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스펙이 뭐 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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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십년 전쯤 일이다. 아이들 방학이 시작 된 오월 말쯤 언니와 나는 엄마를 모시고 한국엘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며칠 묵기로 한 동생의 집에 갔을 때 동생이 우리를 썩 별로 환영하지 않는 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의 방문기간이 중학생 조카의 중간고사 시험기간과 겹친 것 이었다. 아들의 시험기간에도 온갖 잔심부름을 다 시키고 살았던 난 이 상황이 처음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생입장에서 보면 공부를 잘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이 성적 지상주의 고국의 교육 실태를 잘 모르는, 미국에서 온 촌스런 언니들이 답답했을 것이다.
난 이곳에서도 학군이 좋았던 동네에서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고, 아이들에게 과외라는 것을 받게 한 적도 거의 없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걱정이 되어 보낸 SAT학원도 본인들이 싫다 하여 두 달만에 그만두게 하였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무사히 대학진학을 하였고, 지금도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잘 걷고 있기에, 우리부부는 아이들에게 무관심했던 것이 어쩌면 더 득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위안 아닌 위안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한국사회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조국 게이트’를 보니, 동생이 왜 그렇게 유난을 떨었는지 십분 이해가 되었다.
한국에선 중학교 때부터 아이의 성적표가 곧 그 아이의 미래와 직결된다. 그 아이의 미래란 아이가 지니게 될 미래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의미하며, 그 지위는 견고하여 아이의 평생을 책임지게 될 확률이 높다. 또한 그 다음세대까지 계층은 대물림 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으며, 한국의 상위 몇 프로는 이미 그 계급의 카르텔안에서 형성되어 있고, 하위로 내려갈수록 계층 이동이 어렵다는 것이 각종 조사로 확인되었다.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 나오기는 하늘의 별따기이고, 명문대 졸업장은 보장된 평생보험 같은 것이다. 그사이 입시제도도 수없이 바뀌었다. 수능위주의 입시가 학생 개인의 창의성을 막고 폐단이 많다하여 김영삼 정부 때부터 수시입학제도가 도입되었다. 이제도는 수능보다는 학생의 내신과 스펙을 위주로 신입생을 뽑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제도도 역시 기득권 자녀에게 유리한 제도임이 입증되었다. 이번에 온 나라를 뒤집어놓은 조국의 딸 입시비리만 봐도 그렇다. 딸의 스펙을 쌓기 위해 동원된 방법들이 다 그들 안에서 품앗이처럼 이루어졌다.
자칭 강남좌파에 금수저출신 이면서도 약자의 편에 서서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던 조국마저 대한민국의 블랙홀인 자녀의 입시 문제에서만은 자유롭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박근혜의 몰락도 정유리의 이대 부정입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식공부라면 멀쩡한 부부가 기러기 생활을 하는 것 정도는 당연하게 여기는 나라가 한국이다. 물론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고성장 경제대국이 된 데에는 이러한 교육열이 한 몫을 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학벌, 계층의 세습화로 소외받는 계층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현실이다. 미국식 실력주의를 표방했던 한국사회의 살아있는 권력 586세대는 민주화에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데는 실패했다. 이제는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그들 자신이 부패의 상징이 되고 있다.
스펙(Spec)은 영어단어 Specification의 준말이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 학점, 토익점수 따위를 합한 것등, 서류상의 기록중 업적에 해당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스펙이 대입이나 대학원 입학에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좀 더 깜짝 놀랄만한 스펙을 만들기 위해, 고등학생이 의학전문 저널에 제 1저자가 되는 웃지 못할 일 까지 생겼다. 그것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호언한 문재인정부의 법무장관 후보자의 자녀가 말이다. 조국은 기자회견에서도 그랬거니와 청문회에서도 본인은 간여한 일이 없으며, 기사가 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한 나라의 장관은커녕 한 집안의 아버지조차 될 자격이 없다. 아니면 딸이 받은 그 많은 특혜를 당연하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장관 임명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동안 우리는 또 얼마나 혼란스런 고국의 소식을 매일 듣게 될까? 정치란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정치란 국민들( 재외국민들 까지도 포함)을 편안하고 살맛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스펙보다는 사람자체가 지닌 가능성과 인성을 더 중요시하는 사회야 말로 전근대적인 사회(hereditary)가 아닌 진정한 실력주의 (Meritocracy) 사회이다. 자식의 스펙이란 오래된 컴퓨터 화면을 정리할 때 우연히 보게 되는 것이거나, 부모가 몰랐던 아이의 치열하고 정직한 젊은 날의 일기 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이곳 부모들은 행복하다. 가짜 스펙이 아무리 많아도 한 줄의 진짜 스펙만 못하고, 부정한 과정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녀의 스펙을 위하여 표창창 위조 마저도 서슴치 않는 한국사회 상위 1% 엘리트들의 민낯을 보는 일은 언제나 씁쓸하다.
