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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어머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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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리빙트렌드 댓글 0건 작성일 21-07-0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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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어머님께, 

2020년 11월 30일

밤새 뒤척이다 문득 잠이 깨었습니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전화기를 켜 보니, 전화기의 메세지창이 불이 났더군요. 

큰 누님, 작은 누님, 동생이 2시간 전부터 걸어온 수십통의 전화 기록이 보였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텍사스 달라스는 새벽시간이고 가족들이 있는 한국은 이른 저녁 시간, 순간 덜컥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동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동생의 한마디 “30분 전에 어머니가 좋은 곳으로 떠나셨어.”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를 수십 통 했는데 왜 받지 않았냐’고 저를 책망하는 누님들의 목소리와 가족들의 흐느끼는 소리들이 뒤섞여서 제귀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전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 하필이면 오늘 새벽에 전화기 소리가 꺼져 있었을까? ‘30분만 일찍 일어났더라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자책감이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전화를 끊고서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집사람이 거실로 나왔고 그제서야 제 눈에서는  눈물방울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2020년 8월에 어머니는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도 많이 울었습니다. 당장에라도 한국에 가서 어머님을 뵙고 싶었지만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의 교육, 하고 있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코로나로 인한 한국 입국시 2주간의 격리, 다녀와서 이곳 직장에서 또 10일간의 격리 과정을 생각할 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당신은 한평생을 온몸이 부서져라 들판에서 일을 하셨지요. 새벽5시도 되기 전에 이미 밭으로 나가서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집에 오셨고, 자식들에게 밥을 해 먹인 후에 다시 마당에서 밤 늦게까지 일을 하셨더랬죠. 두분 부모님께서 이렇게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지만 농사에서 나오는 수입은 뻔했고 교육비, 생활비등으로 인해 집안의 빚은 늘어만 가게 됐습니다. 이런 와중에 아버지께서 1994년, 57살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고, 이제 남아 있는 집안의 빚은 오롯이 어머님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빚을 갚기 위해 어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대기중인 트럭을 타고, 3시간 거리의 다른 군에 있는 골프장에 가서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 풀을 뽑기도 하셨지요.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밤 10시가 훌쩍 넘었고, 피곤한 몸으로 집안 일을 하시고 잠깐 눈을 붙이시면 금새 다시 새벽이 왔고, 그러면 또 다시 트럭을 타고 인접한 군으로 가셔서 잔디밭 풀을 뽑으셨습니다. 이런 와중에 어머니께서는 일을 너무 많이 하셔서 무지외반증이라는 발가락이 심하게 뒤틀리는 병을 앓게 되셨습니다. 한발한발 내딛는 걸음걸이조차도 너무 고통스러우셨을 터인데도 일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자식들이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지만 자식들이 당신의 병간호를 위해 고생할까봐, 또 자식들이 번 돈을 당신의 치료를 위해 쓸 수 없다는 생각에 한사코 마다하셨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한평생 근검절약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어머님이라고 왜 동네 사람 다 가는 여행 안 가고 싶으셨겠습니까? 어머니라고 왜 좋은 옷 입고 싶지 않으셨겠습니까? 어머니라고 왜 비싸고 맛있는 음식 안 드시고 싶으셨겠습니까?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이 모든 것을 마다하시고 한푼이라도 더 벌어서 남아 있는 빚을 갚으셨고 손주들이 오면 당신 호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넣어두었던 쌈짓돈을 아낌없이 꺼내 놓으셨죠.

