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숨을 쉴 수가 없는 계절

페이지 정보

작성자 admin
문화 댓글 0건 조회 3,622회 작성일 20-06-12 09:15

본문


올 봄은 유난히도 더디게 갔다. 거의 날마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블랙홀에 파묻혀 모든 일상이 그곳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러다보니 꽃샘추위가 지나갔는지, 목련은 피었다 졌는지, 부활절이 언제였는지 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저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먹고 자고 해가 뜨면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뉴스들을 끊임없이 듣고 보고 하면서 좀비처럼 지냈다.
이제는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 쯤은 일상 중의 일상이 되었고, 마스크 없는 외출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래도 처음엔 이 비일상적인 일들이 시간이 가면 돌아오겠지 했는데, 지금은 그런 기대조차도 사치처럼 여겨질 만큼 총체적 난국이다.





“숨을 쉴 수가 없다(I can’t breathe).”
무슨 범죄영화의 한 장면 같은 광경이 백주대낮에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났다. 백인 경찰 몇 명이 흑인 용의자를 에워싸더니 무슨 동물 죽이듯, 무릎으로 목을 9분이나 눌러서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백인 경관의 무릎 아래에 깔린 흑인은 숨을 쉴 수가 없다고 16번이나 고통을 호소했지만 그 백인경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목을 누르고 있었다.
동영상을 통해 이 장면은 미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이에 분노한 흑인들의 시위가 지금 온 미국을 달구고 있다.
그들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다음엔 제 차례입니까(Am I Next)’? 이런 문구들이 적힌 피켓을 들고 백악관 앞까지 행진하며, 수백년 동안 이어져온 인종차별에 관해 격렬하게 항의를 하고 있다.
저 먼 아프리카에서 영문도 모른 채 노예선에 끌려와 미 대륙을 밟은 그들의 현재는 지금도 여전히 인종차별이라는 쇠고랑에 묶여, 숨을 쉴 수가 없는 상황이다.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한 달전만 해도 조깅을 하던 흑인 청년이 백인 父子의 손에 피살되었으며, 센트럴 파크에서 목줄도 없이 대형견을 산책 시키던 백인 여자는, 지나가던 흑인 이 개 목줄을 채우라고 하자 다짜고짜 경찰에 신고부터 했다.
흑인이 공원에서 자신을 위협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 광경을 찍은 영상이 있어 도리어 이 여성이 실직을 당하긴 했지만, 이런 일이 미국에서는 비일비재하다.
도대체 세계 최고의 인권국이라며, 허구헌날 다른 나라 인권은 감시하고 비판하면서 정작 자국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은 방관하고 있다. 물론 흑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민자와 비이민자, 인종대 인종간의 보이지 않는 차별도 무수히 존재한다.





지금의 세계는 어디를 가든지 숨을 쉴 수가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살아있는 강아지를 생매장 한다든지,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다 하면서 사리사욕을 채우고, ‘부부의 세계’ 보다 더 심한 현실판 부부들과 친자식을 성추행하는 아버지 등 눈만 뜨면 인면수심스런 사건들이 무수하다.
게다가 초강대국 대통령 신분으로 걸핏하면 막말에 유치하기 짝이 없는 미대통령은 이곳에 살고 있는 3억 인구를 늘 불안에 시달리게 한다.
흑인들의 상실감이나 분노에는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한 채 화난 시위대 앞에서 ‘약탈 시작하면 총격시작’이라는 선동적인 망언을 올려 불난 정국에 기름이나 붓고 있다.





엘에이 한인사회는 28년 전의 그날의 악몽을 생각하며, 폭동이 재발되지 않을까 하여 잔뜩 긴장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어렵게 문을 연 수 많은 소상공인들 역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벌써 방화와 약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들은 간혹 또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겨우 코로나 19가 조금 잡히나 했더니, 마스크도 없이 시위하는 군중들을 보니 다시 확산될 조짐도 보인다. 가담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숨을 쉴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다.





