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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과/학/칼/럼]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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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35회 작성일 25-04-3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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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

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

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

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


공학 시스템을 이해하는 기초적인 접근법은 시스템에 입력을 주었을 때 어떤 출력이 나오는지 보는 것이다. 예컨대 자동차의 가속 페달을 밟는 것은 입력이 되고, 질주하는 자동차의 속도는 출력에 해당한다. 당연하게도 입력이 바뀌면 출력도 달라진다. 

시스템의 특성을 담은 핵심 정보를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알아낼 방법은 뭘까? 공학이 밝혀낸 정답은 바로 충격(impulse)을 시스템에 입력으로 주는 것이다. 그에 따른 출력 정보에는 해당 시스템의 고유 정보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이 출력 정보를 공학에서는 충격 응답 또는 IR (impulse response)이라고 부른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단단한 상자 하나를 생각해보자. 수평 방향으로 이 상자를 망치로 때리면 같은 방향으로 상자가 움직일 것이다. 망치로 치는 것은 충격 입력을 주는 것이고, 상자가 가지는 속도가 충격 응답이 된다.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이 충격 응답의 크기는 충격의 크기를 상자 질량으로 나눈 값과 같다. 상자의 고유한 성질인 질량 정보가 충격 응답에 녹아있는 것이다. 


전자 기타에 관련된 장비 중에 IR 이펙터라는 것이 있다. 전자 기타 시스템은 기타 줄의 떨리는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꾼 뒤 이펙터라는 기기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신호를 변환하고, 이 변환된 신호를 증폭하여 스피커로 보내어 소리를 듣게 해준다. 전기 신호를 인공적으로 조작하는 다양한 이펙터와 달리 IR 이펙터는 특정 사운드 시스템을 모방할 수 있게 해준다. 


전문가들을 위한 음향 기기 시스템은 어떤 부품을 쓰고 어떻게 조합하는지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특정 브랜드의 어떤 유명하고 비싼 앰프를 나의 전자 기타에 연결하고 싶을 때, 그 앰프를 구입하는 것 이외의 방법이 있을까?


앰프라는 것도 들어오는 신호 입력을 고유의 방식으로 증폭하여 출력을 만드는 시스템이다. 이 앰프의 충격 응답을 얻어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전자 시스템에도 충격 입력에 해당하는 충격 시그널이 있고, 이를 이용하면 앰프의 충격 응답을 얻을 수 있다. 이 충격 응답은 일종의 소리인데, 이 소리 자체는 아름답지 않지만, 앰프의 고유 성질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 응답 정보를 IR 이펙터에 넣으면 이 이펙터는 우리가 가지고 싶었던 앰프의 역할을 해준다. 마치 다른 사람의 가면을 쓰고 그 사람 행세를 하는 것 같다고 할까. 


대상 시스템을 사람으로 바꾸어 보자. 인간에게 충격 입력과 그 응답은 무엇일까?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대비할 틈도 없이 일어날 때가 있다. 경제적 어려움일 수도 있고 물리적 위험일 수도 있다. 우리 두뇌에는 이런 상황에 빨리 반응하기 위한 부분이 있다. 바로 편도체다.


편도체는 감정을 조절하고, 공포에 대한 학습과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신체가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것을 돕는 부위다. 대뇌피질이 관여하기 전에 신속히 반응하여 위험을 피해야 할지 부딪혀봐야 할지 판단한다. 대뇌피질의 앞부분을 차지하는 전두엽은 기억력, 사고력, 추리, 계획, 운동, 문제 해결 등 고등 정신 작용을 관장하는데, 이들은 주로 긴 시간 훈련과 학습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이에 반해 편도체는 빠른 시간안에 본능에 가까운 반응을 유도한다. 


생물학적으로  편도체는 우리가 위험에서 벗어나서 생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따라서 편도체는 우리가 사회적으로 성숙한 행동이나 판단을 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회피하거나, 화를 내거나 공황 장애에 빠지는 등의 반응이 인간의 충격 응답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서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거나, 성직자처럼 명상, 기도 등을 통해 훈련된 사람들은 일반적이 경우보다 편도체의 과민 반응 빈도가 낮다고 한다. 학습을 통해 인간 본연의 특성을 더 안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의 영웅적 기질이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충격 입력에 해당하는 난세를 만나서 드러나게 되는 상황이다. 또,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도 있다. 친구가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것도 일종의 충격 입력이 된다. 친구의 어려운 상황 때문에 나도 피해를 보지 않을까, 내가 도와주다가 손해를 입지 않을까 등의 걱정이 앞설 수 있다. 이때의 반응이 바로 충격 반응이며 사람의 됨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사회 시스템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특히 이 충격 반응이 매우 흥미로운 나라다. 도로를 달리던 배달 트럭에서 물건이 도로에 잔뜩 떨어져 운전자도 당황하고 도로도 막히는 일이 카메라에 찍혀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적이 있다. 도로 근처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그 물건들을 줍고 청소하기 시작했다.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기에는 급박한 상황, 즉 충격 입력이 왔을 때, 한국인은 협력하고 연대한다. 1990년대 후반, 한국을 덮친 이른바 IMF 사태 때도 한국인은 금 모으기라는 충격 반응을 보였다. 코로나 시국에는 전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질서 정연하게 난국을 헤쳐나갔다.

 

정치, 사회적으로 편 가르기도 심해지고, 경제적으로 양극화도 강화된다며 걱정하지만, 한국인의 충격 반응으로 보면, 우리는 꽤 성숙하고 멋진 사람들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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