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과/학/칼/럼] 생물학으로 바라본 정치적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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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
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
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
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
미국 대선이 끝났다. 선거 기간 동안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 진보와 보수로 양분되었고, 결국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극단의 분열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큰 부담이다.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이 분열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자연 생태계와 인간 사회를 관통하는 공통적인 원리로 회자되는 두 표현이 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다. 강한 존재가 약한 존재를 정복하며, 적응한 존재는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반박하기 힘든 진리지만, 두 표현은 다소 상충하는 면도 있다. 예컨대 약한 존재지만 상황에 잘 적응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약육강식은 적자생존의 한 방식일 뿐이다. 사자가 빠른 발과 날카로운 이빨을 이용해 얼룩말을 잡아먹는 장면은 약육강식의 모습이기도 하고 사자가 생태계에 적응하여 생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초식 동물이 매번 사자의 먹잇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더러 사자에게 무리지어 덤비는 동물도 있고, 더 빨리 달아나는 동물도 있다. 비록 근육의 힘에서는 밀리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적응하여 생존을 모색한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을 인간 각 개체에 적용하면 다소 암울한 결론에 도달한다. 즉, 강한 사람이 되어 남에게 군림할 수 있는 지위를 얻거나, 적어도 사회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아야 한다는 식이다. 물론 우리는 교육을 통해 새로운 세대가 생존의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문제는 개발도상국이나 고속 성장을 한 사회에서 개개인에게 가혹한 수준으로 생존력을 요구하게 된다는 점이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의 엄청난 교육열과 대학입시 경쟁이 이를 반영한다.
적자생존을 더 의미 있게 이해하는 데에는 이기적 유전자를 집필한 리처드 도킨스의 시각을 이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인간은 사회와 환경에 적응하려는 이성적 노력을 할 수 있으나, 자연 생태계에서 그런 생물을 만나기는 어렵다. 사자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달리기 연습을 하는 얼룩말이나, 먹이를 더 잘 찾을 수 있도록 시력에 도움이 되는 과일을 챙겨 먹는 독수리는 없다. 개별 개체를 넘어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더 긴 시간 단위로 현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진화를 유전자적 관점에서 독특하게 풀어냈다. 비록 유전자는 인격이나 자각이 없으며, 생화학적으로는 몇 종류의 원소가 특정한 패턴으로 구성된, 단백질과 비슷한 화합물일 뿐이다. 유전과 진화를 직관적이고 재미있게 스토리텔링을 시도한 것이 바로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이다.
저자도 인터뷰 등을 통해 책의 제목이 다소 과격해서 난처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왜냐면 저자가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유전자의 꼭두각시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이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전과 진화의 결과를 바라보는 새로운 생각의 틀을 제시한 것뿐이었다.
도킨스가 설명한 유전과 진화의 핵심은 바로 생존과 돌연변이다. 자녀는 부모의 유전형질을 많이 물려받지만 백 퍼센트는 아니다. 특히 양성생식을 하는 경우 부모에게서 받은 절반씩의 유전형질이 조합되어 다른 형질이 나타나기도 하며, 우연히 분자 수준에서 전혀 다른 유전형질이 생성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돌연변이의 확률은 매우 낮다.
하지만 이렇게 가끔 발생하는 돌연변이가 환경 적응에 큰 도움이 된다면 그 개체의 생존 확률이 높아지고, 자식을 많이 낳아 유전자를 많이 남길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긴 시간 반복한 결과물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생태계와 인간 사회라는 것이 도킨스의 관점이다.
인간의 모습, 성향, 문화 등에 이를 적용해 볼 수 있다. 북유럽 사람들은 왜 피부가 희고 아프리카 사람들은 검을까? 햇볕이 약한 북유럽의 사람들은 비타민 D 합성을 위해 피부에 멜라닌 색소가 적은 것이 좋지만, 아프리카 사람에게는 그 반대가 된다. 사람들 개개인이 타고난 멜라닌 색소 관련 유전자는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많은 멜라닌 색소를, 어떤 사람은 적은 멜라닌 색소를 만드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다. 환경에 따라 더 적합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생존하고 계속 자녀를 남기게 된다. 그 반대의 사람들은 생존에 불리하여 일종의 국부적 멸종을 겪는다.
깊은 오지에 아직도 식인 문화를 가진 부족이 있다고는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동물 중에도 동족포식을 하는 종을 종종 볼 수 있으나, 같은 종을 주식으로 잡아먹은 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은 생물이 선천적으로 선하다거나 세상이 아름답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기보다, 혹여 그러한 동족포식을 과도하게 행하는 종이 나타났더라도 결국 자멸하여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조금 더 연장하여 인간 사회의 갈등을 차가운 이성으로 바라보길 권하고 싶다. 진화와 적자생존이 알려주는 중요한 점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우리가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 생물학적 혹은 사회적 진화의 결과물이며, 그것이 우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인간 정치에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이 우리 전체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 아닐까. 현대 정치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다만 어떤 방향으로든 인류 전체의 번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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