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이소離巢, 큰아이가 둥지를 떠났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조회 4,815회 작성일 21-05-21 09:30

본문

언제부턴가 뒤란에서 시끄럽게 들려오던 새 소리가 멈췄다.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나간 모양이다. 이소離巢,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난다는 말이다. 

시간이 되면 떠나가는 것, 자연계에서는 흐르는 시간과 같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렇듯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자식이 부모를 떠나는 것 또한 성장과 발전을 위한 자연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이리 슬픈 걸까. 시끄럽게 울던 어린 새가 이소離巢를 해서 착지한 곳이 바로 내 안인가 보다. 

 

아침 일찍 이삿짐 차에 짐을 실어 보내고 늦은 출근을 했다. 허둥지둥, 종일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내 안의 등이 다 꺼진 듯 아득하기만 했다. 심지마저 다 타버린 것 같다. 삼십일 년을 무사히 잘 키워 짝을 지어 살림을 내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인데 왜 이리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급하게 흐르던 시간이 갑자기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을 슬프게 바라보면서 이 시간도 흔적으로 남으리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짐 풀어 정리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아 일 마치고 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대충 정리를 하고 씻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마트에 들러 김치와 쌀을 사서 나오는데 아이들이 마중 나왔다. 이사하는 날은 자장면을 먹어야 제격이라며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저녁을 때우고 이사한 집으로 향했다. “아! 여기가 이제부터 우리 아이가 살아갈 집이구나!” 여기저기 살펴보며 “좋다! 좋다!”를 연신 기분 좋게 쏟아놓고 서성대는 아이가 애처로워 일찍 쉬라고 하고 일어섰다. 지난 며칠 동안 마지막 시험을 보느라 눈 밑 다크써클이 턱까지 내려왔던데 거기다 짐까지 꾸렸으니 아이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위아래 층을 오르내리며 짐을 끌어 내리고 다시 새 둥지로 끌어 올리느라 녹초가 되었을 텐데 싱글벙글 마냥 좋은가 보다. 이제부터는 내 아들만이 아니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 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는데 아이가 달려와 꼭 안아주었다. “엄마, 사랑해! 잘 살게.” “그래, 우리 아들 잘 살아!” 하고 등을 토닥여 주고 돌아오는 길 내내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삶의 무게를 다 받아내야 할 등. 그 등이 휘도록 힘겹게 살아갈 모습을 생각하니 안쓰러워 또 울었다. 가슴 한 쪽을 뚝 떼어놓고 왔으니 아프고 허전해서 어찌 살아 갈까. 이대로 살아지기는 할까. 

 

불 꺼진 아이의 빈방에 불을 켰다. 아직은 아이의 흔적으로 가득 차 있다. 열두 살부터 서른한 살까지 십구 년 동안 아이를 품고 있었던 방. 하루아침에 주인을 잃은 방은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하다. 방은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주인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아이의 호흡, 숨을 다 받아낸 방.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잘 키워낸 방.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을 방. 마치 인큐베이터처럼 이 방에서 아이는 꿈을 꾸었고, 그 꿈에 색을 입히고 날개를 달았겠지. 기쁨도 알게 되었을 것이고 슬픔으로 방안을 흠뻑 적시기도 했겠지. 그 모든 것으로 가득 찼던 방은 서서히 아이의 체온을 내려놓게 되겠지. 

 

분가를 시키려면 짐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분가를 시켜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원래 짝사랑에는 마침표가 없다고 한다.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 것이 자식에 대한 엄마의 짝사랑이 아니던가. 내 허락도 없이 엄마 마음대로 나를 낳아 딸로 만들었으니 죽을 때까지 그 빚을 다 갚지 못하고 돌아가신 게 분명하다. 힘들고 아플 때마다 어찌 알고 기어이 꿈속까지 찾아오시는지 엄마만 보아도 알겠다. 돌아가서도 분가를 시키지 못하고 마음 졸이시는가 보다. 부모 자식으로 만난 인연이기에 비록 몸은 이소離巢를 했지만 마음의 집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기는 한 건지 의문이 생긴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서툴렀다. 사랑만 해도 그렇다. 엄마라는 명분으로 내 방식대로 한 사랑은 설익은 것이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서.”라고  얼버무리기에는 30년은 너무 긴 세월이다. 생각만 해도 부끄럽고 부끄럽다. 나의 자궁, 내 안의 궁전에서 키워 세상에 내놓았다고 유세는 또 얼마나 떨었던가. 엄마의 말이라고, 내 말이 다 옳다고 억지는 또 얼마나 부렸을까.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아무렇지 않게 했던 발칙한 말과 행동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치부책이 있다면 가장자리도 빈 틈도 없이 꼼꼼히 적혀 먹빛 바다처럼 깜깜할 것이다. 내가 다 벌여놓은 일이니, 수습도 내 몫인데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래저래 내 마음은 먹빛 바다 속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다. 서툴고 설익은 사랑이었지만, 진심을 다한 진정한 사랑이었다.

 

밤새 봄비만 내린 것이 아니었나 보다. 출근하려고 준비를 하다가 거울을 보고 그만 놀라고 말았다. 퉁퉁 부은 눈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른쪽 눈에 핏줄이 터진 듯 붉은 노을이 내려앉아 있었다. 얼마 전부터 나는 아침에 일어나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요즘 내가 즐겨 입는 옷은 쓸쓸이네”로 시작되는 문정희 시인의 “쓸쓸”이란 시를 자주 떠올린다. 요즘 내가 즐겨 입는 옷은 슬픔이다. 

