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하와이의 전사들

페이지 정보

작성자 admin
문화 댓글 0건 조회 3,421회 작성일 20-03-06 11:20

본문


하와이에서 생긴 일 (23)





“레이한테 얘기 들었어요.” / ”네? 무슨.” “훌륭한 전사라구요.” / “전사요?”
레이의 신모 마하리가 상필과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데 입구 쪽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나더니 덩치가 산만한 머슴애들이 초록의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다. 유니폼 앞 뒤에는 아이에아 워리어(Aiea Warriors)라고 쓴 헐렁한 옷들을 입고 있었다. 상필이 긴장하는듯하자 마하리가 말했다.
”신경 쓸 것 없어요. 재들은 아이에아(Aiea Warrior) 동네 하이스쿨 소프트볼 선수들인데 오늘 경기에서 이겼다고 저녁 먹으러 왔어요. 재들은 햄버거 좋아하는 세대지만 축제 때는 포이, 칼루아 돼지요리, 포케같은 하와이 전통음식을 준비 해주죠. 그건 그렇고, 레이는 필을 이 클럽의 전사로 추천을 했어요. 태권도 전사로 말입니다. 레이는 이 클럽의 이사이기 때문에 전사를 추천할 수 있어요. ”
“아닙니다. 저는…”상필이 펄쩍뛰며 거부감을 나타내려 할 때 또 다른 왁자한 팀이 나타났다.
“아니, 저 친구들은…” / “맞아요. 하와이 스모팀들이예요.”
“We knew that, we knew that, master” 하며 상필을 삽시간에 에워싸고 들어올려 행가레를 치기 시작했다. 상필! 상필! 매스터 상필! 모두들 상필의 이름을 불러댔다.
“아니, 왜 이래? 레이, 도와줘” / “나도 모르죠. 재네들이 상필을 매스터라고 부르잖아요.” 레이가 목에 걸고 있는 휘슬을 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킬킬거리던 젊은이들이 재빨리 움직이며 정렬했다. 그 중 키가 장대만한 친구가 앞에 나서서 구령을 했다.
“잘 들어라. 오늘부터 우리 올드 하와이안 전사들은 새로운 매스터를 모시게 됐다. 모두들 상필 매스터에게 경례!”
상필은 어정쩡하게 경례를 받았다. 상필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레이까지도 그들과 합세해서 경례를 하고 있었다. 레이를 보자 상필은 레이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상필이 서서히 그들 앞으로 나가 마주 경례를 했다. 와 우우 와 우우…그들만의 암호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여러분들과 뜻을 같이 하겠습니다. 어러분들과 함께 꿈을 이루어나가겠습니다.”
상필은 자기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적절한 말을 했다. 다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레이가 상필의 티셔스를 걷어올려 벗겼다.
“상필의 식스팩을 보여줘.”
실내는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상필의 식스팩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매일
아령으로 식스팩을 지키기 위한 평범한 신체단련을 해왔을 뿐이다. 그런데 하와이 전사들에게는 식스팩이 큰 선망이라고 레이가 말한 적이 있다. 그들은 몸에 살집이 많은 인종으로 보통 운동을 해서는 식스팩을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상필의 그 멋진 태권도 시범도 보여줘야지.”
“아, 레이, 내 태권도는 아무것도 아냐. 내가 레이 앞에서 한번 뽐내느라고 보여줬을 뿐인데.”
“괜찮아. 탄탈루스 산에서 내게 보여줬던 그 태권도 폼이면 충분해.”
상필은 레이의 말에는 무슨 자석처럼 반응했다. 상필의 단단한 어깨와 가슴과 배에 적당히 붙은 살집이 만든 식스팩은 정말 멋있다. 거기에 검은 벨트의 태권도 시범은 절도 있고 품위가 넘치고 힘이 있었다. 하와이 전사들은 자신들의 신체단련을 위해 중국의 쿵후도 배워봤고 일본의 스모도 배워봤지만 별 효험이 없었다.
태권도에 대한 정보는 많지만 실지로 상필의 태권도 시범을 본 하와이 전사들은 당장 매혹 당하고 말았다. 사실 쿵후는 신체단련에 비현실적이었고 스모는 전사로서 어울리지않는 무술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게 되었다. 하와이 전사들에게 태권도는 어느 무술보다 적합한 운동이었다.
레이가 상필의 손을 잡고 걸어나가자 올드 하와이 전사들은 두 줄로 서서 아취를 만들었다. 레이와 상필이 환호하는 전사들을 빠져나가자 레이의 신모 마하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잘했어요, 멋졌어요, 매스터 필.”
마하리는 상필을 그저 필이라고 불렀다. 마하리가 통나무 대문을 열자 그곳은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문의 맞은편 하얀 벽에는 온통 역대 하와이 왕들과 왕후들의 거대한 초상화가 걸려있었고 반대쪽 벽에는 하와이 왕조 카메하메하 1세의 행적이 디테일하게 그려져 있었다.