겸손함이나 미소, 상냥함 같은 것이 입시 스펙이 되는 나라는 없을까...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B052
난 이곳에서도 학군이 좋았던 동네에서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고, 아이들에게 과외라는 것을 받게 한 적도 거의 없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걱정이 되어 보낸 SAT학원도 본인들이 싫다 하여 두 달만에 그만두게 하였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무사히 대학진학을 하였고, 지금도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잘 걷고 있기에, 우리부부는 아이들에게 무관심했던 것이 어쩌면 더 득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위안 아닌 위안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한국사회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조국 게이트’를 보니, 동생이 왜 그렇게 유난을 떨었는지 십분 이해가 되었다.
한국에선 중학교 때부터 아이의 성적표가 곧 그 아이의 미래와 직결된다. 그 아이의 미래란 아이가 지니게 될 미래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의미하며, 그 지위는 견고하여 아이의 평생을 책임지게 될 확률이 높다. 또한 그 다음세대까지 계층은 대물림 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으며, 한국의 상위 몇 프로는 이미 그 계급의 카르텔안에서 형성되어 있고, 하위로 내려갈수록 계층 이동이 어렵다는 것이 각종 조사로 확인되었다.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 나오기는 하늘의 별따기이고, 명문대 졸업장은 보장된 평생보험 같은 것이다. 그사이 입시제도도 수없이 바뀌었다. 수능위주의 입시가 학생 개인의 창의성을 막고 폐단이 많다하여 김영삼 정부 때부터 수시입학제도가 도입되었다. 이제도는 수능보다는 학생의 내신과 스펙을 위주로 신입생을 뽑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제도도 역시 기득권 자녀에게 유리한 제도임이 입증되었다. 이번에 온 나라를 뒤집어놓은 조국의 딸 입시비리만 봐도 그렇다. 딸의 스펙을 쌓기 위해 동원된 방법들이 다 그들 안에서 품앗이처럼 이루어졌다.
자칭 강남좌파에 금수저출신 이면서도 약자의 편에 서서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던 조국마저 대한민국의 블랙홀인 자녀의 입시 문제에서만은 자유롭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박근혜의 몰락도 정유리의 이대 부정입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식공부라면 멀쩡한 부부가 기러기 생활을 하는 것 정도는 당연하게 여기는 나라가 한국이다. 물론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고성장 경제대국이 된 데에는 이러한 교육열이 한 몫을 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학벌, 계층의 세습화로 소외받는 계층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현실이다. 미국식 실력주의를 표방했던 한국사회의 살아있는 권력 586세대는 민주화에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데는 실패했다. 이제는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그들 자신이 부패의 상징이 되고 있다.
스펙(Spec)은 영어단어 Specification의 준말이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 학점, 토익점수 따위를 합한 것등, 서류상의 기록중 업적에 해당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스펙이 대입이나 대학원 입학에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좀 더 깜짝 놀랄만한 스펙을 만들기 위해, 고등학생이 의학전문 저널에 제 1저자가 되는 웃지 못할 일 까지 생겼다. 그것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호언한 문재인정부의 법무장관 후보자의 자녀가 말이다. 조국은 기자회견에서도 그랬거니와 청문회에서도 본인은 간여한 일이 없으며, 기사가 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한 나라의 장관은커녕 한 집안의 아버지조차 될 자격이 없다. 아니면 딸이 받은 그 많은 특혜를 당연하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장관 임명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동안 우리는 또 얼마나 혼란스런 고국의 소식을 매일 듣게 될까? 정치란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정치란 국민들( 재외국민들 까지도 포함)을 편안하고 살맛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스펙보다는 사람자체가 지닌 가능성과 인성을 더 중요시하는 사회야 말로 전근대적인 사회(hereditary)가 아닌 진정한 실력주의 (Meritocracy) 사회이다. 자식의 스펙이란 오래된 컴퓨터 화면을 정리할 때 우연히 보게 되는 것이거나, 부모가 몰랐던 아이의 치열하고 정직한 젊은 날의 일기 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이곳 부모들은 행복하다. 가짜 스펙이 아무리 많아도 한 줄의 진짜 스펙만 못하고, 부정한 과정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녀의 스펙을 위하여 표창창 위조 마저도 서슴치 않는 한국사회 상위 1% 엘리트들의 민낯을 보는 일은 언제나 씁쓸하다.
겸손함이나 미소, 상냥함 같은 것이 입시 스펙이 되는 나라는 없을까...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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