 

방을 들여다본다

네가 없다

 

불의 심지는 이미 그 어디론가 옮겨졌고

방의 소리는 아득하다

아주 사라진 것처럼

 

싹을 틔우던 

숨소리를 더듬는다는 것은

내 안의 빈자리를 더 키워내는

네 이름이 누적漏籍되고만 불 꺼진 방을 보는 것

눈만 더 시려 울 뿐이다

 

나는 빈방을 들어선다

아니

한 가슴 가득 품는 것이다

차라리

 

김미희, (빈방) 전문



김미희 시인 / 수필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하루 중에서 주부들의 가장 큰 고민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한 식사 준비일 것입니다.좋은 재료를 장을 보고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지만 가끔은 철 없는 남편과 철 없는 아이들이 음식 타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반대…
    리빙 2021-06-04 
    미국 주택가격이 부족한 공급에 수요는 치솟으며 15년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무섭게 오르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S&P 코어로직 케이스쉴러 주택 가격지수에 따르면 4월 미국 주택가격은 작년과 비교해 13.2% 상승했다. 이것은 지난 3월 2005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부동산 2021-06-04 
    이안이 오늘 중요한 투자 설명회를 앞두고 아침부터 바쁘게 출근준비를 한다. 사만다는 이안에게 오늘 미팅이 끝나면 함께 오하이오 주에 가서 엄마의 재혼식을 축하해주고 가족들에게 이안을 선보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안은 올해는 힘들다고 거절하면서 내년에 우리 결혼식 …
    문학 2021-06-04 
    휴람 의료네트워크와 제휴한 ‘세란병원’ 이번 주 휴람 의료정보에서는 잘못하면 2차 사고를 야기시킬 수 있는 노년층의 어지럼증에 대해서 휴람 의료네트워크 세란병원 박지현 진료부원장의 도움을 받아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 어지럼증으로 악화된 균형장애,   낙상 등 2차…
    리빙 2021-05-28 
    지난주 미국에서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고국 정치권의 표현이 극과극을 달리는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빈 수레와 외교참사 등 원색적 표현을 동원해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깎아내렸다.특히 기업들이 44조원을 투자하고도 얻어낸 구체적 성과는 대한민국 국군 55만명에 대한…
    회계 2021-05-28 
    [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소명: 궁극적인 존재 이유’로 인생의 목적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는 저자의 절묘한 낚싯바늘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나 자신도 청년기 때 왜 살아야 하나? 누굴 위해서 무슨 이유로 살아야 할지 …
    문학 2021-05-28 
    오늘은 야식에서 둘째 가라면 서럽다는 ‘족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족발은 돼지의 다리를 간장을 주 재료로 한 양념국물에 삶은 뒤 썰어 내는 음식으로 흔히 돼지족발을 ‘족발’이라고 부릅니다.족발은 한자 ‘족(足)’과 ‘발’이 합쳐진 ‘족발’ 발 또는 다리를 뜻하는 겹…
    문학 2021-05-28 
    [ 부동산 ] 에드워드 최 부동산 재테크   바이든 행정부의 잇단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코로나19 백신 보급에 따른 빠른 경제회복으로 인한 급격한 인플레이션 우려가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특히 일반 시민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식료품, 가전 등의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부동산 2021-05-28 
    시대가 변하면서 개인의 뚜렷한 개성과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외모가 자기관리의 기준이 되는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성형수술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코는 얼굴의 중심으로 눈, 입, 얼굴형 등과의 조화를 통해 첫인상을 좌우하는 기관으로 …
    리빙 2021-05-21 
    온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 중턱의 조그만 집, 이혼한 제니가 10살 짜리 딸과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비 내리는 토요일, 동생인 말리가 방문했습니다. 유방암 치료를 받고 있으면서, 말리는 할 수만 있으면 언니와 시간을 많이 보내려 했습니다.항암치료를 받으면…
    교육 2021-05-21 
    아침 저녁으로 신선한 바람을 느끼는 봄 날씨를 즐길 수 있는 시점이라 식사 후에 동네를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집보험 클레임은 계절이 바뀌는 봄철이나 가을에 더 심각한 편이다. 몇 년 전에는 갑작스런 폭풍우로 지붕이 반쯤 날아간 집, 담장이 무너진 집…
    리빙 2021-05-21 
    지난 월요일(5월 17일)은 겨울 한파로 피해가 컸던 텍사스, 오클라호마, 루이지아나를 제외한 47개 주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연방 소득세 세금보고 마감일이었다.   텍사스, 오클라호마, 루이지아나에 거주하거나 거주하지는 않더러도 3개 주에 비즈니스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
    회계 2021-05-21 
    언제부턴가 뒤란에서 시끄럽게 들려오던 새 소리가 멈췄다.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나간 모양이다. 이소離巢,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난다는 말이다. 시간이 되면 떠나가는 것, 자연계에서는 흐르는 시간과 같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렇듯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자식이 부모를 떠나는 것…
    문학 2021-05-21 
    안녕하세요! 가정의 달 5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추운 날씨는 지나간 듯 보여지고 앞으로 다가올 더운 여름을 맞이하는 기간이 왔습니다.한국은 이렇게 선선한 4~5월은 우리가 즐겨 먹는 생선인 ‘굴비’ 농사가 한창입니다. 국가를 막론하고 예전과 같이 ‘조기’ 및 바…
    문학 2021-05-21 
    오는 사람들로 인해 기존 주택 구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올해 첫 3개월 동안에도 약 30%의 구매자들은 타주에서 이주해오는 사람들로, 구매자의 3명 중 1명 꼴이었다. 특히 달라스와 어스틴 지역은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뉴욕, 시카고를 떠나 이…
    부동산 2021-05-21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