 시대라는 현실에 맞춰 우리를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히…
    문화 2020-12-18 
    토마토는 세계 10대 슈퍼푸드로 선정될 만큼 영양소가 매우 뛰어나 건강에 좋다는 것을 모르는 분은 아마 없으실 것입니다.토마토는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고 항산화 물질인 리코펜이 다량 함유되어 노화를 막아주고 암 예방, 심근경색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문화 2020-12-18 
    「나는 배우라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유명 영화배우인 파비안느가 잡지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때 뉴욕으로부터 딸 뤼미르와 사위 행크, 그리고 손녀 샤를로트가 파비안느의 집을 방문한다. 파비안느는 인터뷰가 끝나자, 딸의 가족들을 반갑게 맞이한…
    문화 2020-12-18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다사다난한 한 해를 거론하곤 한다. 하지만 올해처럼 많은 일들이 벌어져 우리의 삶 자체를 뒤흔든 해는 근래 보기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 코로나 19는 이 세상을 완전히 바꾼 것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BC(Before Cor…
    세무회계 2020-12-11 
    다용도실에 쌓여있는 오래된 크리스탈 접시들을 꺼내놓고 보니 시즌 접시가 꽤 되었다. 오래 전 포트워스 다운타운엔 유명한 디너웨어 아웃렛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온 동네 아줌마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레인디어나 크리스마스트리가 그려져 있거나, 천사가 나팔을 불고…
    문화 2020-12-11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과 인덱스펀드의 창시자 존 보글 등 월스트릿의 거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투자 철학자 하워드 막스.Oaktree Capital Management의 회장이자 공동 설립자인 그가 고객들에게 보내는 메모형식의 편지는 날카로운 논평과 오랜 세월에 걸쳐 유…
    부동산 2020-12-11 
    으슬으슬 추워지는 날씨로 인해 감기에 걸리거나, 기운이 없다고 느끼기 쉬운 환절기 입니다. 혹여나 목이 간질간질 한 날에는 ‘나 혹시 코로나 19 걸린 것 아니야?’ 하면서 걱정부터 앞서는 일도 많을 것 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고 계신가요? 요즘같이 독…
    문화 2020-12-04 
    ◈척추의 역할척추뼈는 우리 몸의 중앙에 위치하고 목부터 허리까지 길게 연결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길게 연결된 척추뼈는 우리의 몸통을 지지하는 기둥의 역할을 합니다. 척추의 또 다른 역할은 척추뼈들을 관통하는 척수와 척추신경을 단단히 보호하는 것입니다.척수와 척추신…
    건강의학 2020-12-04 
    우리는 지금 고도의 정보화와 컴퓨터 과학의 발달로 인해서 어느 때 보다도 삶의 편리함을 많이 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많은 사고들을 보면서 문명의 발달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실감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사고는…
    보험 2020-12-04 
    “호놀룰루의 밤 경치도 괜찮네. 미국의 대 도시들처럼 화려하네.”어둠이 내리자 오하후 섬 화산 산의 골짜기 골짜기 마다가  불빛으로 수놓아져 바다에 흘러내리며 도시 전체의 윤곽이 들어났다. 빌딩 50층의 클럽에서 내려다보이는 호놀룰루는 불 밭 그 자체였다. 도시는 밤을…
    문화 2020-12-04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