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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야생과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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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화 댓글 0건 조회 3,385회 작성일 21-02-1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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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강아지, 토토를 데리고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뒷마당에 알라스카 허스크가 있는 집을 꼭 지나가게 된다. 부스스한 회색 털에 또렷한 갈색 눈동자을 가진 그 개를 보면 언뜻 늑대 같기도 한데, 함께 있는 보더콜리는 지나치게 짖는 반면 이 개는 결코 짖는 법 없이 날렵한 걸음걸이로 팬스 쪽으로 다가와 우리를 지긋이 바라보기만 한다. 토토도 나름 뭔가 통하는 것이 있는지 가끔 그 개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 한참을 머뭇거리는데, 나는 그 개를 볼 때 마다 알라스카 설원에 있어야 할 개가 무더운 텍사스에서 고생하고 있는 것아 안쓰럽기만 하다. 또한 그 개를 볼 때 마다 잭런던의 <야성의 부름> 마지막 한 장면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환한 겨울 밤, 우뚝 솟은 바위 위에서 차가운 밤 공기를 가르며 무언가를 애타게 찾는 듯한 야성의 울부짖음이 그것이다.  

 

코로나사태가 나기 전 알라스카 크루즈를 타고 빙하와 알라스카 도시 몇 군데를 순례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방문했던 도시들이 <야성의 부름>에 나오는 주인공 개 벅이 샌프란시스코 판사집에서 납치되어 시애틀을 거쳐 지나쳤던 타운들이었다. 세인트버나드와 스코틀랜드 세퍼드 믹스견인 벅은 영리하고 근육질이 발달한 대형견이다. 19세기 초 알라스카 유콘 클론다이크에는 이렇게 덩치가 크고 털이 수북하여 동상에 잘 걸리지 않는 대형 썰매견들이 많이 필요했다. 벅은 개장수에게 팔리면서 안락한 문명세계를 벗어나 채찍과 곤봉이 지배하는 야성의 세계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벅은 이내 인간과 공존하며,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주변 썰매견들을 리드하는 리더개가 되면서, 비로소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야성의 소리에 격렬하게 반응한다.

 

19세기 말 유콘 클론다이크에서 금광석이 발견되면서 만들어진 타운인 스케그웨이는 타운이라고는 하지만 걸어서 3블록 정도의 면적인데, 당시 노다지의 꿈을 안고 미국각지와 유럽 캐나다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수 만 명이 넘어 굉장히 붐이 일었던 곳 중 한 곳이다. 그중엔 끝내 금덩어리 하나 만져보지 못하고 영하 70도 혹한의 날씨에 얼어 죽은 사람도 많았고, 추위와 굶주림에 죽은 수천마리 말들의 시체가 유콘계곡을 피로 물들인 적도 있었다한다. 또한 지금의 갱단원 같은 녀석들에게 기껏 캔 금덩어리를 통행세로 다 빼앗긴 경우도 많아 그야말로 탐욕에 눈이 먼 인간들의 무법천지가 도처에서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길을 가다보면 계곡이나 산 중턱에 무명의 묘지들이 많은 것도 다 그 때문이라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미혼모인 플로라 웰먼의 사생아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잭 런던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통조림공장, 굴 양식장 등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일본과 베링 해에서 바다 표범잡이 범선을 타기도 했다. 그런 후 버클리 대학을 한 학기 등록했다 그만두고 1897년 클론 다이크 골드러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원하는 금은 캐지 못했고, 황금에 눈이 뒤집힌 금광 주변사람들의 모습과 흥청거리던 타운을 썰매견 벅과 주인 손턴을 통하여 ‘야성의 부름’이란 소설로 1903년 세상에 내놓았다.   

 

 잭런던은 인간과 야성을 분리하지 않고, 야성은 극복이나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본성의 일부분이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주인공 벅을 통하여, 야생을 문명화시키며 그들이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인간의 편견을 깨우친다. 가끔 사냥개나 양치기견들을 좁은 아파트에 가두어두고 키우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얼마나 답답할 까 싶다. 겨울이면 섭씨 영하20도를 오르내리는 알라스카는 아직도 야생의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주이다. 그 만큼 대자연이 주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철저한 적자생존의 세계이기도 하다. 문명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겐 혹한의 모험과 원시의 자연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전엔 긴 백야를 견디지 못하고 본토로 이주하는 사람이 많아, 알라스카에 거주하게 되면 거주 장려금까지 주었는데, 지금도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끔 은퇴하면 중고 캠핑카라도 한 대 사서 육로로 시애틀, 벤쿠버를 거쳐 알라스카엘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곰이 입을 벌리고 물가에 가만 서 있어도 연어가 잡힌다는 곳에 가서 연어낚시도 해보고 싶고, 에스키모인들이 모는 썰매도 타보고 싶다. 별들이 땅위로 우수수 떨어진다는 마을에서 오로라를 보게 된다면 더 행운일 것도 같다. 유난히 집콕인 이즈음 야성이 살아있는 곳이 그립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문명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야성을 이길 수없다. 문명의 폐해가 빙산을 녹이고, 산을 태우고, 살아있는 것들을 죽이는 요즘, 잭런던의 <야생의 부름>은 우리에게 많은 걸 시사하고 있다. 영화 ‘Call of Wild’ 는 올해 해리슨 포드 주연으로 다시 제작되어 개봉되었다. 가장 미국적인 작가가 쓴 가장 미국적인 작품의 무대가 되는 알라스카, 그곳엔 야생을 부르는 힘찬 소리가 있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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