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샴페인과 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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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놀룰루의 밤 경치도 괜찮네. 미국의 대 도시들처럼 화려하네.”
어둠이 내리자 오하후 섬 화산 산의 골짜기 골짜기 마다가 불빛으로 수놓아져 바다에 흘러내리며 도시 전체의 윤곽이 들어났다. 빌딩 50층의 클럽에서 내려다보이는 호놀룰루는 불 밭 그 자체였다. 도시는 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불빛이 필요할까.
“그런데 호놀룰루는 하와이 언어야? 무슨 뜻이지?”
“일찍도 물어보시네. 호놀룰루(Honolulu)는 hono와 lulu의 합성어야. 호노(Hono)는 항구(Bay, valley)의 뜻이고 룰루(lulu)는 조용한, 평화로운 안식처(calm, peace, shelter, lee)의 뜻이야. 그러니까 호놀룰루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항구’라는 뜻이지.”
“그런 뜻이야? 그런데 지금의 호놀롤루는 완전 시끌벅적하잖아.”
“1845년부터 호놀룰루는 하와이의 항구이며 수도였으니까 175년의 고도인셈이지.”
“하와이는 무슨 뜻?” / “하와이(Hawaii)는 섬(Island)이란 뜻이야.”
상필은 레이와 대화하면 즐겁다. 뭔가 지적이고 착하고 아름답다. 거기에다가 높은 이상이 빛난다. 갑자기 대식당의 불이 꺼지더니 볼룸 홀이 떠나갈듯 밴드가 연주를 시작했다.
“ALOHA! IT’S BACK!
번쩍번쩍 붉고 푸른 레이저 광선이 내리 꽃혔다. 볼룸 안 사람들이 손뼉을 치고 함성을 질렀다.
“Please meet Sang Pil, Lei’s fiance!”
진행자가 상필을 소개했다. 이게 뭐지? 왜들 이러는거야? 상필은 좀 어리둥절했다. 이어서 사회자는 술잔을 들어 축배를 들었다. 상필은 얼떨결에 일어나서 손을 흔들었다.
“Congratulations!”
와, 와, 와글 와글 떠들며 사람들이 몰려와 술잔을 권했다. 삼각의 글라스에 든 샘페인도 있었고 둥근 유리잔의 포도주도 있었고 얼음을 넣은 럼주도 있었다. 상필이 그들이 주는 술잔을 마다 않고 흘쩍훌쩍 마셨다. 열 잔을 넘어 스무 잔쯤 들이켰을 때 상필의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벤드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를 연주하자 상필이 지갑을 열어 1,000달러 다발을 벤드에게 던졌다. 마치 아라비아의 왕자이기나 한 듯 호기있게.
“그만!” 레이가 막아섰다. / “괜찮아, 레이, 나 아직 괜찮아. 나 술 안 취했어.”
늘상 술 취한 사람들은 ‘나 술 안 취했어’라고 한다더니 상필이 그랬다. 벤드가 곡을 달리하여 연주를 하고 사회를 보던 친구가 레이에게 춤을 청했다. 레이가 기꺼이 그의 손을 잡고 홀로 나가자 음악은 탱고 ‘라 쿰파르시타’ 를 연주했다.
탱고는 언제 들어도 열정적이다. 빠른 템포와 멋진 리듬이 춤추게 한다. 레이는 춤도 잘 추는구나. 나의 레이, 레이는 못하는 게 없네.
그런데 저 새끼, 저 새끼는 뭐지? 왜 나의 레이의 손을 잡고 춤을 추는거야? 춤만 추는 게 아니라 그의 손은 레이의 허리를 잡고 얼굴을 레이의 가슴에 묻기도 하고, 뭐야? 레이의 다리를 들어올려 자신의 다리와 섞고… 아 나의 레이, 나의 레이가 유린당하고 있구나. 상필이 갑자기 큰 소리를 질렀다.
“Stop, Stop, Stop dancing…”
상필이 홀로 뛰어나갔다. 그리고는 레이의 춤 파트너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 남자가 쓸어지고 홀이 난장판이 되었다. 레이가 그녀의 주 특기인 손을 입에 넣어 크게 휘파람 소리를 내었다. “삐익…”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덩치가 큰 두 명의 사나이가 나타나 상필의 양쪽 어깨를 끼고 들어올려 끌고 나가고 홀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음악이 계속 되었다. 옆 방에는 디랙터 마하리가 앉아있었다.
“상필, 매너를 지켜야지. 상필, 우리 클럽은 오바마 전 대통령도 오시는 곳이야. 우리 클럽은 미국 주류들의 모임인 라이온즈 클럽이나 로타리 클럽같은 사회봉사클럽이면서 하와이인들의 품위를 중요시하는 클럽이야. 하와인의 권위와 문화 창조라는 횃불을 높히 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래. 폭력이나 값싼 팁 같은 거 뿌리면 안돼.”
마하리가 화난 모습으로 상필을 꾸짖으며 얼음 물잔을 권하고는 나가버렸다. 상필은 마하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뭔가 엄숙한듯 했다. 잠시 후 레이가 들어왔다.
“왜 그랬어?”
“엉? 나도 모르겠어. 난 그저 누가 레이를 만지면 싫어. 누가 레이와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게 난 싫어. 레이는 나하고만 춤춰야 해. 나만 레이를 만져야하잖아.”
“왜 그래야하지?” / “엉, 그건… 내가 레이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망신 줘도 되는거야?”
“미안해. 그런데 나도 모르게 이상한 질투심이 났던 모양이야.”
“맞아. 그것은 질투심이지. 사랑이 아니야. 사랑과 질투도 구별 못하면 상필은 어린애나 마찬가지야. 그 사람 우리 클럽의 댄스 선생님이야.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도 탱고를 가르쳐주었어. 오바마 대통령 재임 중에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오바마 대통령이 아르헨티나의 무희와 탱고를 아주 우아하게 추었지.”
“아니, 그럼 오바마 전대통령의 춤 선생님을 내가 때렸다 이거야? 내가 잘못했네. 어떡하지?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더구나 오늘은 회원들에게 상필을 소개하는 날이었잖아.”
“…”
“그렇게 많은 팁은 또 왜 뿌린거야. 레이의 약혼자가 깡패 수준이라고 생각하겠네.”
“벤드가 ‘축배의 노래’를 연주해 줘서, 우리를 위한 연주 같아서, 고마워서 그랬지. 앞으로 잘 할께.”
“꼭 초등학생 같으네.”
레이가 피식 웃었다. 레이의 웃는 모습에 상필은 안심이 되었다. 상필도 사랑의 감정이나 질투 그런 것 쯤은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불길 같은 분노가 끓어오른 이유를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도 사랑은 질투를 동반하는 것은 아닐까. 상필은 생전 처음 느껴본 그폭발하듯 한 감정을 그렇게 이해했다. 상필이 빌다시피 하며 레이를 달래고 슬쩍 그를 끌어안았다. 레이가 화가 난 줄 알았는데 따뜻한 눈빛으로 상필을 위로하고 있었다.
상필은 레이가 고맙고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라 쿰파르시타’를 추듯 레이의 허리를 움켜잡았다. 레이가 상필의 품에 안겨 들어왔다.
아, 레이, 나의 레이. ‘라 쿰파르시타’보다 더 열정적인 리듬이 흘렀다. <계속>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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