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그럴 때가 있습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1,397회 작성일 23-05-12 11:00

본문

쿵! 힘을 싣고 닫히는 문소리에 막 엉키고 있던 생각의 꼬리가 잘렸습니다. 언제 들어왔는지 소리 없이 들어 온 손님이 피팅 문 닫히는 소리에 본인도 놀란 모양입니다. “미안해요.” 피팅 룸 벽을 울리며 넘어오는 소리. 조금은 흥분으로 고조된 소리입니다. 그 소리에 나는 물구나무섰던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 짧은 호흡을 정리하고 “아뇨, 괜찮아요. 문이 너무 가벼워서 그래요.” 정해둔 문장이라도 읽어 내리듯 서둘러 말을 마쳤습니다. 목소리를 들으니 쉐럴인 것 같은데 탐을 두고 혼자 왔나 봅니다. 아니면, 탐을 차 안에 남겨두고 들어왔거나. 무슨 일일까요. 늘 함께 왔는데요. 급하게 가야 할 데가 있는 걸까요. 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잠깐 많은 생각이 나를 훑고 지나갔습니다. 

 

 언젠가, 그러니까 5~6년은 족히 지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나의 일상은 설움에 절어 잠깐 허튼 생각만 해도 눈물을 흘릴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직후라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날도 딱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슬그머니 나오는 눈물을 훔치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엉엉 소리 내 울고 말았습니다. 그때 탐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이었습니다. 허겁지겁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훔치며 벌게진 눈을 어찌할 줄 몰라 엉성하게 인사를 했더니 깜짝 놀란 탐이 물었습니다. 무슨 일 있느냐고. 아니 아무 일 없고 그냥 엄마 생각이 나서 그런 거라고 얼버무리며 찾으러 온 옷가지들을 건네주고 보냈습니다. 

 

그를 보내고 나서 화장실로 들어가 울음 끝을 정리하고 있는데 다시 가게 문 열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헬로우!” 하며 달려 나오니 탐이 꽃이 담뿍 담긴 화병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그는 화병을 내게 안겨주더니 다정하게 어깨를 안아주며 토닥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다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힘내라고. 괜찮다고. 살다 보면 다 살아진다고. 다 지나간다고. 

그랬던 그가 몇 년 전부터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늘 씩씩하고 점잖았던 그가 몇 번의 수술과 키모 치료를 거치면서 몸도 마음도 기운을 잃었습니다. 이제는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운전을 할 수 없으니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어서 늘 아내인 쉐럴과 함께 움직입니다. 그는 그때 일이 아직도 마음에 남았는지 오래된 친구처럼 올 때마다 꼼꼼히 나의 안부를 살핍니다.   

 

이만큼 살다 보니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다양한 모습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마음에 쓰이는 일은 장애 아이를 기르는 부모를 만날 때입니다. 평생을, 늘 옆에 끼고 돌보면서 함께 늙어가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그들이 오면 나는 슬프거나 힘든 내색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로 주절주절 떠들어 댑니다. 

 

그런데 오늘은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쉐럴 혼자 들어 온 것입니다. 쉐럴이 냈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문소리를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하야 하나.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최상이지 않을까. 그래, 기분 좋게 내 할일 만 하자. 괜히 위로한답시고 주절대는 것보다 낫겠지. 그러면 그녀가 조금은 평온하게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표현의 능력 부족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최상의 비책이라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마르크 드 스메트의 『 침묵 예찬 』의 첫 페이지에는 수피교의 계율이 적혀 있지요 “그대가 입 밖에 내는 말이 침묵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니거든 말을 하지 말라.”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렇지요. 그럴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나 자신이 무기라도 된 것처럼 모든 것에 무게가 실릴 때가 있습니다. 열어 놓은 채 살던 문들이 갑자기 벽을 울리며 하나둘 닫히는 순간들이 있지요. 내 호흡은 나를 놓치고 온 우주가 나를 감지하는 듯 나의 무게가 느껴질 때지요. 내 손에 닿는 것마다 마치 살이 붙은 듯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 내고, 그럴 때는 함부로 이름 붙이고 싶은 감정들이 마구 이구동성으로 올라옵니다. 그것은 쪼그라들던 나의 무게가 기를 펴고 싶다는 신호이지요. 바로 온몸으로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다는 나도 모르는 내가 전해주는 전언이지요. 표현하지 않아도 한 번쯤은 세상의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 주길 바라는 순간입니다. 

 

그럴 때는 무거운 나를 덜어내는 연습을 합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이불 속에 숨어 잠으로 뭉개 버리려 억지 잠은 자지 않습니다. 예전처럼 시동을 켜고 아무 데나 쏘다니지도 않습니다. 달빛을 바르고 앉아 독주는 더더욱 하지 않습니다. 일하면서 주문을 외듯 나와 대화합니다. 나에게 고백하고 나의 말을 들어줍니다. 제 그림자를 끌어오려면 어둠을 툭툭 털고 일어서야 하겠지요. 