몇년 전 어머니께서 누님들에게 하신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께서 한달에 한번씩 읍내시장에 가시면, 터미널 옆에 있는 과일 가게를 지나가셨다고 합니다. 가게 안에 있는 여러 과일들 중에서 어머니께서는 노란색 바나나가 그리도 드시고 싶으셨다죠. 하지만 한번도 바나나를 사서 드셔 보신 적이 없는 어머니는 바나나가 아주 비쌀 것이라는 생각에 그 후로 오랫동안 그냥 매번 쳐다만 보셨다고 합니다. 바나나 살 돈이면 우리 자식들 한푼이라도 더 보태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바라보기를 몇 년, 어느날 가게 주인에게 바나나 한 송이를 달라고 하시면서 만원짜리 지폐를  건네 주시고 얼른 나오셨다죠. 가게 주인은 “할머니” 하고 불렀고, 바나나를 너무도 먹고 싶었던 어머니는 행여 당신이 돈을 너무 적게 줘서 가게 주인이 따라온 줄 알고 바들바들 떠셨다고 합니다. 한참을  따라온 가게 주인이 어머니가 내신 돈이 너무 많다고 했을 때에도 어머니는 믿지 못하시고, 혹시 당신이 도둑질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에, 가게 주인이 당신을 경찰서에 데리고 갈 거라는 생각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셨다고 합니다.  

 

사랑하고 보고싶은 어머니,

당신께서는 이역만리에 있는 아들이 걱정할까봐 당신이 아프신 것을 끝까지 숨기고자 하셨습니다. 누님들과의 꾸준한 전화 통화로 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께서는 제가 어머니가 편찮으신 것을 모를거라 생각하셨죠. 그래서 매일 전화를 드릴 때마다 동네 경로당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놀고 있다고 하셨죠. 돌아가시기 4일 전에 드린 전화에서도, 이미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데도, 동네 어르신들과 잘 놀고 있다고 하시면서 저를 안심시키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요?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하지만 당신의 욕심 때문에 이역만리에 있는 자식을 오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저를 안심시키시려고 하신 것이죠.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서 하던 일을 급히 마무리하고 영사관에서 자가격리 면제서를 발급받아  급하게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찾아 뵙지 못한 죄스러움에 가슴을 치면서 당신이 마지막 가시는 길은 반드시 함께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후에 해외 입국자들에 대한 코로나 검사로 인해 결국은 어머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크나큰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너무도 그립고 너무도 보고싶은 어머니,

당신이 떠나가신 고향의 빈집에서 홀로 자가격리를 하면서 어머니가 남기신 흔적들을 하나씩 찾아 보았습니다. 미국 사는 아들네가 오면 해 주시려고, 냉장고 가득히 아들네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가득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들네가 와서 미국 갈 때 챙겨주시려고 손수 농사 지으신 콩, 찹쌀, 참기름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병원에 계시면서 누님들에게 올해 당신이 직접하지 못하는 김장 김치를 준비해서 반드시 미국 사는 작은 아들네에게 보내 주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다죠. 서랍을 열어 보니 어머니께서는 벌써 오래 전부터 당신이 떠나는 준비를 많이 해 놓으셨더군요. 유언장에 형제들 간 우애하며 살 것을 강조하셨고 특히 누님들에게 미국 사는 아들네가 한국에 나오게 되면 누님들이 당신처럼은 못해주더라도 저희가 서운하지 않게 잘해주어야 한다는 말을 부탁한다는 말을 몇번이나 써 놓으셨더군요. 또한 아프신 몸으로 힘들게 버신 돈을 저희 5남매 부부들 건강검진하라고 일일이 봉투에 넣어서 자식들 이름을 써 놓으셨더군요. 어머니의 하해와 같은 사랑을 어찌 저희가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사랑하고,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님의 유언을 받들어 형제들 간 우애하며 살겠습니다. 또한 어머니께서 하늘나라에서 걱정하시지 않도록 저희도 미국에서 열심히 잘 살겠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시지 말고 아버지랑 행복하게 잘 사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만일 나중에 아주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사실은 작은 아들 너무도 보고 싶었다고, 제 손을 꼭 잡아주시고 저를 꼭 안아 주세요.

어머님의 아들이어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다음 생애에도 어머님의 아들로 태어나서, 그 때는 못다한 효도를 다 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님이 떠나신후 처음 맞이하는 어버이날이 다가오니 어머니가 더욱 더 사무치고 그립습니다. 

오늘 밤에 제 꿈속에 찾아와 주신다면 단 한번이라도 어머님의 손도 잡아보고, 얼굴도 만져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2021년 4월

작은 아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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