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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눈오는 날’ 생각나는 시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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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볏 쭈볏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불고 춥고 어둡다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 -안도현의 <우리가 눈발이라면> 전문-
1월 마지막 주 추적추적 진눈깨비와 눈이 번갈아 가며 내리더니, 온 텍사스가 꽝꽝 겨울왕국이 되었다. 비교적 겨울이 따뜻한 텍사스는 눈이 왔다 하면 진눈깨비처럼 내리는 경우가 많다. 펄펄 함박눈처럼, 아님 소복소복 내리면 좋을텐데, 산이 없는 탓인지 꼭 진눈깨비처럼 내리다 영하가 되면 빙판 천국이 된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이왕 눈이 내릴 바에는 찌질하게 눈도 비도 아닌 진눈깨비처럼 말고, 함박눈처럼 내리자고 한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에게는 편지가 되고, 아픈 사람들 상처를 낫게 해주는 함박눈 같은 존재가 되자고 한다. 시인은 은유를 통해, 눈치보며, 주춤거리면서,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진눈깨비 같은 사람 말고, 포근하고, 인정 많은 함박눈 같은 사람이 되자고 한다. 나 역시 함박눈을 보면, 오래전 고향집 지붕에, 장독대 위에 소복하게 눈이 쌓여있던 정겨운 풍경이 생각난다. 그런 날 이웃들이 놀러 오면 엄마는 장독대 위 눈을 치우고 살얼음이 낀 톡 하고 시원한 맛이 나는 동치미와 찐 고구마를 내와, 눈이 다시 쌓이는 줄도 모르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셨다.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최승호의 <대설주의보> 중에서-
며칠째 눈이 오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자 제일 먼저 걱정되었던 건 새들이었다. 우리 집 주변엔 레드 카디널과 머킹버드가 많은데, 어쩐 일인지 아침이 되어도 이 녀석들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 사둔 새밥이 있어서, 앞마당과 뒷마당에 듬뿍 담아 두었더니, 새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던지 그 많던 새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끔은 사슴이 와서 테이블 위에 놔둔 새밥을 몽땅 먹어 버리기도 하는데, 암튼 그냥 눈이 아닌 한파가 몰려오면, 짐승들은 어떻게 지내는지가 가끔 궁금하다. 하긴 영하 3,40도에도 생존하는 북극곰이나 순록을 보면 짐승의 생존력은 놀라운데, 그래도 겨울은 들판의 짐승들에게 혹독한 계절일 것이다. 가끔 동네로 먹을 것을 찾아 내려오는 코요테나 사슴 무리를 자주 보게 되는 것도 겨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눈보라의 군단’ ‘백색의 계엄령’처럼 전시에서나 사용하는 언어를 시 속에 집어넣었다. 지난해 실제로 있었던 고국의 ‘계엄령’을 떠올리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 세계는 하루하루 ‘대설주의보’스런 뉴스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 인공의 ‘대설주의보’를 끝내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마지막으로 윤동주 시인의 동시 <눈>을 감상하며 끝내려한다. 1936년에 윤동주시인이 쓴 이 시는 시인의 순수하고 맑은 동심이 그대로 묻어난, 어른들이 읽어도 너무 마음이 포근해지는 시이다. 우리가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히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 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윤동주 <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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