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코비드 19 때문에? 덕분에!
페이지 정보
본문
집 앞 두 교회의 주차장이 주일인데도 휑하다. 하얀 돌배꽃잎이 떨어져도 봐줄 사람이 없다.
150여 국가들이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을 하는 동안에 찾아온 달라스의 봄. 작년 4월의 다운버스트 스톰과 140마일로 9번을 강타한 10월의 끔찍한 토네이도로 전쟁폐허처럼 된 동네에도 봄은 왔다. 고치고 헐고 새로 짓고 송두리째 가지 찢긴 나무에도 여린 새 순이 돋았다.
결혼식장의 신부처럼 고운계절인 달라스의 3월! 브레드포드 페어트리(돌배나무)꽃이 신부의 베일처럼 아름답고 제마다 쏙쏙 빼올리는 연 연두의 새싹들. 히아신스의 향기에 수선화와 민들레까지 화동처럼 환한 얼굴이다. 장밋빛 새잎이 고운 홍가시나무와 화려한 잔치를 벌인다.
남편은 데크에 썬룸을 만든다고 비 멎은 이른 아침부터 톱질을 한다. 짝을 찾는 새소리와 톱질소리가 불협화음인데도 나무향기가 어우러지니 몇 주간 가뭄에 콩 나듯 하던 해가 구름 속에서 삐죽이 얼굴을 내민다.
찍을수록 향내가 난다는 향나무가 아니어도 목재의 나무냄새가 신선하고 향긋하다. 자연에서 공존하도록 지음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이리라. ‘코비드 19 펜데믹 ’때문에 비극이 넘친 지구촌의 봄은 차분하게, 찬란하게 우리 곁을 찾아왔다.
12일 목요일 낮. 손님이 학교에서 딸을 데려가라는 통지를 받았다고 했다. 비싼 사립여학교로 기숙사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있는데 전부 돌려보낸다고 했다.
내 걱정을 하는 손님이 마스크를 쓰라고 한다. 지난해 목 수술 후 ‘네일 더스트’ 때문에 가끔 쓰기 시작한 마스크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기어이 달라스도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예약손님 취소가 이어지고 아차! 집에 쌀이 거의 떨어져 사러가야 되는 걸 미뤘던 생각이 났다. 일 마친 후 간 한인마켓에서 고급에 고가라서 눈길도 안주던 15파운드 쌀을 사야만 했다. 덕분에 입이 호강하게 되었다.
이제야 정신이 버쩍 들어 개밥과 고양이 밥을 챙긴 후 우산을 날려버릴 듯 부는 바람과 비가 억수로 퍼붓는데도 코스트코 갔더니 세상에! 카트도 없고 인산인해다.
겨우 매장에 들어갔더니 산더미처럼 물건을 산 사람들로 계산대 줄이 끝이 없고 그냥 포기하고 오는 길에 들른 탐텀, 월마트는 이미 진열대가 텅텅 비어있었다.
멘붕! 순간 사재기라는 생각보다도 갑작스런 조기방학에 아이들이 모두 집에 있고 여행도 못가고 재택근무에 또 2주간 자가격리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넉넉히 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중국 사람들이 엄청 사서 중국으로 보낸다는 가슴 아픈 루머(?)가 같은 아시안으로서 속상했다.
지난주, 0교회에서 ‘당분간 마지막’인 예배를 드리는데 부부가 아니면 사회적 거리두기 6피트씩 떨어져 앉으라는 목사님 말씀에 웃으며 자리를 옮긴 후 시작된 예배.
언제 다시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릴는지 목울대가 먹먹하고 저절로 눈시울이 젖는다. 예배 마친 후 친교식사가 없다.
대신에 식당 들르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라며 나눠주시던 맑은 투명봉지에 곱게 싼 김밥, 노란 귤 한쪽도 깔끔하게 랩으로 싸고 젓가락에 휴지까지 정성껏, 색깔도 어울리게 포장된 점심. 권사님의 세심한 마음 씀이 꼬옥 들어찬, 맛도 일품인 김밥이었다.
두 분 손님이 서비스 값보다 4배나 많은 현금을 주고 간다. 깜짝 놀랐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받아두라고 한다. 지인도 세탁물을 찾아가는 교사가 언제 다시 볼 줄 모르니 받으라며 넉넉히 돈을 주고 갔다고 했다.
휴스턴의 어느 식당에서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부부가 내일이면 코로나 19로 문을 닫을 텐데 종업원들 월급에 보태라며 음식값 90불에 9,400불을 팁으로 남기고 갔다고 한다.
한국의 친구가 ‘집콕’ 하다가 모처럼 밖에 나왔더니 개나리도 진달래도 벚꽃도 활짝 피어서 깜놀! 미세먼지도 없어지고 어느새 봄이 가득 찼다고 했다.
또 동생의 카톡에는 오랜만에 해방된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아파트 단지 내의 공원에서 자전거를 밀어주며 끌어주며 함께 타는 천진함이 귀엽다. 나무튤립이라는 애칭처럼 고운 목련도 사진 속에서 눈 맞춤한다.
중국과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3번째로 미국전역에 코로나가 퍼졌고 확진자가 2만 명대. 250명 넘는 사망자가 생겼다(존스홉킨스대 3월 21일). 실제적으로 8,400만 명 외출금지. 달라스 카운티도 23일 밤부터 ‘필수활동’을 제외한 ‘자택대피령’이 내렸다.
뷰티살롱을 닫는 오너에 의해 ‘나의 작은 둥지’도 덩달아 ‘코로나 19 휴가’를 얻은 셈이다.
안부전화 한 아들, 며느리에게 마스크, 알코올, 장갑을 일부 손님들께 드렸다고 하자 시중의 알코올이 너무 비싸다고 했다.
네일 써플라이 도매상을 알려주니 담는 용기까지 넉넉히 사서 손 소독제를 만들어 홈리스 선교사와 신장투석하는 가난한 환자들에게 준단다.
옮을까봐 행여 내가 보균자라서 옮겨줄까봐 사람이 무섭지만 또 사람이 그리운 사람들을 위해 주차장에 나온 드라이브 스루 신부님들, 운전석 쪽에서 2m 거리의 만남이지만 “자가격리 상태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사람들.
역시 드라이브 스루로 지역민들을 위해 화장지 4개 씩 무상 제공하는 교회. 코로나 19 때문에 슬픈 일도 많지만 덕분에 새롭게 겪고 배우는, 자연과 사람사랑이 감사하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요일 4:7)”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