캡틴 쿡을 만나는 장면, 총 화약같은 무기를 주고 받는 장면, 전사로써 하와이의 8개 섬을 차례로 정복하여 드디어 하와이 최초 통일왕국을 이루고 첫번째 왕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레이의 신모 마하리는 올드 하와이안 클럽의 디렉터였다. 그녀의 풍모는 우람하고 단단하고 확고해 보여 전사 중의 전사 같았다.
“올드 하와이안 전사들은 하와이 왕국의 첫 번째 왕인 카메하메하 1세를 추종합니다. 이 클럽의 전사들은 카메하메하 왕이 세운 왕국의 뜻을 새기며 하와이인들의 자주와 자유를 위해 힘쓸 것을 선서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와이 주 내에서 자립적인 지위를 갖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하리의 설명은 간단명료했다. 상필은 한 국가가 자주권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한국의 역사 속에서 한 때 일본에게 점령 당했던 사건은 역사 속에 묻힌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와이안들, 그들의 천국이었던 하와이가 유린당하고 점령당하고 빼앗긴 것은 하와이인들에게 있어 과거가 아니라 현재였다.
하와이 원주민들의 무기력, 목적을 잃어버린 듯한 삶, 전통문화의 관광화, 늘어나는 홈리스들 같은 현재의 모습은 언제 무엇 때문에 이리 되었는가 생각하게 된다. 그들이 자주권을 갖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일이었다.
전사란 무엇인가. 전사(Warrior)란 직업적으로 전투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고대사회의 부족이나 씨족사회에서 전쟁과 수렵을 담당했던 부류였다. 고대 로마의 직업적 싸움꾼을 그래디에이터(Gladiator)들도 전사였고 중세의 십자군들도 전사들이었다. 일본에서는 사무라이들은 주군을 위해 싸우는 전사였고 한국의 호위무사들은 왕을 지키는 전사들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전사는 어떤 특권층을 위한 전사가 아니라 한국의 축구팀 처럼 민주시민을 대신하여 태극 마크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올립픽의 최승자가 되어 시민 대중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태극 전사들이 자랑스러운 것은 그들이 분노나 어떤 피해 의식 없이 건강한 건각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올드 하와이 전사들이 한국의 태극전사들처럼 명예로운 전사가 되기 위해서는 백인에 대한 분노와 피해의식을 넘어서야 할 것 같았다.
상필은 이들 전사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을 했다. 상필은 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야겠다고 스스로 맘 먹는다. **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집 앞 두 교회의 주차장이 주일인데도 휑하다. 하얀 돌배꽃잎이 떨어져도 봐줄 사람이 없다. 150여 국가들이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을 하는 동안에 찾아온 달라스의 봄. 작년 4월의 다운버스트 스톰과 140마일로 9번을 강타한 10월의 끔찍한 토네이도로 전쟁폐허처럼…
    문화 2020-03-27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떠올리는 작금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하루하루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봄이 왔는데 봄이 아닙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나무들은 가지마다 환하게 불을 밝히고 연둣빛 풋내를 찍어 바르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습…
    문화 2020-03-20 
    얼추 배추 한 상자만한 부피의 책을 계산대에 올렸더니 드라이버 라이센스를 달라고 한다. 헌 책을 파는데 왜 운전면허증이 필요한 것일까? 이 서점의 헌 책 파는 곳은 늘 알 수 없는 책들로 산을 이루고 있다. 종이가 흔한 나라여서 그런지, 이곳 책들은 대체적으로 두껍고…
    문화 2020-03-13 
    하와이에서 생긴 일 (23) “레이한테 얘기 들었어요.” / ”네? 무슨.” “훌륭한 전사라구요.” / “전사요?” 레이의 신모 마하리가 상필과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데 입구 쪽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나더니 덩치가 산만한 머슴애들이 초록의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다.…
    문화 2020-03-06 