오늘 아침 난 화분을 옮기다 아주 작은 새 한 마리가 장미 곁에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몹시 작은 새끼 였는데 온 몸이 연두빛으로 색이 참 고운 새였다.
무엇을 보고 놀랐는지, 아님 어디서 떨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새는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어보였다.
난 가만히 다가가서 새를 손바닥으로 옮긴 뒤 작은 상자 안에 타월을 깔고 눕혀주었다. 그 안에 쌀과 퀴노아도 조금 넣어 주었다.
그리곤 집안일을 하다 다시 가서 보니 새는 눈을 감고 죽어있었다. 새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모르지만, 난 그날 내내 맘이 짠했다. 새의 죽음도 이러한데, 우리는 지금 사람의 죽음이 너무 쉽게 치부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모든 게 불확실하다. 뉴 노멀(New Normal)이라고 불리우는 코로나 19 이후의 시대는 사람보다는 로봇,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이 성행할 게 분명하다.
인간은 점점 더 고립되고 외롭게 살게 될게 뻔하다. 또한 불평등은 훨씬 심화 될 것이다. 자가격리도 볕 안 드는 지하셋방에서 지내는 것과 휴양지별장에서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다른 대륙으로의 여행도 쉽지 않을 것이다. 수 많은 여행사들이 문을 닫았다. 여느 해 같으면 ‘올 여름 휴가는 어디로 가지?’가 큰 화두였는데 지금은 예전에 다녀왔던 해외 여행지 사진만 들여다보고 있다.
이상하게 몇 년전에 보았던 스타워즈의 오프닝 장면이 자꾸 오버랩 된다.
“A long time ago, Galaxy far, far away(아주 오래 전 은하계 저 너머엔…)” 이상한 인류가 살고 있었다고 몇 백만년 후 인류의 후손들은 우리들을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운전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조심을 한다고 해도 예기치 않게 사고는 일어나고 사람들은 다친다. 그것 뿐인가.아무 문제없이 주차장에 주차해 두었는데 나뭇가지가 떨어져서 자동차 앞 유리가 부서지기도 한다.뜻밖의 사고가 일어날 때를 위해 자동차 보험은 존…
    보험 2020-04-24 
    우리는 때때로 미래를 알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미래를 알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오늘을 살아가며 한편으로 미래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현실에 너무 치우쳐서 미래를 무시 해서도 안되…
    보험 2020-04-10 
    자동차보험 가입은 법적인 의무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사고를 당해 상대에게 클레임하려고 보면 상대편이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고 있지 않은 경우를 보게 된다. 이럴 때 내 과실은 아니지만, 자신의 보험회사에 청구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을 무보험자 피해 보상 …
    보험 2020-03-27 
    연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로 인한 감염확진자와 사망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진정의 기미가 보이지 아니하는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문제로 많은 사람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오늘까지(3월 9일) 전 세계의 112개국에서 111,862명의 감염…
    보험 2020-03-13 
    올 봄은 유난히도 더디게 갔다. 거의 날마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블랙홀에 파묻혀 모든 일상이 그곳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러다보니 꽃샘추위가 지나갔는지, 목련은 피었다 졌는지, 부활절이 언제였는지 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그저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먹고 자고 해가 …
    문화 2020-06-12 
    하와이에서 생긴 일 (26) “큰 바다사자라고?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되게 크네. 센프란시스코 어부들의 시장 피어 39에서 봤을 때는 이렇게 큰 줄 몰랐는데, 그때 이놈들이 떼로 있어서 그랬나. 이놈은 키가 3미터쯤 되는 것 같지? 몸무게는 500킬로는 되는 …
    문화 2020-06-05 
    근간 코로나 ‘그 년’ 때문에 ‘방콕이 길어지니 온갖 옛 생각이 떠오른다. 가끔은 마치 빠삐용처럼 중얼거리며 한 때의 씁쓸했던 기억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보았다. 그가 산사(山寺)행을 결심한 것은 그 해 가을, 졸업을 한 학기 남겨 두고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하…
    문화 2020-05-29 
    타월은 17세기 터키에서 발명되었다고 하며 18세기에 현대의 타월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으나 19세기 까지도 아주 구하기 힘든 품목이었다고 한다.5월 25일은 타월 데이(Towel Day)다. 영국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
    문화 2020-05-22 
    딱 멈춘 것 같았던 시간은 계속 달리고 있었다. 눈부신 5월 아침이다. 아니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아침이다.어머니 날이라고 아이들이 점심을 준비하나 보다. 사내녀석 둘이서 무슨 할 말이 저리 많을까. 큰아이 여자친구까지 합세하니 집안은 온통 달콤한 냄새와 웃음소리로 …
    문화 2020-05-15 
    남편은 이주 전 점심을 잘 먹은 후 넘치는 에너지로 지붕 위 처마를 손본다며 올라가더니 잔디밭위로 떨어졌다.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 이층 발코니 기둥을 잡고 내려가다 당한 변이었다.평소 같으면 패밀리 닥터에게 전화해서 정형외과 닥터를 볼 터인데 때가 때인지라 응급실로…
    문화 2020-05-08 
    하와이에서 생긴 일 (25) 헬기 조정사 제임스가 니하우의 카우마카니(Kaumakani) 헬리콥터 관리실에 들러 헬기의 정비 관계를 알아보는 동안 레이와 상필은 ‘금지의 섬’ 탐색에 나섰다.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태평양 한 가운데,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는 수줍은…
    문화 2020-05-01 
    집콕 기간에 날씨까지 요변덕을 떨어서 96도와 39도를 기록했다. 말갛고 환하다가도 갑자기 천둥번개에 비를 뿌린다.유일한 외출인 운동장 걷기에 딴지를 걸기도하고 바람도 질세라 20마일 가까이 불어재끼니 봄, 여름, 겨울옷을 교대로 입어야하는 달라스의 봄날!오늘은 바람…
    문화 2020-04-24 
    [ 문학에세이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전대미문의 괴질은 온 인류를 공포 속에 몰아넣고 마치 전대미문의 휴가라도 주는 듯 시간의 노예들을 풀어주는 듯 사람들의 동선을 집으로 돌려놓았다.빛도 얼려버릴 냉정함으로 가차 없이 밖에서 …
    문화 2020-04-17 
    3월 13일 오전에 나는 컨디션이 좀 꾸무럭해서 사우나나 할까 하고 헬스크럽엘 갔다. 근데 보통 때와는 달리 금요일인데도 불구하고 GYM도 그렇거니와 수영장 부근이 지나치게 한산했다.수영장엔 나이 든 할머니 혼자 마치 휴가를 온 것처럼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나 역시…
    문화 2020-04-10 
    올드 하와이안 클럽 회원들에게 태권도 시범을 보인 뒤 상필이 안내 된 곳은 1,000명이 함께 식사 할 수 있다는 엄청난 식당이었다. 이태리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을 연상케 하는 식당벽화는 카메하메하 1세와 그의…
    문화 2020-04-03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