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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다시, 청춘을 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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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159회 작성일 25-10-3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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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 (시인, 수필가)


13년 만에 부활한 MBC 대학가요제가 지난 3일 부산 국립한국해양대학교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본방 사수하겠다는 생각으로 26일 10시 50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1980년대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었던 대학가요제가 시청률 저조라는 이유로 폐지되었을 때,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슈퍼스타K’ ‘싱어게인’ ‘쇼미더머니’와 같은 음악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익숙하겠지만, 7080세대인 나에겐 대학가요제와 강변 가요제가 더 친근하다. 그 프로그램은 가수가 되려는 젊은이들에게 등용문 역할을 해주었다. 두 가요제에서 탄생한 명곡들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좋다. 나와 같은 세대라면 아마도 그 노래를 부르며 그 시절을 추억했을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학가요제 노래는 2회에 출연했던 심민경(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다. 발라드와 록, 통기타 음악, 학교 밴드를 결성해 나왔던 당시 학생들과 달리 독창적이고 내공 있는 창법으로 노래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토록 절절하고 고급스러운 트로트라니. 그날 이후, 그녀의 팬이 되었고 동시대에 사는 것을 감사하며 나이가 들어가는 중이다.


  대학가요제가 열린 날 폭우가 쏟아졌다. 조명에 투영된 빗줄기가 얼마나 굵던지, 노천에서 우비를 입고 핸드폰을 흔들며 호응하는 방청객들의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폭우도 청춘의 열기를 식히진 못했다. 13년 만에 돌아온 MBC 대학가요제의 부제는 ‘청춘을 켜다’였다. 오랜만에 다시 켜진 불빛 같은 이름이었다. 1977년 서울대 샌드페블즈가 ‘나 어떡해’로 대상을 받던 그날의 흑백 화면이 오프닝으로 나오자, 세월 뒤편에서 밀려온 감동이 가슴을 뛰게 했다.


  총 11팀이 참가해 각자 준비한 음악으로 열연을 펼쳤다. 영어 가사와 랩을 섞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긴 하나, 대학생만의 독창적인 음악과 음색을 보여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다. 초대 가수로는 이무진, 우즈, 루시 등이 출연했다. 그들이 부른 대학가요제 명곡들은 추억의 시간을 클릭하듯,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었다. 프로의 무대는 아마추어 대학생의 무대를 응원하며 힘을 실어주었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가수들의 실력이 워낙 출중하다 보니 대학생들의 무대가 잠시 묻히기도 했지만, 학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허물이 덮였다. 진행자들도 열심히 했지만, 임백천이나 배철수가 했다면 일당백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루시의 공연 중 고 신해철 11주기를 맞아 딸 신하연과 아들 신동원이 출연하여 AI가 복원한 아버지 목소리와 함께 특별 무대를 선보였다. 하연은 “아빠 팬들은 늘 우는 얼굴로 남아 있는데, 이제 슬픈 표정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라고 말해 모두 뭉클하게 만들었다. 


  대상은 경희대 밴드 카덴차의 ‘허기’가 차지했다. 보컬의 음색이 특색있고 안정적이었다. 

  “청춘이란 게 온전치 않아서,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 같다. 결핍과 공허함을 노래에 눌러 담고 싶었다. 그러나 허기의 끝은 희망이다.”라고 말하던 수상소감이 요즘 젊은 세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 짠하게 다가왔다. 

  세월이 흘러도 청춘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조명이 바뀌고, 음악은 달라졌지만, 노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 시절 ‘나 어떡해’가 사랑의 고백이었다면, 오늘의 ‘허기’는 삶의 고백이었다. 그 모든 노래가 결국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청춘은 세대를 건너 하나의 노래가 되었다.


  내게도 대학가요제에 관한 추억이 있다. 1983년, 오디션을 보기 위해 정동 문화체육관 앞 긴 줄에 서서 떨리는 마음을 다잡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가수가 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깜냥도 안됐지만, 세상이 내 노래를 들어줄 거라 믿었다. 곡은 좋았는데 연습이 부족했다. 좀 더 잘 준비해서 나갔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듀엣으로 나갔던 친구가 기타 코드를 두 번이나 까먹고 멈추는 바람에 떨어졌다. 전날 마신 술 탓이라고 했지만, 나름 긴장했을 것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접수증에 붙은 나의 이십 대 사진과 함께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그 친구도 이번 대학가요제를 보았을까, 그날을 기억할까,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삶이 혹여 힘들다 해도 음악이 주는 기쁨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가수는 되지 못했지만, 음악 곁을 떠나진 않았다. 성가대로, 찬양팀 싱어로, 아이들 성가대 선생님으로, 지휘자로, DJ로, 모든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질 때마다 그 시절의 내가 얼굴을 내밀곤 했다. 이젠 음이 흔들리고 호흡이 가빠서 부르는 것보다 듣는 게 편한 나이가 되었지만, 행사에 국가 부를 사람이 없다고 부탁하면 마이크를 잡는다. 내 나름의 애국이다. 


  대학가요제의 부활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불빛이다. 서툰 청춘의 목소리와 완성된 프로의 노래가 한 무대에서 만나 서로의 시대를 밝혀주는 일이다. 청춘은 끝나지 않는다. 다만, 잠시 비를 맞고 있을 뿐이다. 그 비가 그치면 누구나 다시 노래하게 될 것이다. 대학가요제는 경쟁보다 교감이 있다. 음정이 흔들려도, 그 어설픔이 진심으로 다가온다.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기보다 청춘의 노래를 들려주는 자리여서일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실력의 무대라면, 대학가요제는 진심의 무대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일까. 13년 만에 돌아온 대학가요제가 반갑다. 그 무대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는 떨리는 음정 속에서 피어나는 진심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다. 


  그들의 보석 같은 음악이 환히 켜져서 오래도록 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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