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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아들에게 바라는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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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크리스마스 연휴부터 새해까지 작은아들이 있는 오스틴에 머물렀다. 가까운 거리이긴 하지만 자주가지는 못했는데, 아이가 일년 여에 걸쳐 지은 새집이 완성되었다 하여 겸사겸사 가게 되었다. 이제 서른 중반에 든 아이는 아직 결혼할 마음이 없어서 인지 집 디자인부터 가 딱 혼자 살 궁리를 하고 지은 것 같았다. 오스틴 다운타운 한 가운데 , 땅값이 제법 나간다는 그 곳에 아래층엔 4카 거라지, 이층엔 방 하나, 거실 하나인 독특한 집을 지은 것이다. 사방이 유리여서 전망은 좋은데, 우리가 방문하면 잘 곳이 마땅잖은게 좀 흠인데,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방은 우리에게 내주고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잔다. 그리고 주로 운동장 같은 차고에서 지내는 데, 그곳엔 컴퓨터와 대형 스크린 티브이와 본인이 좋아하는 앤틱 카와 각종 공구와 책들, 다트(darts) 게임 같은 것들이 정리되어 있다. 부전자전인지 아들도 뭘 고치거나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도 꽤 보인다. 에어컨, 히터도 안 나오는 50년된 차는 팔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늘 이사 갈 때 마다 끌고 다니는데, 의외로 성격은 꼼꼼한 편이어서 차고 모서리 칠판엔 날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빼곡히 적혀 있다.
아들은 작년에 IT 기업을 십년 다니다 퇴직을 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꽤 많은 퇴직금을 받고 잘렸다. 그런데 그 뒤로 새 직장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사둔 헌 집에 집을 새로 짓는다고 하였다. 아들의 주변엔 이렇게 삼 사십대에 일찍 퇴직한 IT 업계친구들이 많은데, 원래도 이 계통은 40살 정도가 정년에 가깝다는데, 요즘은 AI 영향으로 더 빨라진 듯했다. 그런 연유로 이 계통에 종사하는 젊은 친구들은 은퇴 시점을 일찌감치 정해놓고, 퇴사 후 준비를 일찍 시작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직통고는 갑자기 오는 경우가 많아, 어느 경력이 짧은 IT 종사자는 자신이 예전에 받던 연봉의 십분의 일도 안되는 곳에서 일을 한다고, 유튜브에 나와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친구들은 퇴사 후 자신만의 회사를 만들거나, 여행이나 육아에 올인하거나, 투자나 새로운 취미를 배우며, 아들처럼 집 짓기에 도전을 하는 등, 자신이 진정으로 해보고 싶은 일을 시도 한다고 한다. 물론 나름 여건이 되니 하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는 한국엄마인 난 왠지 걱정이 앞서고, 아들의 이른 은퇴가 불안하기만 하다. 남편은 직장생활 35년째인데도 앞으로 몇 년을 더 할까 말까를 고민 중인데, 30대 아들이 자신은 재정적으로 준비가 됐으니 영구은퇴를 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남의 집아들이 그런다고 하면 박수를 칠 일인데, 촌스러운 우리 부부는 논다고 하면 일단 부정적인 생각부터 하는 ‘라떼’ 들이다. 사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해선 우리도 잘 모른다. 하지만 체면이나 형식보다는 자신에게 솔직하고, 자아실현을 우선시 하는 요즈음 젊은 세대 들을 보면,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선택이기에 후회가 적은 반면, 주변 눈치를 보며, 남과 비교하며, 주저하고, 무조건 열심히 사는 것만이 최고라 여기고 산 우리 세대들은 후회도, 미련도 많은 것 같다.
인터넷에 떠도는 ‘죽기전에 후회하는 것들’ 리스트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1,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2, 수많은 걱정을 안고 살아온 것
3,더 많이 용서 하지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에 인색했던 것
4,도전적으로 살지 않은 것과 자신을 돌보지 않은 것 등등….
을사년 푸른 뱀의 해가 시작되었다. 오늘 아침 문득 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네순 도르마(아무도 잠들지 말라)를 듣다가 불현 듯 아들 생각이 났다. 아들아, 제발 올해는 주인공 칼라프 처럼 노래하거라, 사랑과 희망으로 떨리는 별들을 바라보며, 진정으로 매순간 깨어 있으며, 늘 승리에 찬 아침을 맞기를 바란다. 치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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