 

           항해4    / 김미희

 

오늘도 그는

반백이 되도록 종착지를 더듬고 있는 아들의 손을

풍선 줄이라도 잡은 듯 꼭 쥐고 가게 문을 밀고 들어서다

부러 한 옥타브 올린 내 안부 묻는 소리에 짐짓

휘둥그런 눈에 어깨를 움찔 한 발짝 물렀다가 들어서며 웃는다


시간은 훨씬 앞질러 달렸고

완성되지 않은 목소리에 그만

먼 행성을 떠도는 생각을 버린 채


몸만 키웠던

밤꽃 향 내리던 그 밤을 어찌 원망할 수 있었으랴


신발 문수가 늘어날 때마다

늦게 오는 사람도 있다고

첫울음에 세상의 모든 귀가 열리던 그 환희의 순간을 기억해

깊어져 가는 심장을 다독이며 울음주머니를 비워왔을 그


자신을 알리는 우는 법을 가르치다 속살이 씹혀

찌그러진 아픈 웃음 그것도 주문되기에 충분하다고

그래도 그만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아직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니

반짝이는 법을 알지 못해도 별은 별인 것이라고 따졌을 터


너무 늦게 도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마른 입술을 깨물어 다물며 숨죽여 올리던 기도는 이제

함께 돌아갈 우주선 한 귀퉁이를 마련해

어딘가에서 행로를 트고 있을 그들의 행성을 향해

풍선 줄은 야무지게도 둘을 묶어 교신을 트고 있다


김미희

 

시인 / 수필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누군가 당신에게 말한다. ‘자기야 봤어? 어젯밤에 걸린 11월의 거대한 보름달을… 이는 누군가가 맑고 투명한 수채화로 그림을 그려 저 나뭇가지 사이에 걸어 놓은 것 같지 않아? 사랑의 머무는 언덕에 수채화 붓을 들어 거기에 그리움이라는 느낌표를 찍고 싶어. 그리고 우리…
    문화 2023-11-24 
    요사이 차세대들에게 인터넷 게임의 의미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보인다.리그오브레전드 (LoL ·롤) 월드 챔피언십 (월즈·롤드컵)으로 지칭되는 롤드컵이 지난주 우리 고국에서 열렸다고 한다.지난 19일 서울에 위치한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전에서 우리…
    세무회계 2023-11-24 
    얼마 전 유튜브 뉴스로 서울에서 살고 있는 야생 동물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영상의 제목은 「서울이 야생동물의 낙원? 멸종위기종만 41종 확인」이었다. 제목만 보고는 야생 동물이 그곳에서 산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서울은 고층 아파트와 자동차로 가득한…
    문화 2023-11-24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겨울철 인기 간식인 찐빵과 붕어빵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찐빵은 그 유래를 중국의 만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속설에 따르면 1341년 중국 원나라로 유학을 갔던 일본의 승려가 임정인이라는 중국인과 함께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
    문화 2023-11-24 
    기원전 4세기에 흥했던 로마제국의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발전은 ‘아피아 도로망(Via Appia)’이 출발점이 되었기에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최근, ChatGPT가 폭발적인 관심과 함께 모든 디지털 혁신의 ‘아피아 도로망’으로 인식되…
    부동산 2023-11-24 
    하늘의 먼 정원이 시들어가듯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무심코 멈춰선 곳에 찾아온 11월,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떨어지는 형형색색의 낙엽의 향연을 같이 호흡하며 무심코 걸었던 길가에 드디어 가을이 찾아왔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데 …
    문화 2023-11-17 
    보험제도가 없는 나라는 없지만 미국처럼 보험제도가 잘 발달된 나라도 흔치 않다. 그러므오 미국에 살면서 배우고 알아야 할 것이 많지만, 그 중에 특히 보험은 세금, 융자 등과 더불어 일상생활과 사업에 가장 필수적인 것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험에 대해 간접 혹은 단…
    보험 2023-11-17 
    지난번 칼럼에서 미국의 증여 및 상속세 면제금액이 현재의 일 인당 12.92 Million 달러에서 2026년 1월 1일부터는 6 Million 달러로 하향 조정된다는 기사를 읽고 많은 분들이 문의를 해주셨는데 주된 질문의 내용은 실제 2년 후에는 상속세 면제금액이 하…
    세무회계 2023-11-17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오는 중이었습니다. 흐 흐흥 흐 흐흥~ 흐 흐응 흐 흐응~~. 멕시코 음악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역시 나는 딴따라 기질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넓은 호텔 바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조상 어디쯤엔가 멕시코 종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문화 2023-11-17 
    가을의 아름다운 선율이 세상을 변신시키는 11월 넷째 주, 가을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느낌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느낌’ 이라고 어떤 분이 표현했던 것처럼 가을에 듣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2악장을 들어보자. 쇼팽의 음악처럼 수줍음과 쑥스러움이 이 곡에 표…
    문화 2023-11-10 
    이곳 달라스/포트워스 기반으로 알링턴에 돔 야구장을 홈으로 삼고 있는 텍사스 레인저스가 창단 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맛보았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10월과 11월의 교차점에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월드시리즈(7전 4승제) 5차전에서 애…
    세무회계 2023-11-10 
    오랜만에 지인이 출연하는 방송을 듣기 위해 ‘라디오 코리아’ 앱을 열었다. 처음엔 열심히 찾아 들었는데, 매번 방송 시간에 맞춰 듣는 것도 일이다 보니 점점 일상 뒤로 묻혔다. 그가 전화하지 않았다면 방송 날짜를 옮긴 것도 몰랐을 것이다. 일을 줄이려고 애써 보았지만,…
    문화 2023-11-10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요새 한국의 SNS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그야말로 광풍을 일으키고 있는 탕후루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탕후루는 산사나무 열매(山査子)나 작은 과일 등을 꼬치에 꿴 뒤 설탕과 물엿을 입혀 만드는 중국 과자입니다. 중국의 대표…
    문화 2023-11-10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모든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투자시점 판단이 중요하다. 투자자가 가장 고민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투자 시점과 어떤 자산에 투자를 해야 하고, 투자한 자산의 매도는 언제 할 것이며, 또 다른 자산은 언제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을 아는 것이 투자자…
    부동산 2023-11-10 
    버지니아의 수도 리치먼드의 사람들은 리치먼드가 날씨도 좋고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자랑한다. 멀지 않은 곳에 산이 있고 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고 바다가 두 시간 거리에 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느냐면서 말이다. 하지만 습기가…
    문화 2023-11-03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