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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 최영준 "'선풍기 신' 그냥 감정에 충실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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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와줄 수밖에 없겠구나. 딸이잖아요. 아들이면 두드려 패기라도 하겠는데, 내 딸 몸에서 아이가 나와야 하는데…."
tvN 주말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종영을 앞두고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 카페에서 만난 최영준은 극 중 고등학생 딸의 임신을 받아들이게 된 순간 아버지 방호식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최영준이 분한 방호식은 유순한 듯 보이지만 과거 주식으로, 사업으로, 도박으로 돈을 날리는 등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도망간 아내 몫까지 다해 딸 영주(노윤서 분)를 홀로 키우며 우직하게 살아간다.
최영준은 "아버지가 홀로 딸을 키우는 건 아들을 키우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을 것"이라며 방호식을 안쓰러워했다.
영주가 생리불순이라고 하자 방호식이 소고기를 사 와서는 잘 먹어야 한다고 쭈뼛쭈뼛 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자기 딴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는데 그게 참 이치에 맞는 것도 아니고 어수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영주의 임신 소식을 처음 알게 된 순간 방호식과 정인권(박지환)의 반응에 차이가 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정인권은 영주의 남자친구이자 아기 아빠가 될 정현(배현성)의 아버지다.
정인권은 아들에게 냅다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하지만 방호식은 영주를 차마 때리지 못하고 밥상을 엎고 애꿎은 선풍기를 발로 걷어차는 게 전부다.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뺀 이 '선풍기 신'은 억장이 무너지는 아버지의 심정을 고스란히 전한 명장면으로 꼽힌다.
최영준은 "화를 낼 일은 맞는데 어디다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고, 임신이라고는 하는데 그 사실이 진짜라고는 머릿속으로 인지가 안 되는 상태였을 것"이라며 "그러다 영주의 배를 보고 털썩 주저앉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최영준은 미혼에 아이도 없다. 그런 그가 이런 애끓는 부성애를 표현할 때는 어떤 연기적 계산 없이 감정에 충실했다고 했다.
"아빠의 화내는 방법이 따로 있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감정에 충실했죠. 진짜 아빠처럼 보이려면 감정이 리얼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냥 우는 건 누가 봐도 슬프잖아요. 사람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사실 자체를 잘 인지하지 못하고, 그다음 단계에는 사실을 부정하려 하는 그런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최영준은 호식이에게 영주는 인생의 전부이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이었다고 했다. 드라마 초반에는 호식이가 바다를 바라보면서 "영주가 대학만 가면 자유"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는 "작가님이 왜 딸이 잘됐으면 좋겠냐고 물으셨는데, 답은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호식이를 위한 것이었다"며 "딸은 호식이가 책임져야 할 존재고, 딸이 잘 커야 호식이가 편하다. 부모들이 자식들이 빨리 커서 앞가림하는 나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이 그런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호식이는 딸 하나 책임지고 잘 살았다는 자부심이 있다. 많이 배우지 못했고, 하루하루 힘들게 살면서도 떳떳한 사람"이라며 "억지로 그렇게 산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살아있는 것은 모두 다 행복하라'는 드라마의 슬로건처럼 호식이를 응원했다"고 덧붙였다.
방호식에게 딸 영주만큼 존재감이 큰 인물은 정인권이다.
마주치기만 하면 티격태격 정도가 아니라 죽일 듯이 싸우는 두 사람은 사실 학창 시절 둘도 없는 친구였다.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 호식을 여러 차례 구해준 것도 깡패 시절 정인권이었다. 둘 사이가 틀어진 건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도와달라며 온 호식이에게 정인권이 "딸 앵벌이를 시키니 좋냐"고 한소리를 하면서다.
최영준은 "호식이는 본체 굉장히 나약한 사람이다. 도박에도 빠지고, 인권이에게 무시당한 걸 오래 마음에 갖고 있었던 것만 봐도 그렇다"며 "인권이 한마디에 정신을 차렸다기보다는 그 순간 딸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 이후에 험한 일도 할 수도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영주의 임신으로 다시 엮이게 된 방호식과 정인권은 결국 치고받고 싸우지만, 끝내 나란히 앉아 술잔을 부딪치는 사이가 된다.
최영준은 "결국 호식이와 인권이는 부부처럼 살아갈 것 같다. 미운 게 아니라 꼴 보기 싫은, 그렇지만 안 볼 수 없는 식구 같은 애증의 존재"라며 "사실 박지환 배우와 동갑인데, 현장에서 부부로 불렸다. 누나(이정은)가 둘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놀리기도 했다"고 웃었다.
사실 최영준은 2002년 발라드 그룹 세븐데이즈로 데뷔했다. 이후 뮤지컬에 우연히 캐스팅되면서 연기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조연이지만 존재감 있는 캐릭터들을 맡으며 내공을 쌓아왔다.
최근에는 인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1·2', '빈센조'에서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시청자들한테 눈도장을 찍었고, 현재는 '왜 오수재인가'에서는 사모펀드 대표로 열연하고 있다.
사실 배우로서 큰 욕심은 없었다는 최영준은 "이제는 책임감을 갖고 싶다"며"배역이 커지면서 세세한 걸 보여줘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런 부분을 좀 더 예쁘게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휠체어를 탄 역할로 연극 무대에 섰던 경험을 전하며 "공연을 한 지 한 달이 넘었을 때 실제 휠체어에 타신 분이 공연을 보러 오셨다. 그때 머릿속이 하얘졌고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지 처음부터 다시 공부했다"며 "내가 연기를 잘못하는 바람에 실제 그 일을 하거나,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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