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핵가방은 잊고 대통령 뽀뽀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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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릴레이]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64
“낸시 펠로시가 체포됐다는데요?”
전화기 저편에서 넘어 오는 김 장로의 목소리에는 ‘거짓말이지?’ 하는 느낌이 다분히 실려 있었다.
“어이구, 장로님도 참, 낸시 펠로시는 지금 하원에서 트럼프 탄핵 표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 집사가 퍼 나르는 유령뉴스 듣지 말고 정규방송이나 청취하세요. 순진하시기는.”
“알아요, 그런데 펠로시가 뒤로 수갑을 찬 영상까지 떴으니 긴가민가 하는 거지요.”
“전부 조작된 거예요, 우파 유투버들이 클릭수 높이려고 자극적인 뉴스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거기에 최 집사가 장단을 맞추는 거구요. 그나저나 최 집사가 저렇게 광적인 극우파일줄 정말 몰랐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놀라기로 치면 이 선생보다 내가 더 놀랐지요. 십년 넘게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최 집사가 그렇게 정치색이 강하고 과격한 사람인 줄 전혀 몰랐다니까요. 아무려나 이제 그 사람의 성향을 알았으니 앞으로 우리 모임에서 정치얘기는 금지합시다.”
“당연하지요. 최 집사가 카톡에 퍼 나르는 조작뉴스에 가타부타 말고 그냥 가만히 계세요.”
“네, 더는 그런 해프닝 없도록 우리 서로 입단속 잘 합시다.”
김 장로와 최 집사와 나는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코리아 타운의 아파트 단지에 이웃해 산다. 김 장로가 가장 연장자이긴 하지만 그래 봐야 다섯 살 안쪽에서 셈이 끝나는 우리들은 집집마다 하나씩 있는 아이들이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어 자연스레 가까워진 이웃사촌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도록 친교를 맺어왔으니 팍팍한 이민살이에 형제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코로나바이러스로 모임이 금지된 이즈음에도 집집이 돌아가며 살금살금 교류하는 재미를 이어가고 있다.
교류라고 해야 토요일 아침 단지 내에 있는 테니스장에 모여 배드민턴을 친 후 어느 한 집으로 몰려가 간단한 아침식사를 나누는 거다.
그러다 가끔 누군가 석식을 제안하면 그날은 제법 거하게 배를 두드려볼 수 있는 흥겨운 파티가 펼쳐지기도 하는데, 바로 그 흔치 않은 즐거움을 파장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 날은 김 장로 집에서 베푼 석식이었는데 때가 때인 만큼 누구 입에선지 자연스레 바이든 당선자의 취임식 이야기가 나왔다.
트럼프가 저렇게 완강하게 승복을 안 하고 버티는데 과연 바이든이 취임식을 무사히 치를 수 있을까 하는 말이었다. 문제는 그냥 걱정만 하고 말았으면 괜찮았을 것을 공연히 내가 나서서, 국민이 표로 선택하고 모든 법적 인증절차가 다 이루어졌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한 말이 도화선이 되었다.
“그렇게 안 될걸요, 트럼프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동해서 외국의 선거개입과 부정선거를 낱낱이 파헤친다는 거예요. 계엄령이 발동되면 취임식이고 뭐고 모든 정치활동이 금지 되잖아요?”
갑자기 어깨를 추켜세운 최 집사가 당신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는데, 그 때라도 최 집사의 낯선 변화를 눈치 채고 입을 봉했어야 했다.
“에이, 세상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기면 나라가 어찌 되겠어요? 계엄령이라니, 만에 하나 그런 터무니 없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 날로 미국의 민주주의는 사망이지요.”
나는 최 집사의 말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조소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런 나의 모습에 모멸감을 느꼈던지 그는 아주 정색을 하며 벌떡 일어나더니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공격해왔다.
“신앙 없는 이 선생님께 이런 말씀 드려서 이해하시려나 모르겠는데, 지금 미국의 상황이 단순히 대통령이 바뀌고 정치세력이 교체된다는 이차원적 문제가 아니라 너무도 위험한 영적 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 싸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이 미국이 악의 세력에게 지배당하느냐, 아니면 선한영향권 아래 머무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한 세력의 리더가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구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영적 공격에 나는 그만 입을 벌리고 벙 쪄있었는데 김 장로가 나섰다.
“최 집사님, 흥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으세요. 그런 논리는 이 자리에서 나눌 만한 대화소재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가 종교를 자기 야욕에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하니까 그 문제는 섣부르게 단정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김 장로는 나이로 보나 신앙연조로 보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회 내의 직분관계에 비추어 최 집사의 위험한 선악론에 중재자 역할을 해야 겠다는, 사명감 비슷한 마음으로 그렇게 나섰나 보았지만, 그게 그만 불에 기름을 붓고 말았다.
“아니, 장로님께서 어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게 오래 신앙생활을 하셨으면서 선과 악도 구별하지 못하신다는 말입니까? 장로님은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낙태를 옹호하는 자들을 선한세력으로 보시는 겁니까, 장로님은?”
최 집사는 역부로 문장 앞뒤에 장로님이라는 교회직함을 반복하며 김 장로를 몰아세웠다. 그 날 결국 서로 얼굴을 붉힌 채 헤어졌는데, 그나마도 여인네들이 자기 남편을 다독거려서 그만했지 어쩌면 멱살잡이라도 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다음날 열이 식은 김 장로는 전화기 저편에서 한숨을 섞어가며 말했다.
“아이고, 최 집사가 그렇게 나를 공격할 줄 몰랐어요. 아, 정말 지랄 같았어요. 이번 선거는 왜 또 한국 사람들이 더 난리랍니까? 허 참, 온 나라가 집단 지랄병에 걸린 것 같다니까요!”
그리고는 뜬금없이 말을 이었다.
“근데… 정말 심각한 일이 벌어졌어요, 트럼프가 핵가방을 가지고 떠났답니다!”
전화기 저 편의 김 장로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이번에야 말로 진짜 큰일 났다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 때 나는 TV로 중계되는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을 시청하고 있었다. 선서를 마친 바이든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질 여사를 포옹하며 서로의 볼에 키스했다. 나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장로님, 핵가방은 잊어버리시고 대통령 뽀뽀나 시청하세요.”*
이용우
LA거주 소설가 /
미주문협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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