    지난 4월 14일 한인 학부모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웨비나를 2회에 걸쳐 지면으로전달해드리겠습니다. 전체 영상은 유투브에 가셔서 ‘Elite Prep’을 검색하시고 여러 비디오 중 위의 제목을 찾으면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칼럼에 이어서…]실제로 2018년도…
    교육상담 2020-05-08 
    지난 4월 14일 한인 학부모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웨비나를 2회에 걸쳐 전해드리겠습니다. 전체 영상은 유튜브에 들어가셔서 ‘Elite Prep’을 검색하시고 여러 비디오 중 위의 제목을 찾으면 볼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엘리트학원 플레이노 브랜치의 저스틴…
    교육상담 2020-04-24 
    아래 내용은 지난 3월 31일 한인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웨비나(Webinar)를 한 내용 중 일부분입니다. 코로나 19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6시에는 영어로, 그리고 매주 화요일 오후 4시에는 한국어로 웨비나를 진행합니다.지난 웨비나 동영상 풀버전은…
    교육상담 2020-04-10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학사일정이 꼬이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특히 8학년 2학기 때는 로컬 고등학교 카운셀러들이 중학교를 방문해 앞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할 8학년 학생들과 내년에 이수하게 될 수업들에 대해 미팅을 하는 시기인데, 현재의 8학년 학생들은 아마도 이…
    교육상담 2020-03-27 
    AP 수업과 관련된 지난 세번의 연재에 이어 오늘은 마지막으로 지난 칼럼에서 다 끝내지 못 한 STEM에 해당되는 AP 과목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마찬가지로 난이도의 기준은 AP 수업들을 토대로 가장 힘든 수업을 5점으로, 가장 수월한 수업을 1점으로 잡았다.…
    교육상담 2020-03-13 
    지난 칼럼의 콩나물에 이어 이번 칼럼에서는 집에서 기를 수 있는 새싹보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새싹보리는 파종 후 10~15cm 정도 자라난 보리의 새싹을 말합니다. 다 자라난 보리보다 영양분이 최대 100배까지 높다고 하니 슈퍼푸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새싹…
    건강의학 2020-05-22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의 삶에 여러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건강한 변화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온 가족이 다 함께 동네를 산책하기도 하고,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은 많은 반면 예전보다 마트에 자주 가기는 힘든 상황 때문에 생겨난 작은 텃밭이나 간단…
    건강의학 2020-05-08 
    살면서 느끼는 여러 통증들 중 우리를 가장 자주 괴롭히는 것은 두통일 것입니다. 두통은 인간이 평생 살면서 한 번 이상은 경험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은 이 시간에도 두통으로 고통받으며, 많은 양의 진통제를 소모하고 있습니다.약을 통한 치료는 통증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건강의학 2020-05-01 
    ‘집콕’에서 살아남기 프로젝트 2 세끼 식사만으로 하루를 마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이들은 밥 먹고 뒤돌아서면 또 다른 음식을 찾습니다. 온가족이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식사메뉴도, 간식메뉴도 아이디어는 점점 떨어져가고, 마음껏 원하는 음식…
    건강의학 2020-04-10 
    척추측만증이란 척추가 어떤 원인에 의해서 한쪽 측면으로 휘어지는 증상을 말합니다. 척추측만증은 그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선천적이거나 유전적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와 후천적으로 사고나 뼈의 질병이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척추측만증…
    건강의학 2020-04-03 
    TV에서만 보던 '삼시세끼'가 정말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식당을 이용하기도 하고, 식사초대에도 가면서 식사준비에서 숨을 돌릴 틈이 있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 집에 있는 아이들과 남편까지 모든 식구의 매 끼니 식사준비를 해야하는 것은 쉽지 않…
    건강의학 2020-03-27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